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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싸움을 나이로 합니까?"

우린 동갑이라 많이 싸워요. 월!월!

에피소드 1.


"부부는 그래도 몇 살이라도 차이 나는 게 훨씬 덜 싸우는 것 같아요."

"맞아요. 우리가 동갑이잖아요. 그래서 한 번 싸우면 거의 디지도록 싸운다니까요."


지인부부의 초대로 차 한 잔 마시며 대화를 나누던 중 두 아줌마들이 부부싸움 얘기를 한다. 나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논리로. 슬슬 나의 입술과 혀에 시동이 걸리기 시작한다.


"우리 부부가 제가 두 살 많잖아요. 그래서 싸우다 보면 저 사람이 누나라고 그러고 갑자기 존댓말을 해요. 하하하."

부인이 두 살 연상인 지인부부. 부부싸움을 하면 중간에 누나라고 하고 존댓말을 한다고? ㅋㅋㅋ 드라마에서 그런 광경을 보긴 했는데 실제로 그러는구나.


"하하하. 재밌다. 우리는 그런 게 어딨어. 에휴, 서로 안 지려고만 그러지. 막 욕하고 그러는 것도 나이 차이가 있었으면 안 그랬을 걸요?"

오호. 나이 차이가 안 나서 그랬다? 그래, 내가 한 살이라도 많았다면 안 그랬을 거다? 당신 성향을 봐서는 절대 그랬을 리가 없는데 무슨 소리!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우리 애들이 안다.


그래 맞지. 욕이란 걸 제발 좀 해보는 게 소원인 나한테 입에 담지 못할(내 입장으로서는. 욕을 잘하는 사람에게는 정말 별 것도 아닐 테지만 듣는 나한테는, 이런 천박할 데가.) 욕지거리를 해대는 마누라가 마치 서로가 서로에게 그러는 것처럼 포장을 한다 거지?

무논리로 일관하는 두 사람의 막장대화에  일단 드론공격으로 참전 시작.


"저기... 지금까지 내가 살면서 가장 이해가 안 가는 얘기 중에 하나가 있는데요. 그게 나이 차이가 좀 났다면 이렇게 싸우지는 않을 거다란 말인 것 같아요. 연인이나 부부가 서로 사랑하는데 그중에 대전제 중의 하나가 나이라니. 나이 차이가 나야 안 싸운다고요? 화가 나서 막 싸우는데, 아, 저 사람이 나보다 나이 많은 오빠지. 아, 저 사람이 나보다 두 살이나 많은 누나지. 그래서 싸울 거 안 싸우고 참아요? 그렇다면 그건 애초에 화낼 일도 아니었고 싸울 일도 아니었던 거죠. 그럼 나이가 동갑이거나 한 살이라도 적으면 만만해서 막 욕하고 소리 지르는 건가요?"

적시에 유효타 한 방을 먹였다.


"근데, 실제로 그렇게 되더라구요. 한 살이라도 나이가 많으면 왠지 함부로 하기가 어렵죠."

헛.. 이런, 이 사람은 이게 아주 당연한 거라고 받아들이고 있는가 보네.


"우리가 나이 차이가 났어봐. 이렇게 자주 싸웠겠냐?"

무논리의 대가, 나의 아내의 이런 식견은 너무나 익숙해서 반격을 위한 사고작용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이런 얘기를 하다 보니 갑자기 떠오르는데, 한국에 살았을 때 큰길에서 어떤 육십 대 정도로 보이는 아저씨가 교통경찰관한테 마구 소리를 지르고 있었어요. 차를 길가에 대고 그 뒤에 경찰차가 있는 것으로 보아 교통위반이었겠죠. 뭐지? 하고 보고 있는데 아저씨가 경찰관한테 '야! 이 새끼야, 너 몇 살이나 처먹었어. 응?' 하니까 경찰관이 '나이는 왜요? 나이로 경찰관 합니까?' 보는 내가 다 어이가 없어서... 여기나 미국 같으면 당장 팔 뒤로 꺾여서 수갑을 차든가 미친 경찰이었으면 총 맞았을 거예요. 중요한 건 나이가 아니라 존중이죠. 아내로서, 남편으로서 상대방에 대한 존중. 설령 그것이 부부싸움이라는 상황에서도 말이죠."

