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내 친구는 몰래 다가가서 뺨에 뽀뽀를 하면 질겁을 하는 여자 아이들을 보는 게 너무너무 재미있었다. 이런 몇몇 장면이 아직도 기억나는데 이런 개구쟁이 짓을 하고 다녔던 때가 유치원 때였다. 그런데 이 장난도 오래 못 갔는데 여자애들이 집에가서 엄마들한테 일러바치는 바람에 우리 엄마가 유치원으로 불려 갔고 난 그날 밤 엄마 아빠 누나들로부터 엄청 구박을 당했나 보다. 아직도 그날 밤 무척 창피했던 기억이 남아있는 걸 보니 말이다.
"내가 엄마 할 테니까 네가 아빠 해."
"그럼 얘네들은?"
"뭐... 우리 애들이지."
마치 '응답하라 1987'처럼 우리 동네도 또래의 아이들이 여럿 있었다. 그중 여자 아이는 딱 한명이고 우리가 다른 친구들보다 나이가 한 살 더 많은 바람에 저런 놀이를 하면 난 아빠 걔는 엄마 역할을 했다. 그 아이 주도로 한 것 같은데 별로 재미가 없었다는 기억이 있다. 종이 인형에 옷 입히는 걸 한 것 같고, 모래 자갈 같은 걸로 음식을 만드는 걸 했었다.
아주 어릴 적 가물가물 한 몇몇 기억 중 '여자'라는 이성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 저런 모습들이었다.
좀 더 커서 학교를 다니고 나서부터는 여자 아이들의 모습은 대부분이 많이 표독스러웠다. 넓지도 않은 공동 책상에 연필로 몇 차례나 줄을 긋고 넘어오지 말라고 선언을 하면 착하고 순진했던 나는 속으로 왜 저런 행동을 할까? 조금 넘어갈 수도 있는 것이고 만약 저 애가 넘어와도 난 아무렇지도 않을 텐데... 이러면서 가능한 한 넘어가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기억도 있다.
그 후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학교까지 그 시절은 늘 해마다 같은 반에 좋아하는 아이가 있어서 그 아이와 어떻게 하면 잘 지내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던 시기였다. 그때는 어릴 때처럼 금 넘어온다고 꼬집는 여자애들도 없었고 상대방에게 마음에 드는 행동을 하려고 서로서로를 '의식'하는 그런 때였다.(돌아보면 사람 꼴이 아니었던 것 같다. 저건 마치 강아지들이 서로 마주치면 잡아먹을 듯이 짖어대거나 또는 호기심에 차서 뒤꽁무니를 킁킁대며 냄새 맡는 것과 유사한 것 같다.)
그렇게 사춘기를 보내고 이제 대학에 와서는 최초로 서로 동일한 '여자 인간'으로 (당연히 하나의 인격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대했고 그들 역시 나를 그렇게 대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 중 어떻게 '운명의 짝'을 만나서 사랑이란 걸 하면 너무나 좋고 말이다. 그런데 그 맘 때의 나는 이성만 쫓아다니기에는 너무도 나 자신 고고하려고 애썼고, 그런 나를 어필하기에는 나 자신 너무도 매력이 없었기 때문에 '운명의 짝'은 뭐... 없었다.
이만큼이 내가 나와 다른 성으로서의 '여성'을 인식했던 내 초년의 개괄적인 모습이었다. 그때까지 '여자'는 나와 동등했다. 그 당시는 우리나라가 절대적 가난에서 이미 벗어난 지 오래였고, 절대로 중산층이 아니고중간층 정도였던 우리 집도 극도의 가난을 겪어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나와 동등한 그리고 지금까지 나와 동등했던 여자들도 나와 같은 삶을 살았을 거라 생각했다. 초중고 시절도 늘 거의 동수의 아니 중학교 때는 남자보다 여자들이 반마다 대여섯 명씩 더 많았다. 고등학교 때도 여고라고 학생 수가 적거나 하진 않았고, 대학에 와서도 공대나 이과대만 남자가 많았지 나 같은 인문대나 사회대 계열은 남녀 동수이거나 여초였으므로 이미 '동등'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1학년 때 교양과목으로 수강했던 이름도 생소했던 '여성학' 시간에 처음 알았다. 그 당시 고졸 여학생의 대학 진학 비율이 남학생에 비해 현저하게 낮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럼 지금 나와 함께 이 수업을 듣는 저 여학생들과 교실마다 꽉 차있는 그리고 저기 저렇게 교정을 거닐고 있는 저 여학생들은 그 적은 비율의 여대생 중의 하나란 말인가?
