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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 영화 "가족의 탄생"

영화 "가족의 탄생" - 감독 김태용(2006)


5년 동안 아무 소식이 없다 불쑥 나타난 자유로운 영혼의 남동생 엄태웅은 누나 문소리에게 20년 연상인 고두심을 소개한다. 둘의 관계도 미심쩍은데 같이 데려온 조그마한 여자아이. 이전의 고두심의 남자의 아이를 고두심이 데리고 있었던 것. 이 세 사람 사이에서 어색한 동거를 시작한 문소리의 한숨.

이제는 아마도 남자친구 류승범과의 헤어져야 할 시기가 찾아온 것이라고 예감하는 공효진은 사랑에 눈멀면 앞뒤 안 가리는 엄마의 뒤치다꺼리까지 보태져 인생이 깜깜하다. 엄마는 또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버젓이 가족까지 있는 불륜남의 아이까지 낳아 기르고 있는 상태다. 암환자인 엄마는 오래지 않아 죽고 공효진은 배다른 동생을 맡아 기르며 애틋하게 산다.

약 십여 년 후 고두심이 데려온 아이 정유미와 공효진의 배다른 동생 봉태규는 연인사이다.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고 사랑을 가득 베푸는 여자친구 정유미는 정작 남자친구 봉태규에게는 그 사랑과 친절을 나누어 줄 시간이 부족해 애정결핍에 걸린 봉태규는 헤어질 결심을 하지만 어찌어찌해서 정유미가 사는 집에 같이 가게 된다.

이젠 할머니가 된 고두심, 뻔뻔한 중년 아줌마가 된 문소리가 두 명의 엄마가 되어 그들과 피 한 방울 안 섞인 정유미가 함께 사는, 하지만 너무나도 정겹고 사랑스럽게 사는 이 어정쩡한 가족과 둘러앉아 저녁을 먹으며 봉태규는 자신과 누나 공효진 역시 사실 아무 관계도 없는 두 사람이 같이 가족을 이루어 사는 모습을 새삼 발견하게 되고, 여자친구 정유미가 왜 그리도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며 사는지 이해하는 시간이 된다. 


2015년인가 겨우 한 학기 다니다 때려치운 대학원 수업시간 중 '가족'이라는 주제로 발표수업이 있었는데 나는 이 영화 "가족의 탄생"을 주제로 삼아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짚었었다. 그 이후로 가족이란 대체 무엇일까라는 주제로 지인들과 얘기할 기회가 생기면 언제나 이 영화를 소개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그려지는 가족의 모습이란 두 사람의 젊은 남녀가 만나 사랑스러운 아들 딸을 낳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거기에 조금 더 확장을 하자면 초등학교 때 사회 교과서에 삽화로 그려진 '가계도'라는 것에서 안경 쓰고 수염 기른 할아버지와 뽀글 머리의 할머니가 나의 아빠 엄마 위로 그려져 있고 나와 누나 또는 형, 동생이 나와 같은 줄에 그려져 있는 모습이 기억난다. 그다음에는 이제 그림이 아닌 글을 통해 증조, 고조 부모와 손자 뭐 등등 복잡한 관계가 이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일 년에 한두 번 명절에 만나는 아주 낯선 하지만 우리 아버지, 어머니와 같은 말씨를 쓰는 사람들이 형님뻘이라느니, 고모뻘이라느니 하면서 어린 나에게 절을 강요했던 기억이 있다.

결혼을 한 이후로는 처가 쪽 식구들이 나의 장인, 장모와 같은 말씨를 쓰면서 내가 네 안사람 다섯 번째 작은 아버지네, 얘가 넷째 이모의 둘째 딸이네 하면서 앞으로 이어질 인연을 강조했다. 그때 딱 들었던 생각은 어우~~~ 인연은 일 년에 한두 번이면 족하구요, 전 촌수의 개념이 약해서 누가 어떻게 되는지 아마 평생 모를 것 같네요.


나 역시 아주 평범한 형태의 가족단위에서 태어나고 성장했다. 어릴 적에는 부모 양쪽의 가족과도 무척 친밀하게 지냈지만 대학교쯤부터는 어색한 관계가 싫어서 가능한 한 덜 만나는 사이로 변했고(사촌들과의 나이차이가 무척 많이 나서 더욱 그랬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는 정말로 집안 결혼식과 장례식이 아니면 만날 일이 없었다. 그리고 이런 게 내리사랑이라는 건지 나의 조카들이 훨씬 더 예쁘고 중요했다. 그래서 그런가 아직도 사촌들과의 끈끈한 가족애를 자랑하는 사람들을 보면 무척 신기할 정도이다.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이런 생각도 한다. 내가 처해 있는 가족이라는 환경이 지금 시대에서는 일반적인 모습이 아닐까. 내 세대부터가 우리나라의 산아제한 정책이 거의 시작되는 때였기 때문에 내 나이 바로 이후의 세대부터는 거의 대부분 두 명의 자녀라 옛날처럼 대가족이 모이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고 잘해야 사촌 정도의 관계에서 진정한 친척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상적인 관계라고 전제할 때, 이런 소규모의 가족공동체가 서로 간에 정과 사랑을 나누기에 훨씬 용이하고 그 마음에 진심이 배어 있을 것이며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이제 세상이 일반적인 것만이 옳거나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개념은 점차 엷어지고 있다. 사람들이 만나는 과정 역시 특정하게 만들어진 틀이라는 게 점점 사라지고 있다. 친구관계도 연인관계도 또는 특정한 관심사를 공유하는 모임 역시도 그 생성과 유지 자체의 다채로움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니까 말이다. 이런 변화의 과정을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두가 수용하고 받아들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래도 괜찮나 하는 걱정이 없지는 않지만.




