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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국 생활 6년이면 막걸리도 만든다.

오!! 맛이 훌륭해!

"!!! 막걸리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술은 막걸리다. 술이라곤 어렸을 적 아빠가 저녁에 반주로 맥주를 사 오시면 내가 옆에서 병뚜껑을 따고 잔에 맥주를 따르고 올라오는 거품을 넘치지 않도록 호로록 마시는 그 재미로 그것도 술이라면 초등학교 때부터 마셨고, 다들 그렇듯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애들하고 걷은 돈으로 몰래 사서 한 병 마셔봤던 맥주(정말 착하게 살았네 ㅋㅋ), 그리고 대학 신입생 환영회 때 냉면사발쏟아부어 줘서 억지로 마셨던 막걸리.


술을 접하기 시작한 것이 그때부터였는데 유독 막걸리에 끌렸던 것 같다. 나는 위스키나 브랜디, 한국 술이라면 전통방식으로 제조한 진짜 소주 등의 증류주도 좋지만 막걸리같이 쿰쿰한 향이 나는 발효주를 좋아한다. 마찬가지로 포도주 역시 포도 발효주라 좋아하는 주종 중 하나이다.

아직도 기억나는 막걸리와 관련한 추억 하나는 학교 앞에서 그리 친하지 않았던 고등학교 동창과 마신 막걸리였는데 그때 마신 그 막걸리의 맛과 향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 막걸리 기행이라도 해볼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때 그 막걸리의 맛을 찾아서. 그런데 그 당시 학교 앞에서 팔던 싸구려 막걸리가 질적인 면에서 기행까지 떠나면서 찾을만한 것이 아닐뿐더러 찾아지지도 않을 것이다.




캐나다에 와서 마시는 술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포도주나 위스키, 브랜디 류이다. 한국에서도 잘 알려져 있고 주류매장에 가면 구할 수 있는 술들이 여기도 동일한 제품으로 거의 동일한 가격에 팔고 있다. 어쩌다 정말 어쩌다 한 번씩 소주를 사게 되는데 유명한 양주들 사이에 당당하게 자리하고 있는 것을 보면 뿌듯하기도 하지만 한국에서의 가격에 거의 열 배 정도의 금액으로 팔고 있는 것을 보면 쉽게 손이 가지 않기에 많이 아쉽다.


그러다 어느 날 주류매장을 구경하다가 막걸리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아니... 막걸리를 팔다니, 이렇게도 반가울 수가... '국순당' 막걸리였다. 대중적으로 마시는 장수 막걸리는 없었다. 병을 자세히 보니 발효가 끝난 막걸리였다. 맞다. 장수 막걸리는 생막걸리지. 그래서 유통과정 중에도 발효가 진행돼서 조심해서 병을 따지 않으면 거품이 마구마구 터져  술상을 장악해 버리고 말지. 그래서 국순당 막걸리구나. 소주와 마찬가지로 열 배의 가격을 주고 사 와서 한 잔 마셨는데 생막걸리든 아니든 오... 추억의 그 맛이었다. 전통의 쿰쿰한 향이 코를 자극하면서 텁텁한 목 넘김이 예술인 우리 술 막걸리 그것이었다.(이것 때문에 막걸리가 싫다는 사람이 많은데 난 이해할 수가 없다. 난 심지어 막걸리를 많이 마셔도 다음 날에 머리 아픈 것도 없다. 머리 아파서 싫다는데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자... 다음 순서는 뭐? 그렇다. 막걸리 직접 만들기. 캐나다에 산다면 당연히 수제로 만들어야지. 유튜브를 뒤져보니 누룩이 있어야 하던데 누룩의 개념도 처음 알았고 누룩을 여기 어디에서 팔겠나. 이리저리 인터넷을 찾아보니 토론토에 있는 한국마트에서 막걸리를 손쉽게 만드는 키트를 판다고 했다.(지금은 위니펙 한국마트도 팔고 있다.) 마침 여름방학이라 아이들과 토론토 여행을 계획했기 때문에 기회가 좋았다. 토론토에서 여행을 마치고 막걸리 키트를 사 오는데 공항 검색대에서 이게 뭐냐면서 수상하다는 눈초리를 보냈다. 알루미늄 포장지로 된 것이라 의심스러웠나 보다. 음.. 이걸 뭐라 해야 하나? 쌀이야 쌀. 고개를 갸웃갸웃. 뭐 어쨌든 통과했다.