"뭘 그런 것 가지고 아직도 마음에 두느냐라고도 하는데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말로 많은 비율로 먹는 것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차별을 당했다는 이야기가 많아요. 늘 남동생이나 오빠한테 양보해야 했다고 말이에요. 사소한 것 같지만 그 사소한 것을 지속적으로 박탈당해야 한다면 그 상실감은 적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이런 의미로 말씀하신 것 같은데 그 교수님의 말씀이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한편으로는 우리 집은 안 그런 것 같았는데 사 남매 중 외동아들 막내인데도 불구하고 부모님이 나만을 위해서 특혜를 베풀진 않았던 것 같은데... 그러나 아주 가깝게 눈을 큰댁으로만 돌려도 사촌 형을 위해서 모든 누나들 여동생이 희생을 해온 것은 사실이었다.
"우리나라의 여성은 아직도 '이중착취'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단 여성이라서 받는 성차별적 착취와 가족 내에서의 착취 이 두 가지의 착취는 한국에서 만의 독특한 특징입니다."
어떤 책에서 봤는지 어떤 강연에서 들었는지 기억에 없지만 "이중착취"라는 개념이 가슴에 와닿았다.
여기서 가족 내에서의 착취란 엄마이기 때문에, 딸이기 때문에, 며느리의 입장이어서 받게 되는 착취를 말한다. 엄마의 위치로서의 예를 들자면 엄마가 된 여성은 아이를 키우기 위해 다니던 직장을 포기하고 가족과 사회의 압박으로 전업주부가 된다(1차 착취 즉 성차별적 착취). 여성의 자녀가 장성하여 아이를 낳으면 그 자녀의 사회생활을 위하여 때때로 때론 전적으로 손주의 양육과 더러는 자녀의 가정의 살림까지도 도맡는 상황이 된다(2차 착취 즉 가족 내 착취). 이런 주장을 펼치는 그 사람조차 어머니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다고 했다.
"여성해방을 이야기하고 다니면서 정작 네 아이는 왜 나한테 맡기고 다니냐. 나부터 해방시켜 줘라."
대학을 마치고 취직을 했다. 대기업은 아니었으나 누구나 다 아는 식품회사에 들어갔다. 지긋지긋했던 군대와 하나도 다를 바 없는 분위기의 회사에서 더욱 힘들고 생소했던 것은 유니폼 입는 여직원들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한 번도 교복을 입지 않았었던(우리 학교는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오래된 신식교육기관의 시초여서 그 역사를 자랑스러워했던 학생들의 교복을 입자는 여론이 아주 높았으나 교장 선생님은 교복을 입으면 학생들의 개성이 사라진다라는 지론으로 교복을 입지 않았다.) 나는 출퇴근할 때는 거리를 걷는 여자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는 여직원들이 회사에서는 하나도 예뻐 보이지 않는 유니폼을 입고 있는 것이 너무도 보기 싫었다. 더구나 고객을 직접 상대하는 경우가 전혀 없는 곳이었기에 유니폼을 입을 필요는 전혀 없었는데 말이다. 더욱더 어이없던 것은 나와 같이 입사했던 여직원은 유니폼이 빨리 안 나와서 힘들다고 하는 것이었다. 맞춤복이었기 때문에 시간이 걸려서인데 그래도 유니폼을 안 입으니까 자기만 소외되는 것 같다고 했다. 와~~ 나는 세상 어떤 잘 만든 유니폼이라고 해도 집에서 굴러다니던 무릎 튀어나온 운동복 보다 좋아 보이는 건 없던데... 유니폼을 입는 순간 너는 뭣도 아니고 그냥 이 회사 '여직원'일뿐이야.
선배한테 물어보았다. 고객을 직접 상대하는 곳도 아닌데 왜 여직원들은 유니폼을 입냐고.
"야, 우리도 양복 입잖아."
허... 이게 또 그렇게 이어지는 거야?
이 회사에서 바로 윗선배와 여섯 번 소리 지르며 싸우다가 육 개월 만에 때려치웠다. 두 번째 회사에서 어느 전체 회의 날 안건이 '여직원 유니폼 착용'이 올라왔다. 이 회사도 전 회사와 마찬가지로 고객응대는 거의 없는 회사였는데 대단치 않은 회사임에도 이것마저도 정말 대단치 않게 따라가려 한다고? 이건 뭐 안 봐도 뻔 한 꿍꿍이였다. 유니폼 입혀 놓고 그냥 '여직원' 만들려는 수작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발언권을 얻어 십분 이상을 떠든 것 같다. 나의 열변으로 '여직원들 유니폼 입히기 공작'은 없었던 일로 돼버렸다. 알고 보니 상무의 제안이었다는데 말이다.(나는 아마 뭐든 꿍꿍이가 음험하면 엎어버리는 스타일인가 보다.)
그런데 회의 끝나고 고참 여직원이 지나가면서 나에게 한 말에 약간의 뇌정지가 왔다.
"그렇게 열변을 토해준 건 고맙긴 한데 우린 유니폼이 더 편해. 뭐 입을까 생각 안 해도 되니까 말이야."