드론 공격에 이어 전폭기로 공대지 미사일 두 발 투하.

 

"존중? 그게 말이 쉽지 싸울 때 그게 되냐? 소리 지르고 보게 되지."

역시 우리 마누라. 생존력 최강의 보호막을 장착하고 있다.


고지 점령을 위한 지상군 투입. 아직 살아남은 적들을 섬멸하기 위한 최정예 특공대의 각개전투 시작.

"싸움은, 특히 부부싸움과 같은 말싸움은 논쟁을 통한 설득의 일종이야. 단지 다른 점은 격한 감정이 섞여 이성적이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지. 설득이 뭐야. 내 생각을 상대방이 받아들이도록 하는 행위잖아. 그러면 가장 이성적이어야 하고 아주 논리적이어야 돼. 논쟁과정에서 상대방의 비논리를 잡아내고 그것을 공격해서 득점을 하고 상대방에겐 나의 주장이 너에게도 이익이다라는 점을 받아들이게 하는 말하기 기법. 그래도 상대방을 설득시킬 수 있을까 말까인데 나이가 많다고 찍어 누르고, 열받는다고 소리 지르고 욕하고 해 봤자 전혀 효과 없다. 거기에 한쪽이 나이가 더 많아야 덜 싸우게 된다고? 이게 무슨 무논리에 노예근성이야? 아이고.. 죄송합니다. 이 점에 대해서 옛날부터 원래 생각을 했었던 것이라."


"이거 봐요. 이래서 싸운다니까. 이러니 화가 나겠어요, 안 나겠어요."

마누라에겐 전혀 타격감이 없나 보다. 이런 논리적 공격은 아무런 타격이 없는, 마치 평화로운 지구에 침입한 외계 생물체가 지구방위대의 최첨단 무기 공격에도 끄덕 안 하는 것처럼.

게릴라가 된 살아남은 적들(마누라). 이제부터는 길고 지난한 장기전이 될 듯싶다. 죽을 때까지.




에피소드 2.


나의 닉네임 "공포와 분노는 무지로부터 온다"

나의 다음 계정에서 사용하는 닉네임이다. 원래는 나의 본명을 닉네임으로 사용했는데 어느 순간(아마 핸드폰을 바꾸면서 새로 계정을 만들어야 했고 그때였던 것 같다.) 뭐 좀 멋들어진 닉네임이 없을까 하다가 내가 아는 그분이 떠올라서 이렇게 만들었던 것 같다. 사실 원래는 "공포는 무지로부터 온다"였는데 최근에 역시 핸드폰을 바꾸면서 '분노'를 추가했다.

 

그분은 무학의 할머니이다. 이른 여섯 정도로 알고 있는데 깡시골 농사짓는 집에서 태어나 정말 책이나 드라마에서나 봤던 결혼하는 날 예식을 진행하던 집 마당에서  처음으로 신랑 얼굴을 본 그런 사람이다.(우리 엄마는 그분 보다 열 살은 더 많고 고졸에 교회에서 드레스를 입고 결혼을 했는데 그렇지 못했던 분들도 많았나 보다.)

그분의 특징 중 하나는 사람을 믿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남편이나 자식에게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돈에 관련된 것은 그 누구도 심지어 은행마저도 믿지 않는다.


한 가지 웃기고도 좀 가슴 아픈 에피소드를 그분의 딸로부터 들었는데 그분이 거래하던 동네에 있는 은행이 그분이 걸어가기에는 조금 먼 곳으로 이전한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그분이 난리가 났다고 한다. 왜 그러셨을까? 당장 딸을 호출하셨다.


"저 은행이 내 돈 가지고 뛴대. 어서 내 돈 찾아와 어서!!"

