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의(?) 일상
드라이기로 머리카락을 말리고 있었다. 퇴근 후 특별할 것 없는 오늘 저녁이었다. 나는 집에 있었고, 내 일상을 이루는 물건들이 눈에 들어왔다. 물건들이 자리에 조용히 놓여 있었다. 평소 유심히 보지 않는 그 장면이 왠지 너무 일상적이어서 낯설었다.
드라이기는 매일 쓰는 물건이었다. 머리를 말리는 행위는 이 집에서 매일 하는 거였다. 설거지는 매일 하는 거였다. 바닥 쓸기는 매일 하는 거였다. 나는 일상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일상이라고 불릴만한 게 이런 걸까?
일상적인 것들에 대해 더 생각해 봤다. 커피. 매일 마시는 커피가 있다. 나는 커피를 좋아한다. 회사 다니는 게 힘들지만, 출근길에 테이크아웃하는 시원한 아메리카노는 가격 이상의 가치를 충분히 한다. 그래 이거라도 있으니까 즐겁게 다니지 라면서. 이어서 이 커피가 왜 좋은가 생각해 봤다. 커피가 이렇게나 내게 [일상적인] 음료가 되었음에도 왜 커피를 좋아하는지 생각해 봤다. 난 커피가 멋진 무언가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어디서 탄생하는지에 따라 모두 다른 커피가 되니까 말이다. [커피]라는 단어로 똑같이 불릴지라도. 결국 매일 출근길에 테이크아웃할 정도로 그저 일상적인 커피는 누구의 손에서 탄생하느냐에 따라 다른 커피가 되기 때문이다. 또는 내가 어디서 누구와 언제 즐기는지에 따라 모두 다른 커피가 된다. 출근길 한 손에 든 커피, 휴일 카페에 앉아 천천히 즐기는 커피는 다른 커피다. 바로 이런 점들이 일상적이라면 한없이 일상적인 커피를 다르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그렇다면 그토록 일상적인 [커피]를 좋아하는 나는 일상을 좋아하는 사람인가? 그럴 수 있을 거라고 내게 말한다.
머리를 말리면서 생각했다. 일상적인 커피가 내 하루의 일부를 채우는 것처럼, 내 하루는 대부분 일상적인 것들로 굴러간다. 그렇다면 일상적의 반대말은 특별함일까? 여행을 가면 청소와 같이 일상을 지탱하기 위한 것들을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일상]에서 살아야 한다. 그리고 사실 그 일상을 굴러가게 하는 건 머리 말리기, 세탁기 돌리기, 자주 입는 옷, 커피과 같이 [일상적인 것들]이다. 매일 무의식 중에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하고 있는 것들일 수도 있다. [특별하지는] 않은 일상적인 것들의 특별함이 여기에 있다. 너무나도 일상적이라 그 존재감마저 희미하지만, 안 하거나 없으면 [일상]이 지탱되지 않는 것. 그것이 일상적인 것들의 가치가 아닐런지. 게다가 각자의 손에서 다르게 피어나니 말이다.
그래서 난 일상 곁에 있으면서, 윤활유가 되어주는 어떤 것들을 좋아하는 것 같다. 비단 물건뿐만이 아니다. 사소해 보이는 칭찬, 진심이 담긴 격려, 좋은 인사와 같은 것들. 이들이 없으면 일상은 말 그대로 일상 같은 일상이 될 것이다. 하지만 [꽤 괜찮은] 일상적인 것들이 있다면. 자신이나 다른 이가 살아가는 일상에 [자그마한 빛이라도] 비춘다면. 이유로 충분하지 않을까. 우리가 말하는 일상에 마침내 윤기가 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일상]이라도 매일 새로운 일상이 될 것만 같다. 이를테면 일상적인 커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