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번째 편지
추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런 날씨에는 따뜻한 실내에 있는 미술관이나 서점으로 저절로 발길이 움직입니다.
서점에 가면 ‘창조적’이라는 단어를 가진 책들이 눈에 많이 띕니다.
제 눈에는 우리 사회에서 ‘창조적 인간‘이 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려주는 반증처럼 보입니다.
획일화된 사회에서 살아가며 비판적 사고를 하고 창조적 인간이 되기를 바라는 게 참으로 모순적으로 느껴집니다.
개인적으로 폭력의 연쇄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대중 매체들이 우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폭력이 집약된 파시즘의 결정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미약한 개인이 사회의 부조리함에 고통을 겪다가 거대한 힘을 얻어 적을 또다시 폭력으로 상대하기 때문이죠.
힘으로 적을 처단하고 피를 튀기고 몸뚱이가 잘려나가는 폭력을 정당화하는 방식에 저는 거부감이 듭니다.
김정운의 <창조적 시선>에서 독일의 파시즘적 사고, 규율, 질서, 도덕의 내면화가 일본을 거쳐 한국 사회의 기본값이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파시즘적 사고는 남과 다르면 스스로를 검열하고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압박이 자동으로 작동하는 구조라고 합니다.
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의 소설 속에 획일적인 사회 안에서 괴로움을 겪는 주인공의 모습이 마음 깊이 와닿는 게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점에서 거대한 칼을 들고 있거나 전기톱을 머리에 달고 있는 만화 표지를 보다가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을 발견하고 발을 멈췄습니다.
제가 쓴 소설 속 나약한 주인공이 적과 대항하는 과정에서 폭력을 폭력으로 맞서는 게 옳은 건지 한참을 고민한 시간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은 파시즘적인 세계 속에 미약하게 저항하는 개인을 담은 내용이 많습니다.
<데미안>의 싱클레어가 학교에서 괴롭힘을 받지 않도록 돕고 그를 옥죄던 생각의 알을 깨고 나올 수 있도록 이끌어준 데미안은 세계의 흐름 속에 순응하며 전장에 참가하는 것으로 막을 내립니다.
<수레바퀴 아래서>의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우등생 한스는 규율이 엄격한 영재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쓸쓸하게 죽음을 맞고,
<유리알 유희>의 음악에 헌신한 뛰어난 예술가 요제프도 예술보다는 돈을 중시하는 사회와 통합을 이룬 사람이나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으며 끝이 납니다.
<황야의 이리>에서는 분열된 자아를 발견하고 구원을 바라서 집착했던 내면의 자아를 죽이고 애도하며 끝이 납니다.
소설에서 사회적 도덕이 어떻게 개인의 영혼을 분열시키고, 선량함이 폭력이 되고, 순응이 어떻게 자기 부정을 요구하는지 주인공을 통해 말해줍니다.
파시즘에 대항하지 못하는 내면의 무력감은 저 혼자만이 느끼는 게 아니라는 생각에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현재 대중매체에서 무력한 개인이 힘을 얻어 적에 대항해 또 다른 폭력을 생산하는 것도, 체제와 권력 집단의 압력 속에 죽음을 맞는 것도 모두 슬프게 느껴집니다.
한병철의 <고통 없는 사회>에서 자해라는 태도가 급증하고 있고 ‘자상’이 전 세계적인 팬데믹으로 번지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누구나 견디기 힘들 정도로 자기 자신을 짐으로 짊어지고 있는 나르시시즘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파괴적인 내적 긴장을 벗어나고자 ‘자상’을 입힌다고 합니다.
파괴적이고 경직된 사회에 대한 개인의 저항과 분노가 자기 자신에게로 향하게 된 걸까요?
폭력이 만연한 대중 매체가 제 눈에는 자기 자신에게 자상을 입히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직접 자해할 수는 없으니 매체로 통해 시각적으로 대체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마음이 아픕니다.
저는 요즘 폭력을 폭력으로 대응하지 않고, 분노의 대물림을 끊고,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제게는 무척이나 실험적인 도전이라 버겁게 느껴집니다.
주인공이 위기를 맞닥뜨리는 과정에서 사회 속에서 주입된 파시즘에 대항하는 저를 끊임없이 관찰하는 느낌입니다.
자신의 소신을 지키며 주인공이 행복으로 나가길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제 자신이 창조적 인간이 되길 바라면서요.
당신이 살았온 시대는 지금보다 훨씬 폭력이 정당화되던 사회였지요.
폭언, 신체적, 성적 폭력이 만연하던 시기에 꿋꿋하게 자기 자신을 지켜온 당신께 경의를 표합니다.
한 시대를 묵묵히 살아내며 내면의 상처를 온건한 방식으로 치유하며 살아가는 당신이야말로 창조적 인간이 아닐까요?
추위가 살을 에이는 날씨에 제게 온기를 준 시가 있어 당신께 전해드리며 이만 줄입니다.
맨 첫줄에 ‘착하지 않아도 돼.’라는 문장이 착한 아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입된 사고 방식에서 저를 해방시키는 기분이었습니다.
당신에게도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
<기러기> - 메리 올리버
착하지 않아도 돼.
참회하며 드넓은 사막을
무릎으로 건너지 않아도 돼.
그저 너의 몸이라는 여린 동물이
사랑하는 걸 사랑하게 하면 돼.
너의 절망을 말해봐, 그럼 나의 절망도 말해주지.
그러는 사이에도 세상은 돌아가지.
그러는 사이에도 태양과 투명한 조약돌 같은 비가
풍경을 가로질러 지나가지.
초원들과 울창한 나무들
산들과 강들 위로,
그러는 동안에도 기러기들은 맑고 푸른 하늘을 높이 날아
다시 집으로 향하지.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세상은 너의 상상에 맡겨져 있지.
저 기러기들처럼 거칠고 흥겨운 소리로 너에게 소리치지—
세상 만물이 이룬 가족 안에 네가 있음을
거듭거듭 알려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