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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Dec 19. 2018

어느 날 풋사랑을 돌아보니

오랜만에 애들 재우고 남편과 DVD로 ‘건축학 개론’을 보았다. 영화에서 내내 강조한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첫사랑이었다.' 공감이 갔다. 첫사랑까지는 아니어도 누군가에게 풋사랑의 대상이긴 했을 거다.     


대학 입학 전 2월쯤인가. 고교 졸업식을 마치자마자 YMCA에서 하는 무슨 예비 대학생 캠프에 참여했었다. 여중, 여고를 나온 나에게 예비 대학생 캠프는 신세계였다. 초등학교 졸업 이후 만나본 적이 없던 ‘남자’들하고 모여서 강의도 듣고 같이 합창 연습도 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게 마냥 낯설었지만 동시에 설레고 신기했다. 같이 MT도 가서 처음으로 맥주를 마셔 보기도 했다. 

또래들은 어딘지 서툴고 어린아이들처럼 느껴졌지만 오빠들은 자상하고 멋있어 보였다. 특히 나에게 잘해 주던, 훤칠한 키에 훈남 스타일의 '오빠'를 보며 두근거렸다. 사실 누군가를 '오빠'라고 부르는 것도 무척 어색했다. 남녀 관계에 관한 한 숙맥인 나에게 참 친근하고 편안하게 다가온 그 '오빠' 때문에 안 보던 거울도 한번 더 보게 되고 엄마한테 입을 옷이 없다고 투덜대기도 했다.     




그렇게 봄이 오고, 벚꽃이 피었다. 나는 그 오빠가 내 이름을 불러주는 장면을 영화의 필름을 다시 돌리는 것처럼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환상을 키워갔다. 다른 아이들을 부를 때는 단조롭게 부르는데 내 이름을 부를 때는 유난히 다정한 것 같았다. 식당에 가자며 내 어깨를 살짝 두드려줬던 것도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틀림없이 나에게 마음이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 오빠에 대한 마음이 무럭무럭 커질 무렵, 정말 우연히 머나먼 수유리까지 일이 있어서 갔다가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보게 되었다. 생머리를 찰랑거리는, 어떤 예쁜 언니랑 다정하게 손잡고 인도를 걸어가는 '오빠'를.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참 멀기도 멀었다. 저녁 어스름해지는 하늘이 쓸쓸하게만 보였다. 간신히 집에 도착해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거울 속에 너무 못나 보이는 여자애가 있었다. 생머리에 긴 멜빵 치마를 입은 그 언니는 참으로 청순하고 아름다웠다. 그 언니에 비하니, 난 슈렉이었다.     


풋사랑의 좌절로 우중충한 표정으로 다니던 어느 날 학보 통에 나에게 온 엽서가 있었다. 그 오빠 때문에 더 이상 모임에 나가지 않게 되었는데 왜 안 나오냐며, 얼른 나오라고 같은 학년 남자애가 보낸 것이었다. 꽤 귀엽게 생긴 스타일에 말도 재미있게 하던 애였다. 하지만 그런 엽서에 관심이 갈 상황이 아니었다. 

난생처음 ‘남자 사람’을 보고 설렌 마음이 무참히 외면당했다는 생각에 한없이 우울할 무렵이었다. 엽서를 대강 읽어보고 팽개쳐 버리고 답장도 하지 않았다. 그 애가 엽서 앞면에 정성 들여 그린 그림 속에 '사랑스러운 은수에게'라는 문구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안 것은 그로부터 거의 10년이 흐른 뒤였다.     



결혼을 앞두고 내 방과 책상의 온갖 짐들을 정리하다가……. 언니였나? 누군가 '이게 뭐야? 사랑스러운 은수에게?'하고 물었다. 뭐지 싶어 찬찬히 보니 오래된 엽서였다. 내용도 다시 읽어 보니 나를 못 봐서 너무 서운하고 '조만간 모임에서 네 귀여운 얼굴을 꼭 보길 바라'라고 참 노골적으로 쓰여 있었다. 나는 곰이었는지. 그걸 보고도 그땐 아무 느낌이 없었다.


10년 만에 그 엽서에 숨겨진 '사랑스러운 은수에게'란 글자를 보니 그때 내가 슈렉은 아니었구나 싶다. 아물지 않은 채 그냥 묻혀 버렸던 상처가 왠지 위로를 받는 느낌이 들었다. 그 애에게 고맙기도 하기 미안하기도 하고.     

이제는 20년도 더 된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그 애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지만 엽서는 버리지 않고 갖고 있다. 세련되지 못하고 촌스럽던 젊음의 민낯을 보는 것 같다. 지나간 것은 모두 아름답다고, 젊은 시절은 기억 속에서 자꾸 아름답게 윤색되어 시간이 흐를수록 좋은 그림만 남지만 젊었을 때도 그 나름대로 아픔과 좌절이 있기 마련이다. 사랑도, 연애도, 미래도 불투명하고 무엇 하나 확실한 것이 없다. 과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지, 결혼은 잘할 수 있는지, 직장은 잡을 수 있는지 불안하고 초조하다. 매사에 서툴고 실수도 자주 해서 얼굴이 달아오를 일도 종종 겪는다. 




오래전 아마 나도, 그 애도 그때는 씨앗이었을 거다. 아직 솜털 보송보송하고 울퉁불퉁 못난이지만, 축축한 땅 속에서 웅크리고 있는 존재지만, 언젠가는 흙을 뚫고 올라가 발그레한 열매를 맺을 날을 꿈 꾸는.  다듬어지지 않은 젊음도 그대로 의미가 있다. 


남편한테 이 엽서를 보여주며 '그래도 대학 입학하자마자 이런 러브레터 비슷한 것도 받아봤다고!' 자랑을 했더니 남편은 코웃음을 치며 좋아한다는 말도 당당하게 못 하고 그림을 그려놓았다고 웃는다. 시쳇말로 ‘찌질해’ 보인단다.

찌질하니까 풋사랑이고 첫사랑이다. 밀당의 고수가 된 연애박사들은 해보고 싶어도 못 하는 것. 나이 들고 세상만사에 냉소적이 되면 하려고 노력해도 안 되는 것. 체념의 미학을 터득한 다음에는 좀처럼 시도하지 않게 되는 것. 그래서 더 소중하게 느껴지고 시작도 못한 채 끝나버린 풋사랑의 기억들을 사람들은 소중하게 간직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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