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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선택의 강요

노올고 있네~~

개월 째 놀고 있다.ㅋㅋ

노올고 있네~~ 같아서 헛웃음이 나온다.

내가 원해서 직장을 그만둔 경우라 실업급여 대상자가 아니지만 살던 주에서 다른 주로 이사 가느라고 그만둔 경우는 자비로운 캐나다의 노동정책이 예외로 인정해 주어 매달 이주일에 한 번씩 실업급여를 받고 있다.

비록 본 급여에 60% 정도이지만 아들 둘하고 살아가는 데는 별 문제가 없는 금액이다.(우리가 원래 뭘 사고 어디를 가고 그러질 않아서 모자라지 않기도 하다.) 앨버타 주에서 매니토바 주로 이사한 뒤 실업급여를 한 두 번 수령하면서 이거 언제까지 놀 수 있을까.(수령기간은 9개월로 지정됐다. 사람마다 다르다고 들었다.) 중간에 취업을 해야겠지. 생각하다가 어학원을 다니게 되면서 자존감 떨어진 영어실력을 조금이라도 올리는 계기로 삼자고 결심을 하고 재취업은 잠깐 미뤄두었다. 물론 영어실력 향상의 핑계도 있지만 더 큰 이유라고 칠 수 있는 건 나의 이력을 바꿔보자는 심산 때문이다.




한국에서 이민을 결심하고 캐나다로 올 때 진로를 결정해야 했다. 그래야 어학원 코스를 끝내고 리지를 거쳐서 Working Visa를 받고 6개월 이상 그 직종에 근무를 하면 영주권을 받게 되기 때문이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잠깐 설명을 하자면 이민을 결심하고 해외에 거주하기 시작한 사람들이 왜 영주권 취득에 목숨을 거냐 하면 본인뿐 아니라 자녀교육도 고등학교까지는 면제, 대학은 국제학생과 비교해서 삼분의 일에서 사분의 일의 저렴한 학비 등(최소한 북미나 유럽은 그렇다. 유럽은 대학이상 등록금도 거의 면제 아니던가?) 무엇을 하려고 해도 그것에 부여되는 각종 권리 또는 혜택이 일단 영주권자 이상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공항 세관 통과도 영주권 이상자는 별 꼬투리 잡는 것 없이 무사통과이다.

어쨌든 진로를 정하려고 할 때 영어가 유창하지 않은 경우라면 대부분 사무직 근로자는 거의 불가능하고 기술계통이라든지 본국인들이 꺼리는 일을 하게 된다는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이라 믿는다. 그래서 생각해 본 게 여러 정비나 기술계통은 난 전혀 취미가 없어서 못 할 것 같고 해서 고른 게 요리 직종이었다. 요리는 내가 워낙 음식 만드는 것을 좋아하고 눈썰미도 꽤 있다고 생각하니까. 게다가 거기에 혹 했던 게 요리직종은 거의 100% 취업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이건 실제로 사실이다. 그만큼 진입장벽이 낮다는 이야기기도 하다.) 그래서 1년제 컬리지 과정을 마치고 무난하게 취업을 했다.

처음에는 아는 분을 통해서 우연히 한국인이 하는 브런치 집에 들어갔다가 사장부부에게 된통 데이고(하... 어쩌면 한국인 사장들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은 그렇게도 정설로 유지되는지...) 바로 그만둔 후 시내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인구 2,000명 정도의 작은 마을에서 일하게 됐다.(전 화에서 휴지가 없어서 애태울 때 가게 옆 작은 마트에서 휴지 두 꾸러미를 구했던 그 가게) 그곳에서 약 2년 동안 일을 하는 동안 대도시가 아닌 작은 마을에서 어른들과 아이들의 관계, 그들이 생각하는 캐나다의 미래, 그리고 이민자들에 대한 그들의 생각들에 대해 알 수 있었던 계기였다. 결론은 내가 선택을 잘했다였다.

이곳에서 영주권 준비를 했고 코로나 시국으로 연방정부 이민국이 재택근무로 돌아서는 와중에도 전과 다름없는 기간을 거쳐서 취득을 했다.(정말 운 좋게도 나만 그랬다. 지인들의 많은 수가 평소보다 일 년 이상 시간이 걸렸고 심지어는 아직도 못 받은 사람도 있다.)

