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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Nov 21. 2018

네가 던진 '마법의 봉'

제주도에 가면 ‘도깨비 도로’라고 불리는 길이 있다. 분명히 오르막길로 보이는데 이곳에 차를 세워 두면 차가 슬금슬금 올라간다. 신비의 도로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사실은 경사 3도가량의 내리막길이라고 한다. 그런데 주변 지형 때문에 착시 현상을 일으켜서 오르막길로 보이는 것이라고.

얼마 전에 제주도에 놀러 갔을 때 아이들과 이곳에서 물병을 굴려봤다. 신기하게도 물병이 데굴데굴 올라가는(?) 것이었다. 아무리 봐도 오르막길인데 사실은 내리막길이라니 우리 눈이 일으킨 착각으로 재미난 관광 명소가 생겼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부모의 시각에도 이런 착시 현상이 있는 듯하다. 아이들은 각자 자기의 속도대로, 자신의 모양대로 커가고 한 계단 한 계단 성장의 계단을 밟아 올라가고 있다. 하지만 '불안'이란 착시가 작용하면 부모 눈에는 아이가 한없는 내리막길로 가는 것처럼 보인다. 불쑥 붙잡고 ‘아이의 장점과 단점을 열 가지씩 열거해 봐라’라고 묻는다면 단점은 줄줄 나열하면서 장점은 한두 개 말하기도 힘들어하는 부모가 적지 않을 것이다. 이런 착시 현상 때문에 아이를 비난하고 간섭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어떤 사건을 계기로 아이를 새롭게 보는 순간이 온다. 나 역시 아이가 갑자기 던진 한 마디로 인해 아이에 대한 시각이 조금 달라지기 시작했다.




“엄마, 나 영어 연극 대회에 나가려고 해.”

“영어 연극 대회?”

“어, 그래서 아이들을 모으는 중이야.”

사실 아이가 자청해서 무슨 대회에 나간다고 하는 게 처음이었다. 그것도 영어 연극 대회라니.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는 영어를 원어민처럼 능숙하게 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어릴 때부터 영어 유치원을 다니며 실력을 쌓은 아이들도 많았고 ‘귀국 학생반’이 있을 만큼 외국에서 살다 온 아이들도 흔했다. 그래서 영어 연극은 사실 그 학생들이 독주하는 무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영어 유치원을 다닌 것도 아니고, 외국 생활 한번 한 적 없는 아이가 그 아이들을 경쟁 상대로 대회에 나간다고 했을 때 공연히 아이가 좌절감만 느끼는 것은 아닐까 지레 걱정을 했다. 아이 반에는 이미 원어민 수준으로 영어를 구사하는 아이들이 모인 ‘드림팀’이 대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아이는 ‘드림팀’에는 끼지 못했지만 대회에 나가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물색해서 일일이 설득하고 다니는 것 같았다. 우여곡절 끝에 팀이 구성되었지만 영어를 그렇게 잘하는 아이들은 아니었다.

엄마들은 드림팀하고 나란히 대회에 나갔다가 혹여 비교당하고 상처 받지 않을지 걱정도 했지만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시나리오 내용을 두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생각보다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아이들은 참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성적 위주의 학교 교육이나 왕따 문제까지 담아낸 연극은 그저 연극 속 죽은 언어가 아니라 살아 있는 아이들의 목소리였다.




드디어 대회 날.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어떻게 했을까 초조한 오후를 보냈다. 다행히 아이들이 실수 없이 무대를 마치고 내려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는데 나중에 담임 선생님에게 연락이 왔다.

“어머니, 언니 오빠들도 다 제치고 다른 팀들과는 압도적인 차이로 최우수팀으로 뽑혔어요. 공연을 보는데 선생님들이 감동을 해서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고 해요. 연습도 정말 많이 한 것 같고 아이들의 진심이 담긴 내용도 돋보였어요.”

누가 하라고 한 것도 아닌데 주도적으로 아이가 나서서 친구들과 함께 이룬 작은 성취가 대견했다.


환상적인 팀워크를 보여준 아이들은 내친김에 더 큰 도전을 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학교 대회가 아니라 전국 단위의 대회였다. 창의력을 겨루는 대회인데, 연극도 준비하고 탐구학습 과제도 해내야 하는 난도가 높은 대회였다.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아이들이 덜컥 시의 대표로 뽑히게 되었다. 막상 시의 대표로 뽑히고 보니 어깨가 무거웠다. 

학교에서, 학원에서 힘든 일과를 마친 아이들은 다시 저녁 늦게 모여 대본을 외우고 연습을 시작해야 했다. 더운 여름에 연습할 장소도 마땅치 않아 인근 공원에서 땀을 흘려가며 큰 목소리로 대사를 외우고 동작을 맞췄다. 그런데 아이들이 표현하기 민망할 수도 있는 과감한 동작도 때로는 필요했다. 사춘기가 시작된 여자 아이들로서는 힘들었다. 열정적으로 연습하던 아이도 ‘이 동작은 빼면 안 되냐.’며 난색을 표했다. 아이가 주문을 외우며 ‘마법의 봉’을 높이 던졌다가 잡는 장면은 어렵기까지 했다. 떨어뜨리기 일쑤였다. 공연히 떨어뜨려 망신을 당하느니 이 장면을 빼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내용상 절정에 해당하는 장면이라 없애기도 힘들었다. 그저 연습할 수밖에 없었다.

고된 연습에 지친 아이들이 가끔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이거 왜 시작했는지 모르겠다며 서로 하소연도 했다. 그렇게 힘들게 두 달을 보낸 끝에 코엑스에서 열린 대회에 발을 디뎠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아이들로 꽉 찬 코엑스 전시장. 아이들이 무대에 올랐다. 의외로 침착하게 공연을 이어갔고 중간에 소품을 잘못 챙겨 나왔지만 기지를 발휘해서 무사히 넘겼다.      


아이의 눈길이나 손길 어느 것 하나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 순간. 그 순간을 오래오래 간직해야 한다.


드디어 우리 아이가 ‘마법의 봉’을 던지는 순간 정적이 감돌았다. 높이 떠올랐다가 떨어지는 봉은 너무나 다행히도 아이의 손에 착 감겼다. 봉을 손에 쥐고 관객을 바라보는 아이의 표정이 빛났다. 수없이 던지고 놓치고 때론 바닥에 주저앉아 못 하겠다 푸념도 한 끝에 잡은 ‘마법의 봉’.

대회를 마친 아이들은 서로 손을 마주 잡고 ‘우리가 해냈다’며 감격했다. 힘들었던 만큼 서로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된 것이다. 전국 대회에서 특별한 수상은 못했지만 아이들은 개의치 않았다. 두 달간 흘린 땀이 주는 값어치를 체험한 것만으로 충분했다.      




지금도 가끔 아이가 ‘마법의 봉’을 던지던 순간이 짜릿하게 떠오른다. 내 아이가 저렇게 야무진 입매를 갖고 있었던가. 저렇게 단단한 주먹을 지니고 있었던가. 맨날 나에게 잔소리 듣던 아이가 맞나 싶었다. 부모들에게 그렇게 마법의 순간이 찾아올 때가 있다. 아이의 눈길이나 손길 어느 것 하나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 순간. 그 순간을 오래오래 간직해야 한다. 그리고 가끔 아이가 내리막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될 때, 그 착시의 순간에 꺼내보자. 그러면 아이가 내려가고 있는 게 아니라 조금씩 성장해 가고 있음이 제대로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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