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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닭다리 주인은 누구?

미지근한 사랑과 따뜻한 사랑

by 담연 이주원

신혼 초, 야식은 사랑이다. 신혼을 지나왔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그 사랑.
퇴근 후 둘이 마주 앉아 야식으로 치킨을 뜯으며 나누던 대화와 웃음은 하루의 피로를 풀어주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자리에 묘한 긴장이 감돌았다. 바로 ‘닭다리 사건’ 때문이었다.

아내는 외동딸이었다. 집안에서는 음식의 우선권이 늘 그녀에게 있었다. 닭다리 두 개는 당연히 그녀의 몫이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보니 상황이 달라졌다. 치킨 한 마리를 시키면 내가 무섭게 3분의 2를 해치워버렸으니, 아내는 당황스러웠나 보다. 결국 어느 날, 아내가 내 손을 딱 잡고 말했다.

“오빠, 왜 항상 오빠가 많이 먹어? 앞으로는 똑같이 나눠서 먹자. 대신 닭다리는 내가 먹을게. 오빠는 가슴살도 좋아하니깐! 가슴살은 모두 오빠 거.”

그날 이후 우리 집 치킨은 정확히 반으로 나눠졌다. 닭다리 두 개는 아내의 몫, 나는 가슴살을 차지했다. 작은 사건이었지만, 그때 처음 알았다. 사람은 살아온 방식만큼 사랑을 나누는 방법도 다르다는 것.


나눠 먹는 법을 배우는 삼남매

시간이 흘러 삼남매가 태어나고, 나는 또 다른 장면을 보게 되었다.
어제, 막내 채린이(48개월)만 데리고 예방접종을 하러 갔다. 2호 한준이는 축구교실을 가느라 같이 가지 못했다. 주사 두 대를 맞고 울먹이던 막내에게 마트에서 음료수를 하나 사주었다. 그런데 집에 도착할 때까지 한 모금도 마시지 않는 게 아닌가?.

“어서 마셔. 집에 가면 언니나 오빠한테 뺏겨.”
내가 걱정하듯 말하자, 채린이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아빠, 집에 가서 같이 나눠 마실 거야.”

그 순간 알았다. 우리 집에서는 ‘빨리 먹는 사람이 임자’도 아니고, ‘반으로 나누는 원칙’도 아닌, ‘함께 나누는 문화’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큰딸 다온이도 그렇다. 초등학생이 되고 부모님 댁에 가끔 혼자 가는데 할머니한테 간식을 얻으면 꼭 쌍둥이 몫까지 챙겨 온다. 동생들에게 나눠줄 때의 기쁨을 아는 것이다.

한준이 역시 동생을 먼저 생각한다. 오늘 아침에 바나나킥이 딱 하나 남았다. 쓰레기를 치우고 싶었던 나는 "남은 과자 누가 먹을래!"라고 말했다. 그때 망설임 없이 한준이가 과자를 집었고, 채린이 입에 넣어주었다. 그러자 채린이는 반만 먹고 다시 오빠에게 건넸다.

“오빠도 먹어!”


미지근한 사랑과 따뜻한 사랑

심리학에서 ‘식욕은 본능에 가장 가까운 욕구’라고 말한다. 그런데 아이들이 자기 몫을 미루고 서로를 챙기는 모습을 보면 놀랍다. 신혼 초 아내와 닭다리를 반으로 나눴던 건 ‘질서’를 지키기 위한 약속 같았다. 그 사랑은 약간은 미지근한 사랑이었다.

하지만 지금 아이들이 보여주는 건 다르다. 본능을 넘어서서 상대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 그건 규칙이나 의무가 아니라, 진짜 따뜻한 사랑이다.

심리학적으로 보자면, 이런 경험은 아이들 사이에 ‘안정된 애착’을 강화한다. 나눠 먹는 행위는 단순히 음식을 나누는 게 아니라, “나는 너를 신뢰해”라는 메시지를 주고받는 언어다. 부모가 일일이 가르치지 않아도, 아이들은 서로에게서 배워가며 이런 문화를 만들어간다.


물론 우리 삼남매도 가끔은 다툰다. 질투하고, 삐지고, 자기 것만 챙기려 들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은 서로를 챙기는 마음이 더 크다. 나는 바란다. 이 문화가 오래오래 이어지기를.

아빠 엄마가 세상에 없어도, 너희가 서로를 챙기고 나누면서 살아가기를.

그리고 이제 너희가 서로 그렇게 든든하게 챙기니, 아빠는 조금 더 엄마를 챙겨도 되겠지.

가족이란 결국 의지하고, 밀어주고, 끌어주며 살아가야 한다. 그 모습이 그대로, 오래도록 요즘 자주 사용하는 단어처럼 '지속 가능한' 아름다운 우리 집 문화가 이어지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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