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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 그런 건 좀 알아서 하세요. 하느님 곤란해요.

아직도 휘둘리는 우리들

정자 처마 끝에 달린 풍경의 은은한 딸랑거림에 문득 잠을 깼다.

군복무를 마치고 유럽여행 비용을 벌기 위해 삼성동에 있는 한식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점심을 먹고 나면 가끔씩 걸어서 오분 거리에 있는 봉은사를 찾곤 했다. 서울에서 워낙 유명한 절 중의 하나인 봉은사는 많은 신도들이 오는 곳이라 늘 번잡했지만 경내에 커다란 정자가 하나 있어서 거기에 잠깐 앉아 휴식을 취하거나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내 기분도 고요해졌다. 이곳에 가끔씩 앉아서 졸기도 했는데 그날따라 무슨 소설에서처럼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소리에 잠을 깼던 것이다. 그리 춥지 않은 겨울이었는데 해가 따스하게 비추자 식곤증처럼 잠깐 잠이 들었었나 보다. 별거 아니었지만 나에게는 신기한 경험이었나 보다.

경내를 돌아보면 많은 연등을 볼 수 있었는데 연등마다 한지 같은 것으로 뭔가 글자들이 적혀있었는데 다가가 자세히 보니 각자의 바람들을 적은 종이를 매달아 놓은 것이었다. 또 기왓장에도 앞부분에 뭔가 적혀 있어서 보니 그 역시 연등에서처럼 소원 같은 것이 적혀있었다. 아... 절에서는 저렇게 연등이나 기왓장을 구입하고 대신 소원을 비는구나. 마치 교회에서 헌금을 하듯이 말이다.  

이제 다시 일터로 돌아가기 위해 사찰 정문을 나서는데 그 당시 최고급 승용차 한 대가 경내 안 쪽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차량 경내 출입금지'라고 쓰여 있는 표지를 지나치면서 말이다. 저 차는 뭐지? 하면서 운전자를 봤더니 스님이 운전하고 계셨다. 어... 관계자 스님이시구나. 도심에 있는 절은 승용차가 기본이겠지.


10여 년  전에 한국에 있을 때 한국어 교사로서 외국인근로자들에게 한국어 수업을 이년 정도 한 적이 있었다. 주로 동남아시아와 동유럽 국가 출신들이 많았는데 그중 네팔에서 온 사람 하나가 기억에 남는다. 나이도 나랑 한 살 차이 밖에 안 났고 성격도 참 온순하고 서글서글해서 자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한 번은 그가 네팔엔 높은 산이 아주 많아서 여기 한국의 산은 아기 산들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럼 에베레스트도 가봤냐고 했더니

"에베레스트 올라가면 죽어요. 안 그러면 돈 아주 많이 있어야 해요."

그렇겠지. 아무리 네팔 사람이라 해도 에베레스트는 함부로 오르는 산이 아니겠지. 목숨을 부지하려면 비용이 많이 들 거고.

자기는 독실한 불교신자라면서 네팔엔 불교신자들이 아주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공장에서 일하는 거 너무 좋아요. 일주일에 한 번 삼겹살에 소주 먹어요. 너무 맛있어요."

다행이다. 일터가 일주일에 한 번 삼겹살에 소주로 회식하는 곳이라. 최소한 임금체불은 하지 않겠지. 딱 사람 좋은 한국인처럼 생긴 네팔 불교신자인 그 친구 이젠 고국 네팔에 돌아가 살고 있겠지.


캐나다에 오고 나서 바로 차를 구입하지 않았다. 처음 시작한 계절이 여름이어서 날씨도 그리 뜨겁지 않고 시원해서(캐나다는 한여름에도 습하지 않고 건조하며 아침저녁으론 15도 전후로 가을 날씨 같다.) 버스를 타고 다녔었다. 그러나 11월에 접어들면서 날씨가 쌀쌀해지자 칼같이 배차시간을 지킨다 해도 이십 분은 기본으로 기다려야 하고 툭하면 오던 버스가 사라지는 통에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중고차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몇 차례의 헛걸음을 한 끝에 마음에 드는 차를 찾아 주인과 연락을 하고 보러 갔다.(캐나다는 중고차도 개인 간 거래가 활발하다. 물론 중고차 업체도 있고 신차 매장에서도 자사 브랜드 중고차를 팔기도 하지만 나처럼 한 일이 년 대충 타다가 새 차를 구입할 생각이라면 한국의 당근 같은 플랫폼에서 개인 간 거래를 한다.)

과연 차는 마음에 들었다. 외관도 좋았고 엔진소리도 괜찮았다.(나머진 모른다. 차를 팔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그 검사확인증이 있으니 거짓말은 안 하겠지) 오... 근데 차 주인의 옷차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아저씨였는데 하얀 원피스 같은 긴 옷을 입고 있었다. 내가 알기론 그런 차림은 힌두 교도들이 입는 복장이었다.

일단 기본 확인은 해야 하니까 차량등록증과 면허증을 대조하자고 하니까 실은 이 차는 본인의 차가 아니라 친구의 차인데 대신 팔아주는 것이라 했다. 친구는 고향에 다니러 간 상태라며. 찜찜하지만 뭐 소유주 본인이 아니어서 문제가 된다면 차량등록 하는 사무실에서 문제가 드러나겠지.

