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노릇이었다. 남들은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를 이해하고 부모님 생각에 목이 멘다고 했다. 돌잔치에서 인사말을 하던 아기 엄마가 부모님 이야기를 하다가, ‘부모님이 얼마나 저희를 힘들게 키우셨을지 알게 되었다.’고 눈시울을 적시는 경우도 종종 보곤 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나는 큰애 돌잔치 때에도 객지에서 혼자 몸부림치며 키운 나의 공에 스스로 도취되어 부모님 생각은 크게 하지 않았다. 결혼과 동시에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곳으로 이사 와서 출산하고, 맨날 늦게 퇴근하는 신랑을 기다리며 잠도 못 자고 아기를 돌봤던 기억이 떠올라 눈시울이 뜨거워졌을 뿐이다. 그렇다고 내가 유독 이기적인 사람이라거나 기본적인 사회성이 결여된 사람은 아니었다. 원래도 엄마와 살갑게 지내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엄마를 원망하는 마음까지 갖게 된 것은 아마 ‘육아서 10권 완전 독파’라는 나의 원대한 계획을 실행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육아 지침서를 찾게 된다. 덜컥 부모는 되었는데 아무도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신생아 때야 기저귀 갈고 얼러서 재우는 일이 다인 줄 알았지만 조금 더 크면 아이가 공공장소에서 떼 부릴 때, 물건을 던질 때, 걸핏하면 울기부터 할 때……. 이유를 모르고 대안도 찾지 못해 답답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육아서를 한권 두권 읽기 시작했다. 시중에는 제목도 다양한 육아서가 많이도 나와 있었다. ‘소리치지 않고 때리지 않고 아이를 변화시킨다’, ‘화내는 부모가 아이를 망친다’, ‘어릴 때 형성된 자존감이 평생 행복을 결정한다’는 등 다양한 테마로 온갖 연구결과와 사례를 나열한 육아서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내가 모르는 세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저 막연히 알고 있던 ‘부모’의 존재가 아이에게는 얼마나 절대적인지 절감했다. 말 한마디, 손짓 하나,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게 없었다. 지금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그대로 아이의 성격을 형성하고 결국은 운명까지 결정지을 수 있다는 생각에 그간 했던 잘못된 행동들을 후회하기도 했다.
육아서의 매력에 한창 빠지면서 자꾸만 나의 ‘엄마’가 원망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육아서에서 이렇게 하면 아이에게 무척 해롭고, 저렇게 하면 아이의 인성에 균열이 가고, 요렇게 하면 아이를 불행하게 만든다고 낱낱이 밝혀줄 때마다 자꾸만 엄마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특히 몇 살 이전에 형성된 성격이 평생 행복을 결정짓는다거나, 부모에게서 사랑받은 사람이 자기 자식 또한 잘 키울 수 있다는 대목에서는 뜻 모를 좌절감과 분노까지 느꼈다. 심지어 내 아이가 클수록 새삼스레 엄마의 지난 일을 두고, 용납이 안 되는 부분까지 생겼다. 이렇게 예쁜 자식들을 키우면서 왜 그렇게 어두운 얼굴로 화만 내셨을까. 왜 이렇게 육아서에서 절대 금기시하는 항목들을 많이도 이행하셨을까.
이런 불만이 잠재되어 있던 차에 엄마가 집에 오셔서 내 자식들한테 간섭하시면 참기가 어려웠다. 엄마는 잘 모르면서 그런다고 나도 모르게 소리를 높이게 되고, 엄마는 엄마대로 서운함을 느껴서 화를 내시는 일들이 반복되었다. 그런 일들이 자꾸 반복되면서 엄마와 관계가 점점 더 소원해졌다. 한 달에 한두 번이던 친정 나들이 횟수가 차츰 줄더니 명절이나 특별한 일이 없으면 안 갈 정도로 발걸음이 뜸해졌다.
그러던 차에 전업주부던 내가 갑자기 일을 하게 되었다. 한시적인 일이긴 했지만 오랜만에 다시 일을 하게 되었다는 설렘에 가슴이 뛰었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들이었다. 일곱 살, 세 살인 아이 둘을 어떻게 할 것인지 걱정이 밀려들었다. 동네가 조금 외져서 아이들을 봐주실 분을 구하기도 어렵고 남편 또한 퇴근시간이 늦어서 내 자리를 대신할 수도 없었다. 당장 내일모레 출근해야 하는 상황. 발을 동동 구르다가 갑자기 부탁하기가 조금 멋쩍었지만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저기……. 내가 갑자기 일을 하게 되었는데 당분간만 애들 좀 봐주시면 안 될까요?”
평소에 전화 한 통 안 하던 딸이 불쑥 전화해서 애들을 봐달라고 하니 괘씸하게 생각하시지 않을까 은근히 걱정도 되었다. 그런데 엄마는 너무나 선선히 말씀하셨다.
“그래. 내일모레부터라고? 내일 내려갈게.”
가슴을 쓸어내렸다. 출근도 못하고 몇 년 만에 하게 된 일을 포기해야 하나 절박한 상황이었는데 든든한 버팀목이 생긴 것이다. 아이들도 엄마의 빈자리를 할머니가 대신해준다고 설명하니 마음을 놓는 눈치였다.
