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왜 이제야 하고 싶은 거니?

흰머리 아저씨, 돋보기 아줌마

어학원에 다닐 때이다. 거기에서 만나서 지금도 우연히도 같은 마을에서 살고 있는 누님이 나에게 물어봤었다.


"크리스(Chris 내 영어 이름)는 졸업하고 취직하고 영주권 받고 그러면 그다음에 뭘 할 거예요?"

"음... 이거 얘기하면 다 막 웃으면서 포기하라고 하는데, 사실 나 경비행기 조종사 하고 싶어요."


예의 그 반응. 약간 뜨악한 표정으로 이거 뭐라고 해야 하나이거나, 와! 너무 멋져요. 꼭 하세요. 이 누님은 전자였다. 뭐 너무나 익숙한 반응이어서 그간 이런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해주었던 적당한 답변으로 마무리 지었지만 나의 꿈은 더욱 단단해져 갔다.

단순한 동경이 아니라 실제로 직업으로서 꼭 하고 싶었다.(실제로 캐나다는 교통편이 안 좋은 오지에는 경비행기 수송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그 꿈은 접었다. 조종사 면허를 가진 사람들이 너 ----무나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에 비해 조종사 수요는 적어서 면허유지 하는데만 엄청난 비용을 들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경비행기로 하는 수송회사에 취직해서 필요한 비행시간을 일하면서 채우거나 비행학교에 강사로 취업을 해서 학생들 비행교관으로서 비행시간을 채우는 방법이 가장 베스트이나 어느 것 하나 호락호락하거나 빈자리가 막 있지는 않은 것이다.

진짜로 하고 싶다면 날 정식으로 채용해 주지도 않은 회사에 가서 청소나 잡심부름을 하다가 어쩌다가 기존 파일럿에게 일이 생겨서 대타로 들어갈 기회를 얻는 마치 영화 촬영장에 기웃거리다가 어쩌다 조연출에 눈에 띄어 단역하나 맞게 되는 행운을 기다려야 되는 것 이런 것이었다.

내가 이십 대의 파릇파릇한 젊은이라면 할 만도 해보겠으나 물가상승률은 전혀 고려치 않은 상태에서 흰머리 한 개당 십원씩 한다고 우리 애들을 꼬셔도 그날 바로 지갑 속 전 재산을 탕진할 정도로 많이 먹은 나이라 눈물을 머금고 파일럿의 꿈은 접고 말았다.




캐나다에 정착한 지 만 사 년 만에 영주권을 취득할 때까지 여기 칼리지에서 배운 전공대로 레스토랑에 취업해서 열심히 요리를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이제 또 다른 것을 하고 싶은 생각이 비집고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지금의 내 실력으로 한 이년 정도만 대학에서 공부하면 자격증을 취득해서 한국에서는 그렇지 못하나 여기에서는 꽤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고 나 역시 소질을 갖고 있는 것 같은 분야만 두세 개를 지목하고 있다.




몇 차례 조심스럽게 아내와 아이들에게 의향을 떠봤다. 돌아오는 답이라는 게,


"좀 주제파악을 하고 살아. 여보세요. 네 나이가 몇 살이세요. 언제까지 공부만 하겠다는 거야. 당신은 가장이에요. 돈 벌 궁리는 안 하고 어쩌면 자기가 하고 싶은 거만 하려고 하냐? 그러려고 캐나다 간 거지?"

아우 증말!!! 전화기에서 보이스톡으로 들려오는 자동으로 주먹을 꽉 쥐고 부르르 떨게 하는 저 언변...


"아빠, 뭘 그렇게 힘들게 살려고 해요? 공부하는 거 안 힘들어요? 그냥 요리하기 싫으면 파트타임으로 쉬엄쉬엄 하면 되잖아요."

이것들은 날 뭐 노인네 취급하는지 뭘 좀 하겠다면 늘 '가만있으라'이다.


내가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이 절대 아니다. 대학을 졸업하는 순간 이제 학교공부하고는 담을 쌓아도 되겠구나. 쾌재를 불렀었다.  대학원도 잠깐 다적이 있긴 하지만 그것도 아주 필요에 의해서였는데 내가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안 순간 당장 때려치워 대학원 1학기 중퇴의 학력이다. 아차, 한국어교사 자격을 위해 대학공부를 이년 더 했었지. 그래서 팔자에도 없는 전공이 두 개나 있다.


어쨌든 공부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고 입으로 털거나 글로 어떻게 때워 는 그런 스타일인데 왜 요즘 와서 뭔가를 계속 배워서 뭔가를 따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곰곰 생각해 보았다.

