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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 중압감을 이길 수가 없네...

뻔뻔함으로 살아야겠다.

비정한 상속관계와 근거 모를 인도주의 사이의 어디쯤...


한 오륙 년 전부터 내 정확한 나이를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많이 드신 어르신들이 "내 나이? 몰라, 죽을 때 다 됐지. 뭐. 흐흐흐" 이러시는 것처럼 정확히 내 나이가 얼마지? 이런다.

안 그래도 무슨 일이든 그 가운데 숫자가 끼게 되면 난 정말로 머릿속이 하얘진다. 거기에 은행의 이자계산 같이 어디에서 이런 계산법이 존재하는지 단리(단리라고 하나?), 복리 뭐 이쯤 되면 난 일단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앞에서 얘기하는 사람의 계산에 무조건 순응하는 어린아이가 된다. 나도 신기하고 어이없는 게 계산기로 하는 계산도 할 때마다 다른 답이 나오기 때문에 모든 숫자와 관계 된 일은 아무리 간단한 것이라도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 확인하는 작업을 거친다. 그래야 안심이 된다.


한국에서는 새해가 되면 계산 상의 내 나이보다 두 살이 많아지고 생일이 지나면 오히려 한 살이 줄어 계산보다 한 살이 많아지는 아주 신기한 경험을 하고 살았다. 이게 우리나라의 고유한 나이 계산법이라고 하는데 나에게는 그냥 이해가 안 가는(아니 내가 바보는 아닌지라 왜 그렇게 되는지는 안다!!ㅋㅋ 하지만 이렇게 저렇게 해서 이렇게 계산된다라는 법칙을 알고 싶지 않을 뿐이다.) 은행 이자계산처럼 남의 나라 얘기 같은 것 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러다가 캐나다에 오니 최소한 나이 계산은 너무나 쉽고 간단하다. 올 해에서 내가 태어난 해를 빼면 정확히 내 나이가 된다. 물론 여기가 오히려 철저하게 생일이 지났으면 방금처럼 그렇게 뺄셈 하면 나오는 숫자가 내 나이이고, 생일이 아직 안 지났으면 1을 뺀 것이 현재의 내 나이로 계산한다. 아이고 간단하다.

얼마 전에 우리나라도 나이를 계산하는 규칙을 법적으로 개편한 것으로 알고 있다. 복잡한 우리나라만의 나이 계산법을 없애고 다른 나라와 똑같이 만 나이 계산으로 말이다. 사실 나이 적용 기준이 선거가능 연령 다르고, 성인으로의 적용 나이 다르고 여러 제도에 적용이 각각 다른 것에서 오는 혼란과 비효율을 개선하는 이유로 내세웠다고 한다.  

   

한참 전에 민법을 공부했을 때였던 것 같은데 아마 상속에 관한 부분에서 나이 계산 개념이 나왔던 것 같다. 왜 우리나라의 나이 계산이 다른 나라와 다르냐 하면 아이가 태어나는 시점부터 한 살의 아이를 부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가 아이가 엄마 뱃속에서 열 달 가까이를 채운 것을 이미 일 년을 산 것이라고 보는 것이라 했다. 그래서 아이가 태어나면 그때부터 태아 시기까지 쳐서 한 살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물론 치열한 재산 상속의 다툼 안에서 아버지가 사망한 상태에서 태어난 아기에게 상속의 권리를 부여하느냐 마느냐에 관한 것으로 태아 때부터 이미 생명체의 권리를 부여한다면 아이의 아버지가 죽기 전에 아이는 이미 만들어졌으니 태아에서부터 그 상속의 권리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비정한 금전관계에서 나이의 개념이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우리나라는 생명이 잉태되는 그 시점부터 아이에게 사람의 권리를 부여한다는 매우 아름답고 인간적이기도 한 개념을 부여하기도 한다. 아마 내가 알기로는 우리나라만 그런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다른 나라들은 아기가 태어나고 일 년이 지나야 비로소 나이 한 살의 권리를 부여하는 것으로 보면 우리나라는 얼마나 인간적이냐 하는 근거 없는 인도주의를 펼치기도 한다.


그 나이 대에는이라는 말의 중압감...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나이에 진심인 사람들도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 아니겠나. 한 해 차이로 아주 세분화된 호칭의 형, 언니, 오빠, 누나가 되고 그들에게는 그 호칭에 따른 권리와 의무가 주어지고 그 아랫나이 동생들은 그냥 별의 차이만 주어지는 그들의 명령을 따라야 하는 남동생, 여동생이 된다. 일 년도 아닌 경우도 많다. 불과 몇 개월 차이로 그들이 동생들을 이끌 리더로서의 지혜와 통솔력이 주어질 수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런 위치와 질서를 지금까지 인정해 왔다. 가정에서는 내가 사물을 인식하기도 전부터 내가 손위가 되거나 손아래가 되는 것이고 그에 따라 그에 걸맞은 무게가 주어지기도 하고 의무가 주어지기도 한다.