그렇게 갑자기 오신 엄마. 오시자마자 장롱 속에 쌓인 이불부터 꺼내서 햇볕에 말리시고 홑청을 벗겨서 세탁하시기 시작했다. 제발 가만히 쉬시라고 말씀드렸지만 소용없었다. 집안의 묵은 때를 하나하나 벗겨내시고 다음날에는 출근하는 딸을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 생태찌개를 끓여주셨다. 첫 출근이라 긴장한 탓에 몇 숟가락 뜨지도 않고, 아침 메뉴로 생선찌개가 뭐냐고 투덜거리며 일어나려는데 엄마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너 좋아하는 거라서 힘들게 끓여놨는데 그거 먹고 가냐? 얼른 앉아서 더 먹어라!”
엄마가 화내시는 모습을 보니, 기억 저편의 일이 떠올랐다. 고등학교 때 새벽밥을 참 먹기 싫어했던 나. 그리고 밥을 다 먹고 가라고 화내시던 엄마. 아침마다 반복되는 실랑이었다. 하지만 20년을 훌쩍 뛰어넘어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엄마’에게 얻어먹게 된 새벽밥은 싫지 않았다. 그 불호령도 듣기 싫지 않았다.
‘아이들은 걱정하지 말라.’는 엄마의 말을 뒤로하고 발걸음도 가볍게 나선 출근길. 하지만 공백기가 길었던 만큼 직장에서 부딪히는 낯선 상황들이 너무나 힘들게 느껴졌다. 하루를 정신없이 보내고 집에 가려는데 큰애가 전화를 했다.
“엄마, 할머니가 넘어졌어. 지금 누워있는데……. 쾅 소리가 엄청 크게 났어. 일어나지를 못하셔.”
수화기를 든 손이 떨렸다. 이제 엄마도 연세가 있으시다. 더구나 몇 년 전에는 허리가 많이 불편하셔서 치료도 받으셨다. 그런데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넘어지셨다니. 막히는 찻길 안에서 얼마나 애가 탔는지 모른다.
그동안 엄마를 원망했던 일, 옛날 일을 두고 엄마와 설전(?)을 벌이던 일……. 입술을 깨물었다. 아이들을 키우며 일하는 게 얼마나 힘드셨을지 충분히 헤아려 보았던가. 오늘 하루 난, 겨우 첫 출근을 했는데 두 다리에 힘이 다 풀릴 정도로 피곤했다. 엄마가 전적으로 도와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엄마는……, 엄마는 딱히 도와주시는 분도 없이 아이들을 키우며 직장도 다니셨다. 엄마의 지난 세월은 얼마나 힘들었을지 왜 찬찬히 생각해 보지 않았을까. 엄마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가르쳐 주는 사람도, 도와주는 사람도 하나 없이 아이들을 키우며 때론 후회하고 마음 아파하지 않으셨을까.
지금은 육아서라도 대중화되어 있고 다양한 부모교육 프로그램이 있지만 그 옛날에는 답답한 마음을 풀어줄 해법을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제 엄마는 많이 늙으셔서 누가 봐도 할머니 같은 모습이셨다. 늙고 힘없어진 엄마를 두고 지난 세월을 원망하고 탓하고 있었던 나. 차에서 내리자마자 집으로 한달음에 뛰어가니 엄마가 누워 계셨다.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엄마, 괜찮아?”
엄마는 눈을 가늘게 뜨시고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리고 모기만 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괜찮아. 그런데 정말 심하게 넘어지긴 했나 봐. 밤새 안녕이라더니……. 조금만 더 심하게 넘어졌으면…….”
희미하게 웃으시는 엄마를 보니 왈칵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남편이 와서 병원에 가자고 했지만 끝내 마다하시고 한의원이나 가보겠다고 하셨다. 맘 같아서는 그 길로 집으로 가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이기적인 딸은 선뜻 그 말도 안 나왔다. 엄마는 밤새 끙끙거리시더니 이튿날은 또 거뜬히 일어나셔서 딸의 새벽밥을 지으셨다. 정말 여자는 약해도 어머니는 강하다는 진부한 명제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또 밤에 앓으셨지만…….
어떤 유명한 아동심리학자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베스트셀러가 된 육아서도 쓰신 분인데 솔직히 자신도 집에서는 아이들에게 책대로 못한다고 했다. 육아서 문장 하나하나를 날카롭게 엄마에게 들이댄 나는 과연 두 아이들에게 얼마나 좋은 엄마 노릇을 하고 있었을까. 남편은 내가 아이들을 대하는 모습에서 우리 엄마가 많이 보인다고 한다. 솔직히 그 말은 결코 달갑지 않았었다. ‘엄마처럼은 안 키울 거야.’라는 게 지상 과제였던 나에게, 양육태도가 엄마와 닮았다는 말은 반가울 수 없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방법은 달랐을지언정 자식에 대해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태도는 결국 우리 엄마에게서 배운 것이란 생각이 든다. 자식 잘 키우고자 육아서를 밑줄 그으며 읽고 또 읽은 나, 새벽부터 생선 비린내를 마다하지 않으시고 딸이 좋아하는 메뉴를 준비해주시는 엄마.
이제 육아서 독파에 열을 올리고 있는 초보 엄마들을 만나면 어깨를 다독이며 말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육아서 문장 하나하나를 외우지 않아도, 당신의 아들딸도 삶의 어떤 순간에 이르면 엄마를 이해하고, 엄마와 함께 했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게 될 거라고. 내 인생 최고의 육아서는 바로 우리 엄마였노라 고백할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