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사회의 시작
얼마 전부터 삼남매는 방 안에서 문을 닫고 논다.
예전에는 “아빠, 엄마 같이 놀자!”라며 손을 잡아끌던 아이들이, 요즘은 문을 쾅 닫고 선언한다.
“들어오지 마! 우리끼리 놀 거야.”
처음엔 살짝 서운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내 품에서 놀던 애들이, 벌써 나를 밀어내네.’
마치 삼남매가 부모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것 같아 여러 감정에 휩싸였지만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다 보면, 금세 ‘관찰자’ 모드로 바뀌어 귀를 쫑긋 세우게 된다.
방 안은 작은 사회다.
요즘 유행하는 골든(Golden) 노래가 울려 퍼지고 삼남매는 노래와 춤 삼매경에 빠진다. 어떤 날은 피카추가 되어 피카추 카드로 상상게임이 벌어지고, 이내 유니콘 학교 학생이 되어 주문을 외우며 마법을 부린다. 첫째는 선생님이자 감독님으로, 역할을 분배하고 출석을 부른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오시면 공연의 막이 오른다. 사회자 겸 연출가는 1호가 맡고, 춤은 눈을 감고 표정연기와 온몸이 뒤트는 막내가 주인공이며, 2호는 목소리 크기로 만족감을 표현한다. 우리 부부와 부모님은 열혈 관객이 되어 엉성하지만, 진심과 열정만큼은 브로드웨이 못지않은 공연에 함성을 지른다.
놀이의 세계는 공부로도 확장된다. 영어 앱을 켜놓고 단어를 따라 외치며 서로 발음을 흉내 내다가, “ㅓㅓ업스~!” 하고 빵 터진다. 서로를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이 공부인지 장난인지 구분이 안 가지만, 여하튼 즐겁게 배우니 우리 부부는 흐뭇하게 미소로 리액션한다.
때로는 드레스룸을 아지트 삼아 1호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으로 애니메이션을 몰래 보기도 한다. 삼남매 사이에 비밀이 생기는 순간이다. 이때만큼은 전우애가 대단하다. "그만 보세요! 아빠가 들어갑니다."라고 하면 “여긴 우리 비밀 공간이야!”라며 온몸으로 문을 막는 2호 모습에, 나는 웃으며 물러설 수밖에 없다. 물론, 그 안에서 웃음만 나는 건 아니다. 한두 번 물러서며 경고를 준 후 어김없이 공권력으로 제압에 들어간다. 저항하는 삼남매의 귀여운 몸짓에 늙은 아빠는 금방 굴복하고 다른 놀이로 전환한다.
방문너머 삼남매 세상에서는 즐거움만 있는 건 아니다. 간혹 고성이 터지고, 울음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곧 다시 조용해지고, 이어지는 건 또 다른 웃음소리다. 싸우고, 풀고, 다시 어울리는 과정. 아이들은 그렇게 갈등을 다루는 방법을 하나씩 배운다.
닫힌 문은 부모에겐 약간의 외로움을 남긴다.
하지만 아이들에겐 자율성의 문이 열린다. 규칙을 정하고, 역할을 나누고, 서로의 마음을 맞추며 배우는 ‘작은 사회’가 그 안에서 자라나고 있다.
결국, 부모가 할 일은 단순하다.
조급히 문을 두드리지 않는 것. 아이들만의 세계를 존중하며 기다려주는 것. 아이들이 상상하는 세상에 동참해서 피카추가 되고 유니콘이 되어 주는 약간의 노력이다.
문은 닫혔지만, 그 안에서 삼남매 몸과 마음은 활짝 열리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성장을 문밖에서 지켜보며, 언젠가 우리 부부를 떠나 자립할 삼남매에게 우거진 나무의 큰 그늘을 품은 부모가 될 수 있게 함께 성장해 나가자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