 



식혜라도 만들어 봤다면 비슷한 발효과정을 거치는 것 같으니 조금 수월했을지도 모르겠으나 처음 경험하는 것이라 약간 걱정스러웠다. 물론 막걸리 키트에 설명된 대로 하면 될 것이다.


모름지기 술은 정성으로 만들어지는 거라고 하니 잡균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일단 목욕재계도 하고 발효시킬 통도 삶기는 번거로워서 그래도 뜨거운 물로 깨끗이 닦고 이제 쌀을 씻기 시작했다. 글루텐 성분을 최대한 없애기 위해서였던가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흰쌀을 정성껏 씻었다.

다음, 씻은 쌀을 8시간 정도 불려주고 한 시간 정도 물을 빼주었다.(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막걸리는 고두밥으로 만들어야 하는 거라는데 고두밥은 해본 적이 없어서 좀 난감했지만 물을 적게 넣고 찌다시피 밥을 짓는 것이라 어찌어찌하니까 음... 꽤 성공적으로 밥이 지어졌다.

다음, 식탁에 깨끗한 김장용 비닐을 깔고 갓 지은 고두밥을 고르게 깔고 식히기 시작했다.(왜 식혀야 하는지도 모르겠... 어.. 혹시 뜨거운 밥이랑 누룩이 섞이면 누룩의 발효균이 죽나?) 그 사이 누룩에 깨끗한 생수를 붓고 덩어리 진 것을 손으로 잘게 부수면서 잘 섞었다. 이제 충분히 식혀준 고두밥을 발효할 통에 넣고 불린 누룩을 부어 아주 오랫동안 잘 섞었다. 섞으면 섞을수록 더 맛있는 막걸리가 된다니 아주 열심히 섞었다. 어우... 지겨워서  더 이상 섞을 수 없을 때까지 섞고 나서 여기에 키트에 나온 대로 생수를 더 붓고 손으로 휘휘 저어 보았다. 이쯤 되니 막걸리 비슷한 거라도 만들어질 것 같아 보였다.  발효통을 덮을 마땅한 뚜껑이 없어 랩을 여러 장 길게 잘라 뚜껑을 대신했다.

일단 키트에서 하라는 대로 따라 해서 그럭저럭 완성을 해냈다. 음... 벌써부터 냄새도 시큼시큼한 게 발효가 시작되는 듯했다.


한 사오일 동안은 하루에 한 번씩 골고루 저어줘야 한다고 해서 아침에 일어나면 나무주걱을 들고 발효통으로 가서 위아래로 골고루 저어주었다. 이때가 재미있고 신기한데  맥주를 따른 컵을 툭 치면 거품이 막 올라오듯이 발효통을 툭 치면 마찬가지로 거품이 올라왔다. 뽀글뽀글 귀여운 소리를 내면서 거품이 올라오는 게 너무 귀엽고 재미있었다. 주걱으로 골고루 저어주면 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건강하게 발효되고 있다는 듯한 시큼한 냄새가 절로 미소 짓게 했다. 한 일주일을 보내고 나니 이제 발효는 거의 끝나서 표면에 떠올랐던 밥 알갱이도 바닥으로 가라앉고 표면과 밥 알갱이들 사이에 맑은술의 공간이 만들어졌다. 깨끗한 숟가락으로 떠서 맛을 보니 '오~~~! 훌륭해!!' 한국에서 마시던 막걸리와는 맛의 차이가 좀 많이 났지만 썩 괜찮았다. 술맛이 좀 더 시고 단맛이 별로 없는 시금털털한(이 표현이 정확히 들어맞는) 맛이었다. 여기에 물을 더 섞고 설탕이나 감미료를 첨가하면 시중에서 파는 생막걸리 맛이 된다고 했다.(술이 달면 싫다. 그래서 달콤한 포도주나 백세주, 장수 막걸리를 안 좋아한다.)

