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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 -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안 아픈 거야?

'차별의 내재화' 그것이 두렵다.

아마 약 십 년 전쯤으로 기억한다. 뉴스를 보다가 정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 당시 여당대표가 외국인 유학생들과 연탄배달 봉사활동을 하는 자리에서 나이지리아 출신 유학생에게

"너는 연탄색깔하고 얼굴색깔 하고 똑같네." 이렇게 농담을 건넸다고 했다.

당장 인종차별 논란이 일어나자 급히 사과를 하고 단지 친근감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던 사려 깊지 못한 언행이었다고 해명을 했지만 유력 정치인의 천박한 인식 수준에 대해 개탄하는 목소리가 지배적이었다.


아마 그 무렵이었던 것 같다. 아주 짧게 다녔던 대학원에서 다문화 가정에 관련한 수업을 듣는 교실에서 나와 같은 전공인 사람이 지인의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정말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시골에 사는 지인이 얼마 전 동남아시아 출신 신부를 맞아 결혼했는데 외출을 할 때면 자물쇠를 밖으로 잠그고 아내를 감금한 채로 외출을 한다고 했다. 내가 깜짝 놀라서 그게 무슨 말이야 했더니

"원래 걔네들이 도망을 잘 가. 돈을 얼마를 주고 데려오는 건데 그렇게 해서 도망가 버리면 그 형님은 완전히 손해지."

순간 어렸을 때 읽었던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이라는 동화 속 흑인 노예 톰 아저씨의 족쇄 채워진 발목이 떠올랐고 그게 당연한 것이라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그 지인이 동남아시아에서 온 아내를 다루는 이야기를 하는 그의 얼굴을 보고 구역질이 올라왔다.


어느새부터인가 자동차 회사를 비롯한 대기업의 생산직 노조를 '귀족노조'라고 멸칭해서 부르는 풍조가 생겨났다. 무슨 이유에서인가 찾아봤더니 평균 일억 원이 넘는 연봉을 가져감에도 불구하고 때만 되면 파업을 주도해서 국가 경제를 망치고 있다는 다분히 의도가 보이는 이야기였다. 실제로 생산직 직원들은 연차가 수십 년이 된 사람들이 많고 잔업에 특근에 휴일 근로 등을 합하면 연봉 일억 원이 넘는 사람이 있는 건 맞지만 그렇게 폄훼를 해도 될 만큼 이유 없는 큰 봉급을 받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같은 생산 라인에서 똑같은 일을 하는 하청회사의 파견직 직원은 동일한 업무를 함에도 임금은 그들에 비해서 형편없이 낮았다.(IMF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당시 김대중 정부가 기업들에게 파견노동을 합법화해주어서 동일노동에 대한 동일임금 원칙을 정부 스스로 무너뜨려 버렸고 기업은 하청업체를 끌어들여 동일한 노동에 대해 본사직원 들에 비해 형편없이 낮은 임금을 주어 생산성을 높일 수 있었고 직원들은 같은 노동을 함에도 불구하고 파견회사 직원들과 다른 입장에 서게 되는 모습이 되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구호를 외치며 파업을 하는 하청업체 노동자들을 외면하는 대기업 노조는 그때부터 귀족노조라 불렸고 다른 건 차치하고라도 하청업체 직원들의 저 구호를 못 본척하는 저들을 보는 나 역시도 저들은 "귀족노조"가 맞다고 생각한다.


몇 해 전인가 기사 하나를 읽었다. 독일에서 벌어진 외국인 노동자들의 인금인상 시위를 다룬 기사였는데 특이한 점이 하나 있었다. 독일의 전국 단위 노조에서 그 외국인 노동자들의 시위에 적극적으로 동조해서 시위에 참여하고 협상을 주도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유는 이러했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대부분이 시간당 최저임금을 받는다. 그들의 임금이 인상되어야 우리의 임금도 연쇄적으로 인상된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의 투쟁을 돕는다."

노조의 힘이 강한 유럽의 임금인상 투쟁은 달랐다. 외국인 노동자도 동일한 임금을 받는 그들과 같은 노동자로 인식하고 그 나라에서 가장 낮은 단계에서 낮은 임금을 받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임금 등의 처우가 개선되어야 각 단계에 있는 노동자들의 처우도 연쇄적으로 상승한다는 의미였다. 같은 현장에서 같은 노동을 하는 같은 노동자끼리 단지 소속회사가 다르다는 이유로 임금차별을 받는 것에 대해서 동조하지는 못할망정 외면하는 우리의 현실과는 매우 달랐다.

