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말부터였나 코로나가 무서운 속도로 번지기 시작하자 여기 캐나다도 대응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가능한 한 실내활동을 줄이고 환기를 자주 하고 실내에선 마스크 쓰기를 권장했다. 그 시간 한국의 실시간 뉴스로는 약국에서 생일을 기준으로 마스크를 팔기 시작하고 업종에 따라 상점의 영업시간을 제한하고 다중시설에 대해서는 영업중단을 강제하고 있었다. 캐나다는 이래도 되나 싶게 한국에 비해서는 아주 느슨한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었는데 백신개발이 늦어지고 불과 차로 두세 시간 거리에 있는 미국에서 감염자가 속출하고 환자들이 떼죽음을 당하기 시작하자 어느 날 갑자기 필수적인 업종(식당, 식품점, 병원, 약국 등 소수 업종)을 제외한 모든 업종에 대해 강제 영업중단 결정을 내렸다.
미국과 마주하는 모든 국경을 폐쇄했고 대형쇼핑몰은 입구마다 경비원을 세워 출입을 막았고 비필수 소규모 상점은 모두 철시하고 방침에 따르지 않는 상점은 엄청난 과태료를 물린다는 경고를 내붙였다. 식당이라도 정상영업은 안 돼서 홀에는 탁자와 의자를 쌓아 올리고 금줄을 쳐서 앉아 있지도 못하게 하고 음식을 가지러 오는 사람에게만 팔았다. 드라이브 스루를 하는 상점은 엄청나게 차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유명 패스트푸드점은 오로지 드라이브 스루만 해서 차 없이 걸어오면 마치 자동차처럼 차 앞뒤로 줄 서서 걸으면서 음식을 주문하고 받고 하는 광경도 볼 수 있었다. 이것을 Lock Down이라고 불렀다.
이렇게 긴급 철시 결정을 내린 그날로 기억한다. 일을 끝내고 집으로 차를 타고 돌아오다가 지나친 월마트에 사람들이 줄을 서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Personal Distance를 지킨다고 6피트(2미터 정도) 간격을 카트 길이로 맞추면서 천천히 들어가는 광경이이었다.(그날 이후로 식료품이 떨어져 어쩔 수 없이 마트를 가면 최소한 두 시간은 바깥에서 줄 서서 기다려야 했다. 겨울엔 영하 20도 추위를 견디며 여름엔 구름 한 점 없이 쨍쨍 내리쬐는 바닷가같은 밝은 햇볕을 받으며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입구의 보안직원은 손님이 한 명 나가면 한 명 들여보내는 식으로 하면서 마트 내 손님들이 많이 들어와 있지 않도록 통제했다.)
혹시나 해서 집에 들어와 냉장고를 열어 보니 당장 사야 할 것들은 없었다. 뉴스를 보니 벌써부터 사람들의 사재기로 텅텅 빈 대형마트의 매대를 비춰주는 미국의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여튼 미국은 쯧쯧쯧...
화장실에 휴지가 떨어져 휴지를 가지러 창고에 갔는데 두루마리 휴지가 달랑 2개가 남아 있었다. 내일은 쉬는 날이니까 집에서 가까운 월마트에 가서 휴지를 사면서 다른 식료품도 좀 사둬야겠네. 아 맞다. 마스크도 한 통 사놓아야지. 아유~~ 이게 뭔 난리래. 아까 본 월마트의 광경과 미국의 사재기 뉴스가 좀 찜찜하긴 한데 뭐 괜찮겠지.
다음날 느지막이 월마트로 차를 몰았다. 어! 사람들이 그 넓은 주차장 테두리를 한 사분의 일 정도 둘러싸고 2미터 간격으로 줄을 서 있었다. 느낌이 안 좋았다. 한 삼십 분을 기다려서 드디어 안으로 들어갈 때쯤부터 나오는 사람들의 카트를 쳐다보니 휴지가 담겨있는 것을 볼 수가 없었다. 간혹 키친타월 묶음들이 보일 뿐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휴지가 있는 매대로 카트를 끌고 갔다. 세상에! 매대가 텅텅 비어있었다. 나와 비슷한 세상 느긋한 사람들 몇 명만 허탈한 표정으로 매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아무래도 안 되겠는지 키친타월 묶음을 들어서 카트에 내팽개쳤다. 예의 f로 시작하는 욕설을 날려주면서. 그래서 아까 밖에서 본 카트에 키친타월이 들어있었구나. 옆 생수 매대도 텅 비어있었다. 물이야 뭐 수돗물 잘 나오고 정수기도 있으니까 문제는 안 되는데 휴지는 어떡한담. 다행히 다른 식품매장은 미국처럼 사재기를 하지는 않았다.
얼른 다른 대형마트도 가봤다. 마찬가지로 삼십 분은 기다렸다가 들어갔는데 역시 하나도 없었다. 그날 아마 네 군데 정도 마트를 갔던 것 같다. 다음날 최후의 보루 코스트코를 아침 일찍 갔는데 역시 없었다. 나만 이런 생각을 하겠는가. 누구나 마찬가지겠지. 그런데 억울했다. 다른 사람은 사재기일지 모르나 우리 집은 이제 달랑 한 개의 여유밖에 없단 말이다. 참, 마스크도 동이 났고 손소독제도 없었다. 이전엔 파는 줄도 몰랐던 마스크와 손소독제 매대에는 재고가 다 떨어졌고 언제 공급될지 알 수 없다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실내에서는 마스크를 써야 한다며. 한국은 그래도 생일날짜 별로 파는데 여기는 아무 대책도 없이 중국에서 마스크 들어올 때까지 손가락만 빨면서 기다린다는 거냐!