이러는데 자기를 믿으란다. 자긴 거짓말 안 하고 정직한 사람이란다. 허... 더 수상하다. 오늘 처음 본 널 내가 어떻게 믿니. 어이없어하니까 하늘을 가리키면서 나는 신을 믿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믿어도 된다는 이런 헛소리를 하고 있었다. 아니 요즘 세상에 저런 이상한 논리를 늘어놓는 사람도 있다니.

네가 믿는 신은 너의 인간적인 행위까지도 정당하게 인정해 주니? 그게 신과 인간의 종교의 영역이 아닌 인간들과의 법적 관계에 있어서도 절대적 정당성을 부여해 줄 정도니? 아니면 이 사람이 내가 영어도 어눌하고 하니까 이민 온 지 얼마 안 되는 사람인 줄 알고 일부러 저러나 했지만 그렇다면 저놈이 얼빠진 거지.

결국은 차가 아까웠지만 돌아왔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그의 행동을 복기해 보았다. 신을 들먹여서 거래를 성사시킨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나는 동양인이고 그는 인도 쪽 사람인데 본인이 믿는 종교를 나도 믿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부각하기 위해서 신에 대한 믿음을 들먹인다고? 그럼 그들의 사회에서는 이런 행동이 자연스러운 것인가. 인간들 간의 사적인 거래에까지 실체도 없는 신이 개입된다면, 그렇다고 계약서에 신이 보증했슴이라는 얘기가 한 줄도 들어가지는 않을 것이 뻔한데.

이건 뭐 나 어렸을 적 우리 엄마가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기본적인 신뢰를 보였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저게 어떻게 가능하지 생각했던 그 옛날의 시절처럼 그들은 아직도 그런 개념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기가 차서 웃음도 안 나왔지만 참으로 이상한 경험이었다.(결국 작은 정비소에서 파는 낡은 중고차를 구입했고 그 할아버지인지 할머니인지 모를, 무려 Produced in Korea였던 나의 캐나다에서의 첫 중고차는 정확히 이년만에 돌아가셨다.)


나는 기독교 신자이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모태신앙을 바탕에 둔 그래서 모태신앙을 가진 크리스찬의 전형적인 특징인 신앙에 대해서 아주 뜨겁거나 아주 미지근한 유형 중에 후자에 속하는 사람이다. 과거에는 예수가 또는 하나님이 보였던 기적을 아무리 해도 믿지 못하는 나 자신을 책망했으나 자연과학, 사회과학, 또는 철학을 알아가고 나이가 먹어가니 이젠 오히려 당당하게 인간이 신의 영역을 인정해야 한다면 그러한 기적을 인간적인 방법으로 이해하도록 해주어야 하지 않겠냐고 당당하게 말하고 있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나니 여기에 대한 좋은 예를 하나 소개하겠다. 예수가 행했던 여러 기적 중에 대표적으로 인용되는 이야기이다.

'오병이어의 기적'에 대한 인간적인 풀이인데 예수의 열띤 강연을 듣다가 점심을 먹을 때가 되었는데 그 수많은 군중에게 나누어줄 음식은 없어 보였다. 예수의 제자들이 난감해하고 있을 때 어떤 꼬마가 집에서 가져온 보리떡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를 선뜻 내놓았다. 무척 기특하고 고마운 선행이긴 했지만 그것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모습을 지켜본 군중들은 아이보다도 못한 본인들이 부끄러워져서 그들이 가지고 본인들만 먹으려 했던 음식들을 하나 둘 내놓게 되어 결국 수많은 군중들이 배불리 먹고도 남게 되었다.

 잔칫집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든 것 같은 어찌 보면 허무맹랑한 마법 같은 기적이 아니라 저렇게라도 풀이해야 인간적으로 이해하고 그럴듯한 풀이 중에 하나라고 받아들일 수 있지 않나 한다.


오직 신만을 위한 인간들의 삶이었던 중세 암흑시대. 음악, 미술, 건축, 문학 등등이 오로지 신만을 추앙하고 바라보던 일들이 이제 인간이 세상의 중심임을 선언하고 인간의 아름다움과 지혜로움으로 이 세상을 가꾸어나가는 이때 아직도 종교만큼은 그 실체도 보이지 않는 사후세계에 대한 주도권을 쥔 채 아직도 인간세계를 조종하려고 또는 실제로 조종하고 있는 것 같다. 심지어 종교는 인간이 스스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매우 농후한데도 말이다.


이렇게 말하고 싶다.

"저기요... 제가 볼 때 신은 실제로는 그렇게 능력이 많은 것 같지는 않아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씩 찬양하고 기도하고 돈도 바치는데 변하는 게 별로 없잖아요. 누구도 부정 못하는 세계평화 하나 이루지 못해서 인간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전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냐고요.

그 간단한 명제도 해결 못 하는데 자잘한 내 소원을 이뤄줄 수 있겠어요? 그러니까 아이들 좋은 대학 가게 해달라고, 우리 아이들 대기업 취직하게 해달라고, 좋은 배우자 만나게 해달라고, 집값 오르게 해달라고 빌지 말아요. 능력도 안 되는데 자꾸 뭐 해달라고 하면 얼마나 곤란하겠어요. 그런 건 본인이 노력해서 얻을 생각을 하자고요. 좀 아쉽다면 그냥 입헌군주제의 왕 정도로 생각하면 괜찮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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