여기까지는 좋다. 이러한 서열이 있어야 가정 또는 사회공동체를 손쉽게 운영해 나갈 수 있다고 고대 때부터 현재까지 별 저항 없이 이런 체계가 유지되어 온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다. 그런데 내 머릿속에서 내 마음속에서 늘 품었던 의문 또는 이에 더한 반발심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지나가는 나이 대에 특정하게 해야 하는 것들을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강요하는 것들이다. 어렸을 때는 주로 교육에 관련한 것들이 되겠는데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갈 나이, 초등학교를 가서 특정한 분야에 소질을 발휘하여 앞으로 대학에 진학하여 남들보다 우수한 실력을 진작부터 보여야 할 시기,  중고등학교 시절은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이 오로지 앞만 보며 달려야 할 시기 등등 특정한 나이 대는 특정한 뭔가를 해내는 시기여야 한다고 못 박아 놓는다. 이는 마치 무언의 사회적 약속이거나 거스를 수 없는 종교적 신념처럼 여전히 우리를 압박하는 것이 아주 딱 죽겠어서 그 나이에 속한 내가 아직도 성취하고 있지 못하면 마치 찐 고구마가 식도에 딱 걸려서 숨도 못 쉴 것 같은 기분과 매한가지이다.


지인 중의 한 명이 얘기를 한 게 있는데 그가 캐나다로 이민을 오기로 결심한 큰 이유 중 하나가 자기 나이 대에 본인이 그의 친구들보다 이룬 것이 너무 없어서 피하지 않고 싶어서 친구들에 비교당하고 싶지 않아서였다고 했다. 일단 서로 눈치 보고 자랑질하는 관계가 친구관계가 맞나부터 의심스러웠고 그 나이 대에 이루어야 하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 물었더니 (제발 그 말만은... 했지만 바로 그 말이었다.) 넓은 집, 멋진 외제차(한국에서 멋진 외제차가 캐나다에서는 널려 있더라, 아무것도 아니었더라 하면서 첫 차로 독일산 중고 폭스바겐을 구입했다.)였다.  

실망스러운 그의 답변이 조금도 저없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와 내가 오히려 당황스러웠지만 곰곰 생각해 보면 그냥 솔직한 답변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정도의 나이 대에게 우리 사회가 바라는 아니 그 자신이 그려 놓은 그림이 있을 것이다. 그것에 대해 저항감 없이 또는 자존감에 바탕을 둔 가치관 형성 없이 그대로 자신을 올려놓는다면 그 선에 미치지 못한다면 그런 자괴감이 드는 것은 오히려 당연할 거라 생각된다. 그러한 자존감을 갖는 것 자체가 서로 눈치보기 바쁜 우리나라의 정서 상 어려운 것이 사실일 테고 말이다. 나 역시 그런 틀에서 자유로운 사람이라 결코 말할 수 없고 말이다.



 

이 글을 쓰는 시작 무렵에는 나이로 규정 지워지는 불합리한 인간관계 등에 대한 비판 조의 내용을 담으려고 생각했으나 그 나이 대와 사회적 위치에 관해 글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본래의 의도와는 다르게 손쉽게 비판적 견해를 유지할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내가 그 나이 대를 거쳐왔고 사회가 요구하는 바를 이루지 못한 적이 많았고 자존감을 지키려고 노력했으나 순간순간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적도 많았다. 이런 비합리적인 사회적 요구와 편견 어린 시선을 말로만 비난할 뿐 나 자신 역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서글퍼진다.


"그래서, 지금 네 나이에 넌 무엇을 이루었니?"  


너무도 뻔뻔하게 너무도 무례하게 또한 너무도 당당하게 이렇게 물어본다면 이런 무례한 것 같으니... 하면서 당당하게 펼쳐 보여줄 것이 나에게는 있는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누구도 이런 물음에 자신 있게 대답하진 못한다라고 누군가가 위로를 해 줄지라도 현실적으로 자존감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가 보다.


아니다. 그래, 좀 더 뻔뻔해져 보기로 하자.

이 나이에 이것도 못 이루었지만 이것을 이루어야만 이 나이에 걸맞은 사람이라는 건 올바른 명제가 아니다.

그래 이렇게 대답을 해야겠다.


"난 저것을 이루기 위해 오늘도 살아가고 있어. 이 나이에 나의 꿈은 너희들이 생각하는 넓은 집과 멋진 외제차가 아니야. 그것을 이루려고 나는 오늘도 너무도 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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