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편지
아침 산책을 나가니 하얀 공작새의 아름다운 깃털 부채같은 구름이 펼쳐진 예쁜 파란 하늘이 눈에 들어옵니다.
찬바람이 얼굴을 스치면 햇살이 따뜻한 손처럼 다가와 포근히 얼굴을 데워주는, 제가 좋아하는 겨울 날씨의 오늘입니다.
당신께 편지로 제 진심을 전하고 싶어 여러 번 시도했으나 여간 힘이 드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제가 좋아하는 날씨가 당신께 편지를 쓸 수 있다고 응원을 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우선 ‘당신’이라는 호칭으로 예의를 다하지 못한 걸 용서하십시오.
제대로 된 호칭을 쓰면 눈물이 앞을 가려 글을 제대로 쓸 수 없을 것 같거든요. 이해해 주실 거죠?
사랑하는 당신을 떠올리다 보면 매번 눈물이 핑 돕니다.
오늘도 남에게 청승맞게 눈물 흘리는 꼴을 보이기 싫어 일부러 씩씩한 걸음으로 집에 돌아와 참았던 눈물을 와락 터트렸습니다.
그동안 당신께 많이도 고맙고 많이도 미안하면서 한편으로는 섭섭하고 서운하기도 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당신께 서운했던 건 그저 제 욕심이라는 걸 서서히 깨닫고 있습니다.
유쾌하고 청량하게 살고 싶은 저에게 나쁜 기억은 필요 없다고 생각해 흘려버리려고 했으나 서운함이 상처로, 고마움을 표현하지 못한 후회가 가슴 깊이 새겨진 모양입니다.
그런 제 마음이 쌓이고 쌓여 글로서 터져 나오는 오늘입니다.
말로서 진심을 전하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단어 몇 개로는 당신에 대한 한 없는 마음을 표현하기가 한참 부족하다는 생각도 들고, 제가 필력이 부족하여 그렇다는 생각도 듭니다.
MBTI 에서 F와 T의 성향이 골고루 갖춰진 제게 따뜻한 위로와 다정한 말을 바라는 당신 앞에서는 왜 그리 분석적이고 냉정해지는 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걸 드리지 못하는 아직은 미숙한 저이나 아는 것을 총 동원하여 당신이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최선을 다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알아달라는 것도 제 욕심이지요? 저는 여전히 이기적인 욕심쟁인가 봅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한없이 베풀며 힘들게 살아온 당신께 되돌아온 것은 사랑과 이해가 아니었지요.
그래서 배신감과 허탈함에 힘든 시간을 보내셨다는 걸 압니다. 참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삶을 지속하기 벅차고 또 벅차다'는 위로를 바라는 당신의 힘든 고백에 저는 '그래도 주어진 삶은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신께서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걸 멈추고 자기 연민에서 에너지를 얻는 건 그만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하고 주제넘은 말을 했습니다.
그때의 저는 당신의 말에 화가 나면서도 당신을 잃을까봐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그때의 당신은 제게 질책 대신 힘없는 미소를 보내셨지요.
늦었더라도 한심하게 군 것에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힘겹게 살아내는 당신께 제가 감히 어떤 위로를 할 수 있겠습니까.
직접 당신이 되어 경험해보지 않으면 당신의 깊은 상처와 슬픔의 깊이를 어느 누구도 가늠할 수 없을 겁니다.
그래도 저는 당신께서 과거의 상처와 고통은 천천히 흘려보내고 평온하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여전합니다.
그리하여 남은 생에 웃는 날과 즐거운 일이 가득했으면 합니다.
당신께서 원하는 방식으로 위로를 전할 수 있게 성숙해지도록 노력하고 있으나 지금은 저만의 방식으로, 부족한 편지글로서 당신을 향한 사랑과 위로를 전하려 합니다.
그리고 궁금해하시던 저의 근황과 생각도 적어보려고 합니다.
언젠가 당신께 제 편지가 닿는다고 생각하면 무척 부끄러우면서도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 편지를 보고 당신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게 상상됩니다.
'참새가 짹짹대는 것처럼 말도 참 많은 너인데, 글씨로도 읽으라니 정말 너무 한 거 아니니?'
하하하.
그래서 오늘은 이만 줄입니다.
-당신께 사랑과 존경을 담아 윰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