사부작, 거리는 사랑
“깜부기불은 어떻게 만드나요?”
“나무젓가락에 불을 붙이고 후 불어서 꺼요”
“깜부기불을 어디에 넣어 보았나요?”
“산소요.”
“맞아요. 산소를 채집한 집기병 안에 넣어봤어요.”
“꺼진 불씨가 어떻게 되었나요?”
“활활 타올랐어요.”
여섯 모둠 중 다섯 모둠은 실패였고, 한 모둠은 성공했다.
분명 불씨가 거의 다 죽어 꺼져가던 불은 나무젓가락 틈새로 활활 타올랐다.
“불이 붙지 않은 건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물 안에서 산소를 잘 모으지 못했던 것 같아요.”
“산소를 모은 병을 열고 오래 놓아서 그런 것 같아요.”
“이제 실험한 나무젓가락을 버릴 건데, 그전에, 혹시 불씨가 남아있지 않도록 책상에 있는 수조에 한 번 담근 후 버립니다."
물에 젖은 나무젓가락은 더 이상 불이 붙을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스물여섯은 어떤 나이일까. 빈지노가 24 26 앨범을 냈을 때의 나이, 27세 클럽의 락스타들이 죽기 전 마지막 불꽃을 틔우던 나이. 이미 불꽃이라는 불꽃, 폭죽은 다 터져버렸고, 이젠 소멸해 버린 잔해를 수습하는 것, 젊은 날을 추억하며 서서히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것만 남았나. 너무 이른 나이에 여름을 맞이해 버린 것인가. 밤새 바닷가에서 정신없이 폭죽놀이를 하다가 문득 더 이상 남은 폭죽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버렸을 때.
스물여섯 해를 살아도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이 생에도 끝이 있다는 사실밖에.
올해도 여름은 다시 왔지만, 나의 몫은 이미 끝난 듯 보였다. 재기할 한 번의 여름이 다시 주어진다면, 힘껏 살아내 보겠노라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깜부기불처럼 혹여나 남아있는 온기가 있지도 않을까. 그러기엔 너무나 식어버려 급기야 얼어버렸지만.
또 하나의 여름을 만들고 싶다. 매년 여름은 계속되어야 한다. 고 말하는 사람은 정작 과거의 잔열로 삶을 살아간다. 8시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밝다. 지구에 있는 시계를 없애버리고 싶단 생각을 한다.
‘당장 밖으로 나간다.’
화장은 최대한 진하게. 화장이라기보다는 분장인 거야. 에이미 와인하우스 화장이 짙은 이유도 알 것 같은데, 가면을 쓴다는 생각으로 화장을 한다. 눈 주변은 최대한 붉게, 보석도 반짝반짝 몇 개 얹고, 혈색이 돌기 시작한다. 재탄생의 순간. 한쪽 어깨가 보이는 옷을 입는다. 그곳으로 나는 숨을 쉰다. 물고기가 아가미로 숨을 쉬고, 사람이 코로 숨을 쉬듯이.
새로 산 빈티지 연청 반바지를 입는다. 커팅은 사자 아니면 말의 갈기처럼 늘어져있고, 너무 끼이지도, 짧지 않아서 편하고 내 것 같은 느낌이 있는 반바지다.
목요일 밤. 내일 아침 8시 30분까지 일을 하러 가야 하지만 밤 9시, 당장 이걸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당최 일탈을 하지 않아서 그럴지도 모른다. 인생 일탈 총량 같은 것이 있다면 채워야 할 것들이 많이 남아있는 사람, 그게 나인 듯하다.
경기도민은 서울까지 가는데 최소 1시간 30분이 걸린다. 청계천 쪽으로 넘어가 분수 앞에서 밤을 새우다가 막차가 끊기면 딱 좋을 것 같은데, 첫차를 타고 일을 하러 돌아오면 좋을 것 같은데, 비몽사몽 일을 하고 금요일을 맞이하면 좋을 것 같은데.
청계천을 뛰었다. 10km. 여름이니 땀이 났지만 상관없었다. 무인호텔이 주변에 있다. 아뿔싸 민증을 넣는 키오스크다. 머뭇거리고 있으니 안에서 주인이 나온다.
“혼자예요?”
“네”
마스터프로그램을 이용해서 민증 없이도 사용할 수 있게 해 준다.
7만 원.
3시간만 자면 되는데 7만 원. 24시간 사우나실을 검색한 후, 찜질방으로 갔다. 알람을 듣지 못해 지각한 적이 여러 번 있는지라 알람은 철저하게 맞춰놓는다. 대한민국에 목요일 밤을 이렇게 보내는 사람, 어쩌면 내가 유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6시에 깨어 탕욕을 잠시하고 찬물에서 헤엄을 조금 치다 옷을 주섬주섬 입고는 일터로 바로 간다.
는 개뿔.
집으로부터 거의 2시간이 걸리는 건대입구역에 위치한 댄스학원에 갔다가 다음날 알람을 듣지 못하고 지각을 한 적이 있는 이후로 평일에 이런 행동은 가급적 하지 않는다.
노트북 우측 상단에 있는 시계를 보니 어느덧
금요일 저녁 8시 54분.
옆에는 삿포로 맥주 350 ml 한 캔과 텀블러에 큰 얼음조각이 담긴 얼음물이 있다. 여름에 마시는 삿포로 맥주는 겨울의 도쿄에서의 추억을 상기시킨다. 퇴근 후 일주일 동안 받은 스트레스를 8개의 레인이 있는 25 m 수영장 물에 모두 녹이고 왔다. 산소를 채집하기 전 불순물을 걸러내기 위해 물을 거치는 것처럼, 일주일 동안 내 몸에 쌓인 스트레스와 노폐물을 물에 녹이는 의식이다.
수영을 마치고 간 공원에서 돌 사이에 끼인 세 잎클로버들과 사람들의 다양한 얼굴들을 관찰한다. 한 쌍의 연인은 이곳에서 만나 반가워하며 손을 잡고는 어디론가 사라진다. 중학생 즈음으로 보이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는 서로의 볼과 배를 이리저리 만지며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애정을 표현한다.
누군가를 처음 좋아하게 되었을 때, 좋아하는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좋은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의 눈부신 떨림. 이런 걸 처음부터 다시 느껴보고 싶다. 이런 기분에 애절한 음악은 왠지 겉돌기만 할 뿐 흡수되지 않는다. 블루투스 이어폰을 양쪽 귀에 꽂고, 검정치마의 tangled를 들으며 공원에서 버스킹으로 울러 퍼지고 있는 애절한 음악을 밀어낸다. 평영을 하며 물을 밀어낸 순간처럼. 많은 것들을 밀어낸 후에야 마침내 금요일 밤을 맞이한다. 발 끝에 놓인 두 개의 날로 향하는 발걸음. 최고의 순간으로 보내고 말 거란 발악. 이건 잔열 같은 거야. 생에 남아있는 열, 타닥거리며 타는 마지막 불꽃같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