실제로 마스크는 철시결정 후 6개월 가까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서 아무도 마스크를 쓸 수가 없었다. 다음 해 여름방학에 둘째가 한국을 가게 됐는데 얼마 전 한국을 다녀온 지인한테서 얻어서 쓰고 다니던 마스크의 한쪽 끈이 끊어졌다. 비행기는 타야 하는데 마스크는 구할 수 없고 하는 수 없이 끊어진 끈을 바늘로 기웠다. 한국에만 도착하면 구할 수 있을 테니까. 하도 오래 써서 얼룩자국이 있는 마스크를 쓰고 작은 아들은 비행기를 탔다. 하... 이게 무슨 짓인가. 어디 분쟁지역 난민도 아니고.
하지만 단지 딱 그들만 유일하게 쓰고 있었다. 다름 아닌 중국인들이었다. 마트에 들어가려고 그 추운데서 그 뜨거운 데서 서있으면 아무도 마스크를 쓴 사람이 없는데 유독 중국인들만 쓰고 있었다. 싸구려 일반 마스크부터 탄광에서 쓰는 특제 마스크까지 거기에 의사들이 쓰는 안면 전체를 가리는 투명한 페이스 마스크까지. 정말 욕이 나올 지경이었다. 도대체 어디서 구하는지 자기네만 저렇게 쓰고 다니고. 그때 한참 코로나 발원지가 중국 우한이라는 얘기가 계속 나올 때여서 이러면 안 되는데도 나조차도 도대체 누구 때문에 전 세계 사람들이 이런 생고생을 하고 또 엄청나게 죽어나가고 있는데 너네만 살겠다고 그렇게 마스크를 보란 듯이 쓰고 다니냐. 너무 얄미웠다. 재미있는 건 그때 한국인과 중국인이 구분되는 시기였다. 나처럼 마스크 못 쓰고 있는 동양인은 한국인이다. ㅋㅋ
휴지 얘기로 돌아가자면 그때많이 우울했다. 다른 물건이나 식료품들은 문제없이 공급되어서 안심했는데 그 하찮은 휴지가 없다니. 그럼 화장실은 어떻게 가야 되나. 남은 게 달랑 하나인데 그것마저 다 쓰면 그럼 어떡하지? 그럼 나 아주 어렸을 때처럼 신문지 구겨서 써야 되나? 집으로 들어오는 전단지 버리지 말고 그것이라도 사용해야 하나? 그건 변기에 버리면 안 되는데. 그럼 그거 버리자고 휴지통 만들고 냄새나고... 어우~~~ 짜증 나. 직장에 있는 화장실 휴지라도 들고 와? 에이 그것만은 안 되지. 어우 정말 무슨 나라가 이 모양이냐 휴지 하나 제대로 공급을 못해서 사람 우울하게 만들고 말이야.
직장동료에게 사정 얘기를 했다. 도무지 휴지를 구할 수가 없다고. 웃음소리 호탕한 우리 아줌마 동료. 현재 군대의 인사부서에서 파트타임으로 근무한다고 했다. 군인이 파트타임이라니 참 신기하기도 하다. 군복 입은 모습을 한 번 봤는데 참 이뻤다. 나도 군대 갔다 왔다니까 무척 좋아했었다. 여기 바로 옆에 마트 있잖아 거기서 팔 걸? 여긴 작은 동네라 사람들이 잘 모를 거야. 실제로 시내에서 차로 한 15분을 달려야 하는 곳에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부리나케 달려갔다. 오!!! 휴지가 있다! 코스트코 휴지만큼 큰 묶음은 아니지만 그만큼 싸지도 않았지만 휴지가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몽땅 가져오고 싶었지만 나까지 사재기를 할 수는 없지. 마음을 다스렸고 거기다 한 사람당 두 묶음만 살 수 있었다. 이제 신문지 손으로 막 구길 필요가 없게 됐다.
물론 한 달 정도 지나자 휴지는 정상적으로 공급되었다. 상점들은 한두 차례 일주일 정도 영업을 풀어줬다가 감염률이 다시 오르니 또다시 철시하고를 반복했다. 한국처럼 백신접종을 확인하면 입장시키고 그런 거 없었다. 무조건 락다운. 물론 백신도 얼마든지 맞을 수 있었다. 미국과는 달리 캐나다는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가리지 않고 무료로 접종을 해줬다.(백신 보유량이 캐나다가 제일 많았다. 전 인구가 다섯 번인가 열 번인가 맞을 수 있는 정도로. 제삼세계 국가는 한 번도 못 맞고 있었는데...) 한국이 재난지원금을 주네 못주네 싸우고 있을 때 여기는 철시해서 장사 못하는 상점 주인들에게 매달 임대료 이상의 금액을 척척 지원해 주었다. 락다운 돼서 일 못하고 있는 직원들도 임금 정도의 금액을 계속 지원해 주었고 학생들도 아르바이트비 이상의 금액을 매달 쥐어줬다. 이렇게 정확한 조사도 없이 퍼주다가는 앞뒤로 새는 세금 어떻게 잡을 거냐고 야당으로부터 공세를 당하면서까지 퍼줬다. 하지만 코로나 환자들을 위한 적극적 돌봄이라는지 해외 입국자 2주간의 의무격리 기간 준수 여부등 이런 세세한 면은 완전 꽝이었다.
이런 걸 보면서 느꼈다. 유럽이건 미국이건 캐나다건 서양 문화권에서는 동양 문화권처럼 특히 한국처럼 상황에 맞게 섬세하게 대처하는 걸 바라는 것은 무리겠구나. 이런 나라는 뭔가 큰일이 일어나면 절대로 안전한 나라가 못 되겠구나. 코로나의 공포보다는 공공 시스템, 재난을 대하는 문화의 차이 같은 면에서 공포를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