발효가 끝나고 한 오일을 더 지낸 후 이제 제대로 익은 막걸리를 얻을 수가 있었다. 거름 주머니를 사서 술을 걸러 큰 유리병에 담으니 그럴듯한 막걸리가 되었다. 전문가가 만든 유튜브를 보니 커피 거르듯 자연스럽게 거르라고 했는데 아까워서 꾹꾹 짜서 걸렀다. 양 많아지라고ㅋㅋ.




드디어 내가 머나먼 타향에서 내 손으로 만든 첫 막걸리의 시음의 순간이 왔다. 포도주 잔에 막걸리를 가득 부었다.(난 막걸리도 소주도 맥주도 포도주 잔에 마신다. 사발이나 소주잔이나 컵에 마시는 것보다 더 맛있게 느껴진다.) 한 모금 입안에 머금자 처음 만들어 보면서 이리저리 궁리도 하고 망칠까 봐 걱정도 하면서 보름을 기다렸던 게 보람 있게 느껴지면서 내가 만든 최초의 술이 정말로 맛있게 느껴졌다. 야... 이 정도면 팔아도 되겠다. 하하하

처음에 우연히 들렀던 은행에서 만난 한국인 직원이 있는데 여전히 때때로 도움을 받는 그분한테 은행일을 하러 가면서 투명 유리병에 내가 만든 막걸리를 가지고 갔다. 나중에 들렀을 때 자기가 마시고 싶었는데 맛있다면서 캐네디언 남편이 다 마셨다고 하니 서양인도 입에 맞는 막걸리라니... 내 손맛은 진짜로...ㅎㅎㅎ




지금도 일 년에 한 번쯤은 막걸리를 담근다. 이젠 막걸리 키트 따위는 사용하지 않고 한국에서 직접 공수한 누룩을 가지고 만들어낸다. 지인들  집에 초대받아 갈 적에 맛보라고 한 병 들고 가 나눠 마시면 장수 막걸리에 익숙한 사람들은 좀 신맛이 많이 나고 도수가 높은 것 같다고 하고 막걸리 맛을 좀 아는 사람은 만들어 팔아보라고 하기도 한다. 팔기는 누가 사겠다고ㅋㅋ. 얼마 전에는 현미 막걸리를 만들었다가 망치기도 했다. 밥이 제대로 지어지지 않아서 발효가 충분히 안 된 것이다. 그래도 맛은 괜찮아서 몇몇 분들에게 나눠주니 좋아했다.

시간이 남아도니까 별짓을 다 한다는 사람(대표적으로 마이 마누라)있는가 하면 이번엔 찹쌀로 만들어 보라고 북돋아 주는 사람도 있는데 다 필요 없고 내가 만들고 싶을 때 만드는 거지 뭐.

열악한 환경에서 내가 좋아하는 술을 만들어 본다는 게 의미 있을 뿐이다.

막걸리 제조 과정을 사진으로 남겨놨으면 자랑스럽게 브런치에 올릴 텐데 그 당시만 해도 브런치라는 게 있는 줄도 몰라서 사진을 찍어 놓지 않아서 조금 아쉽다.


다음엔 뭘 만들어볼까? 증류식 소주를 집에서 만들 수 있다고 한다. 막걸리와 압력솥과 얇은 플라스틱 관만 있으면 된다니 기회 봐서 만들어 봐야겠다. 이번엔 사진뿐 아니라 동영상도 남겨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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