최근에 총선 과정에서 조국혁신당이 내놓은 '사회연대 임금제'가 여당을 비롯해 심지어 노동계로부터도 심한 반발을 받았다. 대기업 근로자의 임금 상승폭을 낮추고 중소기업 근로자의 임금 상승폭을 올리고 그에 따른 기업의 비용은 세제지원으로  임금불평등을 개선하자는 취지였지만 왜 희생은 대기업 근로자만 하고 그에 대한 지원은 중소회사만 받는가 하는 반론으로 그 정책의 대 전제인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취지는 빛을 보지도 못했다.


위의 몇 가지 사례는 우리나라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이제는 그것이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어느 순간 이게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도 분간이 어려운 차별 또는 불평등의 모습이다.

이렇게 말하고 싶지는 않은데 우리는 참으로 많은 불평등과 차별 속에서 살아오는 것 같다. 말하기도 입 아픈 성차별, 학력차별, 나이차별, 출신지, 직업....

이전의 차별에 대한 저항은 절박했다. 몇 십 년 전 기초적인 생활조차 영위하기도 어려웠을 당시 뭔가 하나라도 남들과 달리 나은 게 있다면 입으로 들어오는 먹을 것의 갯수가 달라지고 종류가 달라졌으므로 차별을 하는 사람들조차 너무도 절박했다. 당하는 사람은 물론 말할 것도 없겠지만. 그렇기에 차별은 곧 생존의 박탈이었으므로 그 테두리 안에 들어가기 위해 나와 또는 우리와 다르거나 조금이라도 못한 면이 있는 이들에게 울타리에 철조망까지 올려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차별을 당하는 사람들조차 차별을 할 수 있는 울타리 안으로 어떻게든 들어가야 살 수 있었다. 그것은 마치 의자 뺏기 놀이처럼 언제나 모자란 의자에 앉기 위해 나보다 약한 자를 밀어내야 내가 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물세계와 다를 바 없는 약육강식의 시대였다.


 이것들에 대한 문제점과 폐해에 대해 수많은 사람들이 소리 지르고, 시위하고 난동을 부려서 그나마 간신히 간신히 변화하고는 있는데 나는 이 가운데서 틈을 비집고 나오는 이상한 현상에 주목하고 싶다.

이전부터 죽 존재해 왔고 어떤 때는 권위주의적인 모습으로 어떤 때는 폭력적인 모습으로 또 어떤 때는 야비한 모습으로 존재해 왔다. 하지만 요즘에는 체념의 모습, 무기력의 모습을 넘어 차별에 대한 무의식적 동조로 나타나곤 하는 데에 위험함을 느낀다.


"검사들이 그 정도의 위치에 올라갈 때까지는 그들도 엄청난 노력을 했어. 검사들 없어봐. 범죄자들이 득실거릴걸? 그래서 우리는 그들의 특권을 인정해 줘야 해."

"삼성에 이재용이 없어 봐. 삼성이 제대로 돌아갈 것 같아? 그런데 자꾸 감옥 보내고 상속세 폭탄 때리고 말이야. 어디 경영할 맛 나겠어?"

"그럼 너도 대기업 가면 되잖아. 실력도 안 되면서 불만이 많아. 어떻게 대기업 직원하고 중소기업 직원이 월급이 같을 수가 있어. 아무리 같은 일을 하기로서니."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 그것을 이용하여 특권을 누리려고 하는 것, 그것들이 결국 평등에 반하고 차별을 공고히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보여주는 멋진 이미지 또는 허상에 취해 그들이 하는  행동이 결국 나에게 손해와 차별을 가져다주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특권과 권세를 선망하고 있다는 것이 나는 두렵다. 그것이 차별에 맞서 연대해야 할 우리들도 서로 등 돌리고 원수가 되게 만들고 있어서 더욱 두렵다.

본인 자신 차별을 받고 있는데도 그것이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 내가 모자라서, 내가 그들보다 못해서, 내가 천하게 태어나서... '차별의 내재화'를 수용하고 있는 듯한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두렵다.

  

어떤 학자가 그랬다. 한국인은 "오기의 민족"이라고. 그래서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고, 친구가 외제 차를 사면 나도 빚을 내서라도 사야 하고, 다른 나라에 비하면 비교적 짧은 식민지 시절을 겪었지만 그 어느 나라보다 철저하게 일본문화를 지우려 하고 아무도 무시하지 않은 일본을 우리만 개취급하는 것이란다. 동의한다. 빚지고는 못 배기는 민족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쩌다가 어떤 연유로 노예근성에 가까운 차별의 내재화를 겪고 있는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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