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편지
햇살이 눈이 부신 화창한 날에는 당신께 편지를 쓰고 싶어 집니다.
당신에 제게 태양과도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겠지요?
오늘은 당신께 투정을 부리고 싶어 편지를 씁니다.
사랑과 위로를 전하는 편지를 쓴다고 해놓고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말씀하지는 않으시겠죠?
서툴고 미숙한 제 모습을 읽으며 오늘 한번은 더 웃음을 지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면서 평생에 걸쳐 읽은 책의 양보다 훨씬 더 많은 책을 단기간에 읽고, 사람보다는 하얗게 빈 화면과의 소통을 더 많이 하다 보니 마치 ‘너드‘가 되는 것 같습니다.
만나는 상대가 누구든 상관없이 나의 관심사에 관한 대화를 나누었으면 하는 욕심이 생기게 되지요.
인간관계 스킬이 뛰어나지 않은 저에게 타인에게 경청하는 게 제일 중요한 걸 알면서도 저도 모르게 제 관심사에 관해 입을 쉼 없이 움직이게 됩니다.
그런 제가 참 어리석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아는 건 쥐뿔도 없으면서 말이지요.
며칠 전, 이런 저로 인해 친구가 상처를 입었다는 걸 깨달았을 때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삶이 고달프다고 느껴지는 친구에게 글을 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제 관심사가 배부른 여유로움과 풍요로 느껴졌던 겁니다.
아시다시피 제 객관적인 상황은 하나도 그렇지 않지요.
루이스 하이드의 <선물>이라는 책을 보면 ‘예술가는 시간이 걸리는 노동을 하기 위해 빈민가와 도서관 사이에 있는 자유로운 보헤미아로 후퇴해야만 한다.’라는 글귀가 있지요.
아름다운 창작으로서 예술가가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저에게는 무척이나 공감되는 내용이었습니다.
<선물>이라는 책을 통해 사람들에게 무형의 선물을 전하는 게 제 바람이라는 걸 확신하게 되었고 그 전에 저의 바람이 조금은 이루어졌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저의 꿈과 주머니 사정은 비례하지 않으니 커피 한 잔, 서점에서의 책 한 권의 구매가 망설여집니다.
상호 대차가 가능한 공공 도서관 시스템에 감사하게 되고 예전에 내 소중한 시간과 노동으로 맞바꾼 귀중한 돈을 생각 없이 쓴 것에 반성하며 커피는 물론 모든 소비를 줄이게 되었지요.
그럼에도 지금의 제가 무척 풍요롭다고 생각하는 건 사실입니다. 친구의 착각처럼 돈이 넘쳐나는 건 절대 아니지만요.
오히려 친구의 부의 기준에 따르면 전 가난하다는 표현이 맞을 겁니다. 예전에 다른 일을 해서 저축한 돈은 적었고 바닥난지는 한참되었거든요.
하지만 저에게는 글을 쓸 수 있는 책상과 노트북, 냉장고 안의 배고픔을 거뜬히 해결할 싱싱한 식재료, 지독한 더위와 추위를 피할 수 있는 전셋집, 어디든 갈 수 있는 차, 그리고 제가 어떤 모습이던 사랑해 주고 저의 꿈을 응원하는 동반자가 있습니다.
정말 바랄 것 없이 풍족하지요?
어릴 적 겪었던 가난은 부지런히 돈을 벌고 현재에 감사하며 살 수 있는 힘을 주었지요.
하나 고추장만 덩그러니 놓였던 단출한 밥상에 대한 기억에 의한 것인지, 제 후줄근한 옷차림을 보고 무시하던 친구들에게 상처를 받아서인지, 남들 앞에서 부족한 점을 내보이는 게 싫습니다.
이런저런 연유로 친구에게 솔직한 제 상황을 전하지 못해 오해를 불러일으켰다는 것에 며칠이나 마음이 불편하더군요.
또한 말을 줄여야겠다는 다짐을 하지 않고도 자연스레 경청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간절해졌습니다.
그러다가 시의 형식을 띤 글을 쓰고 나니 마음이 조금은 안정되더군요.
많이 부족한 글이지만 창작에 무조건적인 칭찬을 해주실 당신께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매일 아침, 당신의 평온과 건강을 바라는 기도를 하고 있다는 걸 알려드리며 이만 줄입니다.
- 경청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윰세 올림
<배부른 고양이처럼 그렇게.
내 안의 갈라짐을 살피는 게 벅차
아주 오래 눈을 감고 있었다.
문득 눈을 떴을 때
그제야 어두운 표정의 네가 보인다.
퍽 늦은 위로를 전하는 건
얼마나 어렵고 힘이 드는 일인가.
고통을 건너가는 너는
여전히 그 위에 있고
그곳을 떠날 수 없음에 절망하고 있다.
예민하게 버려진 신경을 가짜 미소로 감춘 채로.
고통이 곧 끝이 날 거라 용기 내어 건넨 서툰 나의 위로에
사람들에게 숱한 상처를 받아 하악거리는 고양이처럼 너는
날카로운 발톱을 세워 나를 위협한다.
그런 너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늘은, 오늘만은
네가 부디 편안하길 마음속으로 비는 것뿐.
따뜻한 햇살 아래 늘어지게 낮잠자는
배부른 고양이처럼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