백세시대라서? 일찍 죽지 못하는 시대가 왔으니 뭔가 하나라도 더 배워놓고 그것으로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에? 글쎄... 딱히 그건 아닌 것 같다. 사실 그런 걱정 덜 하려고 캐나다에 왔는데 뭘. 그나마 머리 돌아갈 때 뭐라도 배워두려고? 아직 내 머리는 이십 대의 그것과 별로 차이가 없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이건 뭐 워낙 젊었을 때부터 노안이라 이십 대 때나 육십 대 때나 별로 다르지 않다는 사람들 얘기 같네.)

만약 내가 한국에 계속 있었어도 경비행기 조종사가 되고 싶고 내가 어쩌면 소질이 있는 지금과는 다른 분야의 꽤 어려운 공부를 하고 싶어 했을까? 아닐 것 같다. 내가 아는 한국은 공부를 장려하는 나라가 아니다.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그래그래 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해 돈 걱정은 하지 말고 이렇게 따뜻하게 밀어주는 나라가 아니다. 울타리 쳐놓고 이 울타리 넘어올 수 있는 사람만 너네가 알아서 공부해 오라는 나라로 알고 있다.

나처럼 경쟁 싫어하고 울타리 치는 건 보는 것조차 싫어하는 사람이 아마 한국에서는 생각도 안 했을 거 같다.(또 생각난다. 학교에서 경쟁을 해? 하고 나에게 눈 동그랗게 뜨고 물어보던 녀석. 매년 여름마다 이혼한 엄마 아빠네 집 돌아가면서 지내고 온다는 백인 고등학생 녀석)

그런데 느지막이 캐나다에서 살게 되니 꾹꾹 눌러 놓았던 그동안의 나의 바람들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 같다. 이거 하고 싶다가도 해봤자 뭐 하나 저렇게 경쟁이 심한데 내 자리가 있겠나, 이거 공부하면 나한테 딱 맞을 것 같은데 하다가도 현실을 직시해. 책상에 쌓여있는 일이나 빨리 처리해. 그러다 점점 나이를 먹게 되 점점 그 꿈은 사라지고 말았겠지.




여기서 살다 보니 그게 서서히 살아나나 보다. 거기다 비용도 별로 안 든다. 공부하니까 일도 할 수 없으니 생활비하라고 돈도 쥐어준다. 이건 심지어 공짜로.

난 오히려 "이 나이에 무슨 또 공부를 하겠어요. 돈이나 많이 벌어야죠, 형님." 이런 후배들 보면 이해를 할 수가 없다. 공부하라고 유학생들 등쳐서 돈 뺐어다가 장학금 주고 생활비도 쥐어주는 나라인데 왜 안 하나 모르겠다. 돈 많이 벌면 세금으로 다 뜯어가서 많이 벌 필요 없다고 공공연히 얘기하면서 말이다. 그렇다고 소일거리로 하는 공부가 절대 아니다. 당연히 취업과 연결되는 그런 공부다.(공부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어, 이 사람아. 뭐 이런 거라면 그분들한테는 미안하다.)




에휴~~ 너무 늦게 왔다. 정말 좀 일찍 왔더라면 하고 싶은 공부 할 수 있었을까? 최소한 나조차 의아하게 나를 바라보지는 않았을 거 같다. 너무 늦은 나이에 그 누구도 선뜻 나의 이 무모한 꿈에 박수를 보내지 않는 지금 평생교육원 최고경영자 과정 다니듯 설렁설렁 다닐 수는 없는 것이다.


"공부는 다 때가 있는 거여."


이게 철없는 아이들에게 하는 할머니의 한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은 나에게 던지는 뼈 아픈 얘기가 될 줄은 몰랐다.


"아니에요, 할머니. 여기는 다시 공부하려고 학교 다니는 흰머리 아저씨랑 돋보기 아줌마들이 수두룩 해요. 누구도 어머! 그 연세에 공부하시느라 힘드시겠어요. 안 그래요."


이렇게 반박을 할 수는 있겠지만 쯪쯪쯪하고 돌아서실 할머니를 붙잡고 설득할 자존감은 많이 떨어진 것도 사실이다.




나는 또다시 이 무모한 도전에 시동을 걸게 될까. 격려를 해주진 못할망정 허울만 좋은 가장이라는 올가미를 씌워 꼼짝도 못 하게 만드는 그녀에 맞서서 나를 찾아 길을 떠나게 될까. 그래서 가정은 도무지 생각도 안 하는 무책임한 가장이 되어볼까?



이미지

https://pixabay.com/illustrations/door-future-to-open-old-wood-127628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