적절한 건 아닌 것 같았지만 갑자기 이런 문구가 떠올랐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
어찌 보면 가장 유치한 논쟁이 나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게 어이가 없기도 하고 한심한데 그런 생각을 우리 아들들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군대가 그렇게 편해졌다면 여자들도 의무복무 시키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여기 캐나다만 봐도 그렇잖아요. 연봉도 정말 많고 주택도 지원해 주고 여러 가지 복지혜택에 제대하고 대학 가면 등록금 전액지원에 연금혜택도 엄청 많잖아요. 근데 우리나라는 그나마 있었던 가산점 제도마저 폐지해 버리고. 이제 젊은 사람들 결혼도 안 하는데 그럼 아이도 안 낳고. 안 그래도 인구 줄어서 군대 갈 사람도 줄어드는데 여자들 군대 가도 상관없는 거잖아요. "
"있잖아. 대전제가 있어. '모성보호'라는 건데. 여성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우선적으로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이지. 이게 무슨 어쭙잖은 서구식 신사도 같은 게 아니라 현대의 인간세상이라면 마땅히 전제되어야 하는 가치란 말이야. 그래서 국방의 의무 또한 이 전제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지. 물론 특수한 몇 나라에서는 여성징병제가 있긴 하지만 말이야."
"그게 아주 위험한 실전의 상황이라면 이해되겠는데 우리나라 같이 어느 나라 보다도 안전한 전쟁의 위협이 거의 없는 나라에서 모성보호라는 이유로 그 많은 유능하고 막강한 인력을 포기한단 말이에요? 군대 편해졌다면서요. 핸드폰도 쓸 수 있고. 군대 다녀온 사람들을 우대하지는 못할 망정 이젠 거의 천대 수준이잖아요. 병장 월급 백만 원 만들어 준다고 그게 변하겠어요? 왜 남자들만 가야 되냐고요. 인정도 못 받는데."
"아니 왜 이런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네. 신성한 국방의 의무라는 말은 나 역시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말이지만 의무이니까 수행을 하는 거고, 어쨌든 내가 그것으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는 명분이 생기는 건데 그게 왜 그렇게 남자 여자 편 갈라서 싸우는 소재로 쓰이는지 난 사실 이해가 안 된다. 그리고 여자들 군대 보내서 고생시키면 좋냐? 안 그래도 군대문화로 온 나라가 아직까지도 국방색으로 퍼렇게 물들어 있는데 거기다 여자들까지 군대문화의 세례를 받는다? 와... 난 상상도 하기 싫다."
"페미니즘은 너희들이 생각하는 그런 사상이 아니야. 페미니즘은 다른 말로 한다면 평등주의야. 지금까지 남성중심주의로 만들어진 세상을 이제는 남자와 여자가 평등한 관계로서 권리를 가지자는 내용이야. 너희가 말하는 페미니즘은 급진 페미니즘이라고 거기의 아주 일부분에 속할 뿐이야. 어느 사상이나 급진주의는 있기 마련이니까."
"알아요. 아는데 지금 우리나라의 페미니스트는 아빠가 말하는 급진 페미니즘을 따르고 있어요. '혜화역 시위'에 참가했던 사람들도 그렇고 그때부터 나왔던 '남혐', '한남', '미러링' 이런 것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용한단 말이에요."
"내가 알기로도 우리나라의 지도자격의 페미니스트들이 이젠 정부, 정당, 언론사 등에 들어가서 그들의 목소리를 높이고 때로는 여론을 호도하기도 한다고 들었어. 급진 페미니스트들의 세력화와 권력화를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겠다. 내가 옛날에 알고 들어왔던 '여성해방이 인간해방이다.'라는 말은 성평등이 인간 평등이다라는 개념이었는데 왜 이리도 변질됐는지 모르겠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라는 말이 있는데 왜 우리나라는 좋은 뜻으로 들어오면 꼭 이상하게 변질돼서 퍼지는지 모르겠더라."
어떻게 아름답게 정리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남녀' 또는 '페미니즘'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는 날인데 글을 쓰다 보니까 이렇게 되어 버리고 말았다. '생각의 편린', '기억의 조각들'이라고 해야 하나 이번 주제에 관해서 생각나는 것들이 이런 내용들이었다. 어떻게 보면 연계성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어찌 보면 서로 다른 이야기인 것 같기도 한데, 그래서 이 이야기들을 휘익 몰아서 깔끔하게 정리를 할 수가 없었다. 그만큼 쉽지 않은 주제여서 그랬나. 여전히도 수많은 논란이 일어나는 상황이어서 그런가. 아님 이것에 대해서 나 자신 정리된 뭐가 없어서 그런가. 아무튼 그렇게 되어 버렸다.
뭐 어떡하겠나. 독자님들에게 공을 넘겨버려야지.(죄송해요ㅠㅠ)
한 가지 소망이 있다면 남녀 간의 갈등은 좀 높은 수준에서 논의되는 모습을 보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이렇게 까지 하는데 너희는 하는 게 뭐가 있냐 이런 식의 초등학생들 금 넘어왔다고 지우개 뺏어가는 식의 싸움 말고 말이다. 수준 낮은 싸움은 부부싸움으로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