"그게 무슨 말이야 엄마. 그 은행 여기서 좀 떨어진 곳으로 이사 가는 거야. 뛰긴 뭘 뛴다는 거야."


은행은 이사를 가기도 한다. 이사 가더라도 엄마 돈을 가지고 도망가는 게 아니다. 그 은행뿐 아니라 다른 은행 어느 지점을 가도 엄마 돈은 그대로 있고 어디서든 찾을 수 있으니까 걱정 마시라. 거기다가 그 건물 1층에 그 은행 현금지급기는 그대로 있다니까 돈 필요하면 내가 저번에 가르쳐 준 대로 그 기계에서 찾으면 된다.

아무리 알아듣게 설명하고 안심시켜도 막무가내. 저 은행 놈들이 내 돈 가지고 도망간다고 돈 찾아오라고!!

할 수 없이 돈 다 찾아서 근처의 다른 은행에 통장을 만들어 거기에 입금을 했다고 하소연을 했다.


그분의 딸로부터 그분의 인생역정을 간간이 들을 기회가 있었다. 한글은 물론 숫자도 모르는 상황에서 아이들 공부시키겠다는 일념으로 서울로 올라와서 갖은 고생 다하며 때론 지인으로부터 사기도 당하고 은행년(그분의 표현)한테 속아서 돈도 다 뺏길 뻔했고.(들어 보니 사실은 은행 직원이 이분에게 투자상품을 들게 했던 것이다. 은행이자 보다 높다는 말만 기억하고 투자상품이라 원금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건 모르신 거다. 딸이 사정사정해서 손해 났던 원금만은 도로 받았다 했다. 이 부분도 이해 안 가는 건 마찬가지. 손실처리를 했나?)


세상 모든 것들이 공포로 다가왔을 것 같다. 그나마 시골에서는 그분이 가진 경험을 토대로 살아도 그리 문제는 없었을 텐데 도시생활은 은행년이 내 돈 사기 쳐먹는 그런 곳이었을 것이다. 코 베지 않도록 눈감으면 안 되는 그런 곳이었을 것이다.

그런 공포는 남편에 대해서 그리고 자식들에게도 분노로 표현되었다고 한다. 글도 모른다고, 무식하다고 무시하고, 어떻게든 내 돈 뺏어가려고 한다고(몇 년 전 실제로 맏아들이 그분이 가지고 있던 집을 대신 팔아줬는데 그 돈을 그분에게 주지 않았다. 지금까지 무식한 부모 부양하느라 고생한 비용, 그리고 장남으로서 물려받아야 할 유산 미리 받는 거라 선언했단다. 딸의 얘기로는 지금까지 부양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고소한다고 변호사에게 갔으나 가족 간의 금전문제는 우리 법원이 관여하지 않는다는 청천벽력 같은 얘기를 들었다. 한마디로 아들이 엄마 집 판 돈 훔쳐 내빼도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주기적으로 소동을 일으킨다고 했다.


그분의 사연을 듣다 보면 어이없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한데 결국 문제의 원인이 한 가지로 모아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지"

문맹이어서 친절하게 설명되었을 안내문을 읽지 못해 선의로 권했을 은행직원을 내 돈 가로채려는 사기꾼으로 오해를 하고 분노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모든 종류의 두려움, 모든 종류의 분노의 그 연원에는 무지가 자리 잡고 있다고 본다. 알 수 없어서 무서워지고, 알지 못해서 분노가 치민다. 캄캄한 밤 집까지 나를 쫓아오던 남자 알고 보니 옆집 사람이었고, 요즘 들어 부쩍 감정이 오르락내리락 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아내 나도 이젠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는데 알고 보니 갱년기 시작이구나.


알아야 한다. 알면 두렵지 않고, 알면 화도 안 난다.


"공포와 분노는 무지로부터 온다."


 이미지

https://pixabay.com/illustrations/cat-fish-vintage-curious-predator-4637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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