이후 잠깐 한국에 아이들과 같이 방문한 후 앨버타주 캘러리로  가서 일 년 반을 거기서 살고 다시 지금 살고 있는 매니토바 주 위니펙이라는 곳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지 8개월 째로 접어들고 있는 현재, 아직도 무엇을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했던, 덕분에 영주권까지 취득할 수 있었던 요리는 이제 그만하고 싶다. 취미로서 요리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지만 직업 또는 사업으로서의 요리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영주권을 취득하고 여기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기로 접어드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갖게 되는 생각이 바로 이제 뭘 해 먹고살아야 하지라던데 내가 지금 딱 그 꼴이다.  하던 것은 하기 싫고 새로운 것은 해본 적 없으니 다시 처음부터 해야 할 것이고 그게 싫으면 사업을 하는 건데 그 또한 만만하겠는가 말이다. 금 다니고 는 어학원도 연방정부 이민국에서 영주권자들에게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라 업에 대해서도 상담을 해준다던데 정말로 뉴커머처럼 상담이라도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사업에 대해서도 지인들과 참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영주권을 받기 전까지는 영주권 이야기, 받고 나서는 사업이나 진로변경에 관한 이야기로 대부분을 차지했던 것 같다. 사업에 대해서 딱 하나의 결론은 뭘 해도 한국에서 하는 것보다는 열 배는 수월할 것이다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다. 마케팅이나 경쟁에 있어서 여기는 너 죽고 나 죽자 식은 없을뿐더러 손님의 갑질, 업주의 횡포 등도 찾아보기 어렵다.(한국인들한테는 한국인 사장의 횡포 정도일까. 그건 뭐 거기로 안 가면 그만이니까. 여기에서 취업을 위해 이력서를 제출하면 나이, 성별, 출신국가, 사진 등을 밝히지 않는다. 최소한 면접 때까지는 그에 대한 편견을 가질 수 없다. 면접 시에도 저런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다. 일단 불법이므로. 정말 웃기는 건 유독 한국인 사장들은 면접 시 대놓고 물어본다. 혹시 몇 년생이시죠? 왜, 사장보다 나이 많으면 불편하니까? 결혼은 하셨고? 왜, 결혼하고 애라도 딸려 있어야 아쉬워서 쉽게 그만두지 못하니까?  한국에서는 어디서 살다 오셨어요? 정말 그건 왜 묻는데? 이러다 고향에 출신학교까지 물어보겠다. 당신 이러는 거 불법이라는 거 몰라? 정말 이러고 싶을 정도다.)



이번 화 주제가 '상념'인데 무엇을 이야기할까 며칠을 생각해 봤지만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는데 지금 앉아서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팀 홀튼 커피숖에서(이번에 한국에서 처음으로 개점한 팀홀튼의 커피값이 여기에 두 배가 넘는 걸 보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여기서는 다방커피 수준이라 맥도날드 커피와 경쟁하는데 한국에서는 시그니처 커피가 됐군. 한국사람들을 호구로 보는 거냐!) 술술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그래 지금 나의 머릿속에 가득 차있는 게 상념이지. 어쩌면 이렇게 고민할 일도 아닐지 모른다. 취업을 하건 사업을 하건, 다시 요리를 하건 다른 일을 하건 그냥 여기서 만족하면서 사는 게 중요한 게 아닌가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려고 사랑하는 대한민국을 떠나오지 않았는가.


둘째가 그런다.


"아빠, 그렇게 고민할 필요 없잖아요.

그냥 설렁설렁 일하면 되잖아요. 일 안 해도 사실 괜찮구요."


무심한듯 툭 던지는 둘째의 말이 고맙긴 했지만(이 녀석이 딸이었다면 얼마나 더 따뜻하게 말해줬을까. 아쉽다. ㅠㅠ) 임마, 벌써부터 은퇴하고 놀라는 말이냐.




정말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그것도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해 잔인하도록 선택을 강요한다. (신앙인들은 그들이 섬기는 신에게 도움을 구하지만 신이 그것까지 안내한다는 건 어불성설이 아닐까. 눈에 뻔히 보이는 지구의 평화도 이루어주지 못하는데 말이다.) 그리고 그 선택의 책임은 오롯이 나에게 지우면서. 그래서 이성과 합리성과 과학적 예측기술을 총동원하여 미래를 예측하지만 그대로 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심지어 내일의 기름값 내일의 환율도 예측 못 하는데 말이다.


아마 이럴 것이다. 지인들과 다시 한번 이야기해볼 것이고, 아마 어학원에서 연결해 주는 상담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차차 마음이 정해지겠지. 사업을 하든, 원래 했던 요리를 다시 하든, 또는  기회가 닿아서 다른 직종으로 진로를 변경하든 뭔가를 선택할 것이다.


그래서 요즘 내가 금과옥조로 여기는 말이 있다. 아까 언급했던.

"무엇을 하건 한국에서 하는 것보다는 열 배는 수월할 것이다."


이미지

https://pixabay.com/photos/people-man-urban-city-model-259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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