하지만 아직도 가족이라는 개념만큼은 전통적 가치관이 공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위에서 언급했던 일반적인 가족형태로 말이다.

하지만 반드시 혈연관계로 이루어진 형태만을 가족이라고 인정하기에는 이젠 우리 세상이 너무도 다양한 가치를 품고 있다. 마 아빠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혈연공동체만을 가족으로 결정짓기에는 공동체 구성원 간의 그보다 훨씬 끈끈한 이해와 사랑이 존재하는 새로운 공동체가 분명히 존재한다. 쉽게 예를 들자면 동성 커플이 가정을 이루고(물론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해 결혼을 하기 위해 외국에 가서 혼인신고를 하는 경우도 있다.) 입양의 형태이긴 하지만 자녀를 기르기도 한다. 또는 서로의 필요에 의하거나 결혼의 전 단계로 동거를 선택하여 생활하다가 오랜 기간 서로 거주를 같이 하는 경우 또한 가족 또는 가정의 형태를 다. 결국 공동체 구성원이 함께 하는 가치가 일반적인 혈연에 근거하든 그렇지 않든 가족에게 느껴지고 가정에서 보이는 서로 간의 사랑과 그 이상의 애틋함이 존재한다면 그것이 진정한 '가족'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글 앞부분에서 소개한 영화 '가족의 탄생'이 바로 이 모습에 가장 부합하는 내용이라 생각한다. 서로 생면부지의 사람들이면서도 또한 서로 간의 이해와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들끼리 일반적인 가정의 따뜻함 보다 훨씬 뜨거운 정과 사랑을 주고받는 그런 사람들이 같이 사는 모습이 참다운 가족의 모습으로 잘 그려져 있다.


얼마 전 외국에서 생활하시는 작가님의 글 중에서 서로 아빠 또는 엄마가 다른 여럿 아이를 키우는 이웃 엄마에 관해 쓰셨는데 필요에 따라 그 아이들의 아빠 또는 엄마에게 아이들을 부탁하기도 하고 그 사람들은 쾌히 그 일을 승낙하고 아이들 역시 그들을 부모처럼 따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 글이었다. 아이들 누구에게서도 또는 아이들의 엄마 또는 아빠들에게서도 거부감이나 적대감을 찾을 수 없다는 이야기도 덧붙이셨다.  나도 그 비슷한 경험을 내가 사는 캐나다에서도 했는데 아이들의 대화내용 중 수시로 그들의 새아빠, 새엄마 이야기가 등장하고 마치 삼촌, 이모의 이야기를 하는 듯하며 그 누구도 이혼가정의 아이에게서 풍길법한 우울함이나 적개심을 찾아볼 수가 없어서 오히려 신기하면서도 물론 바람직하진 않겠지만 이혼가정이라고 아이들이 비뚤게 자라거나 한다는 것은 더 이상 핑계가 될 수는 없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오히려 그런 가정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이 멀쩡하게 자라는 아이들에게 더 문제이며, 아직까지도 그런 편견을 일반화하는 그들이 더 문제라고 느껴졌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또다시 다다르게 되는 지점은 이 같은 인식의 변화를 위한 사회적 인식 개선의 교육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그들의 덜떨어진 오지랖에 의해 한순간에 사회적 약자의 입장으로 전락할 수도 있는 아이들 또는 일반적이지 않은 가정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 확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국회에 이미 여러차례 법안으로 상정되었다가 통과하지 못했던 여러 형태의 '차별금지법'의 제정으로나 아니면 어서 빨리 진보적인 문화의 등장과 성장으로 이젠 누구도 그것이 신기해서 바라볼 수 있을지언정 딴죽을 걸거나 매도를 하는 일이 없는 사회가 되어 우리 옆집의 아이들의 얼굴색이 다 달라도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가족은 '탄생'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매우 우연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것이 사랑해서 못 배기는 남녀의 만남으로나 서로서로의 안쓰러움과 이타심으로 맺어지는 수많은 인연으로나 그 속성은  인간의 의지에 의해 구성하는 공동체이다. 더 이상의 혈연의 결합으로만 만들어지는 것을 고집하는 시대는 저물었다. 구성원 간의 뜨거운 사랑과 정, 배려가 존재한다면 그 어떤 형태의 가족구성도 가족의 개념에 부합하지 않는 것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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