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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포 Sep 06. 2021

여름의 왼팔

A의 왼쪽 팔에는 팔 전체를 뒤덮는 흉터가 있었다. 여름이면 사람들은 A의 얼굴보다 왼쪽 팔을 보느라 눈동자를 오른쪽으로 굴리다가도 예의와 사회성에 가로막혀 다시 A의 얼굴로 시선을 돌리곤 했다. 사람들이 A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A는 사람들의 온 신경이 자신의 왼팔에 쏠려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이런 흉터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A는 자연스럽게 시선을 받아쳤지만 가능하면 가장 늦게 긴팔을 벗고 또 가장 빠르게 긴팔을 입었다. BB크림이나 CC크림, 파운데이션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흉터였다.


간절기마다 왼팔의 더위는 오른팔의 몫이기도 했다. 왼팔 외에는 사람들 눈에 띄는 법이 없던 A가 왼쪽 팔만 길고 오른쪽 팔은 짧은 언발란스 티셔츠를 소화할 리 만무했다. 세기말, 박진영이 입었던 비닐바지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A에게는 비닐바지나 언발란스 티셔츠나 매한가지였다. 초여름이나 초가을, 축축하게 젖어드는 겨드랑이는 오른쪽이나 왼쪽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오른팔의 더위는 억울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A의 오른팔은 왼팔로 향하는 시선을 분산하기 위해 더 활기차게 움직였고, 때때로 멈춰 있을 때면 왼팔을 감싸 안았다. 오른팔뿐만이 아니었다. A의 안면근육은 눈썹과 광대를 쉴 새 없이 움직여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왼팔을 밀어냈고 A의 날갯죽지는 왼팔을 뒤쪽으로 잡아당겨 눈에 띄지 않게 했다.


하지만 왼팔은 배은망덕해 보였다. A가 물건을 집을 때, 요리할 때, 화장실 변기에 엉덩이를 붙였다 떼는 과정에서조차 오른팔이 대부분의 일을 감당했다. 슬램덩크의 강백호처럼 ‘왼손은 거들 뿐’이라는 자세였다. 애초에 A는 오른손잡이였다.


A는 일 년 내내 겨울이 이어지기를 바랐다. 어렸을 때는 진심으로 알래스카 이주를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A는 알고 있었다. 감춘다고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떼어낼 수 없어 언제까지고 그 자리에 있을 왼팔의 흉터는 사실 다행의 결과라는 것을. 언젠가 큰 상처를 입은 왼팔은 햇볕을 받고, 물에 닿기까지 오랜 시간 견뎠다. 까딱 잘못하면 왼팔뿐만 아니라 A까지 영영 존재하지 못했을 큰일이었다. 그래서 A는 매년 여름 아가미가 돋을 듯한 한국의 더위에 반팔을 입음으로써 왼팔을 긍정하는 애씀을 이어갔다.


반팔 말고도 A 애쓰는 영역은 점점 늘어갔다. 왼쪽 손가락에 반지를 끼고, 왼쪽 팔목에 시계를 찼다. 종종 시계 대신 싸구려 큐빅이 박힌 반짝이는 팔찌가 자리 잡을 때도 있었다. 오른손잡이들이 그렇듯 왼쪽 손에 액세서리를 걸치는 것은 흔한 일이었지만 A에게는 당연하지 않았다. 한편 수고하는 오른팔이나 오른손, 오른쪽 어깨에는  흔한 실반지나, 실팔찌, 문신도,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오른팔이 초라하지 않은 이유는 왼팔이 A이듯 오른팔도 A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종 오른팔이 왼팔 대신 희생하는 일에 ‘내가 !’ 라거나, 왼팔이 오른팔을 감싸주지 않아 ‘네가 어떻게 나한테!’라고 외칠 법한 순간에도 잠잠했다. 오른팔에는 입이 없었. 그저 A 오른팔로 왼팔을 쓰다듬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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