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이 어릴 때 사람이 참 그리웠다. 아이와 단 둘이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노라면 입에 거미줄 쳐지는 느낌이었다. 아이랑 알 수 없는 외계어를 주고받는 것도 한두 시간이지, 까르르 까르르 소리만 내며 하루를 지내다 보면 누군가와 말을 하고 싶었다. 대화할 수 있는 상대가 아쉬웠다.
그래서 문을 두드린 곳이 문화센터였다. 문화센터에 가면 또래 엄마들도 있고 아이 친구도 만들어 줄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처음 간 문화센터에서 같은 아파트에 사는 엄마를 만났다. 아이도 개월 수가 비슷했다. 금방 친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나와 여러모로 달랐다. 외모를 꾸미기 좋아하는 화려한 스타일이었다. 본인의 겉모습뿐 아니라 남들 눈에 띄는 건 뭐든지 멋지게 해 놓았다. 집에 가면 멋진 샹들리에가 드리워진 거실에 덩치 큰 수입 식탁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탁자에는 늘 화려한 꽃병이 놓여 있고, 그 어린 아기를 패셔니스타 못지않게 앙증맞게 입혀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았다. 나는 그녀에 비해 어딘지 초라해 보였다. 아이 봐줄 사람도 없으니 쇼핑할 시간도 없어 매일 똑같은 옷을 입고 다니는 처지였고 우리 집은 오래되어 울퉁불퉁해진 벽지가 그대로 눈에 띄는 전셋집이었다.
문제는 그런 차이를 서로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편한 사이가 아니었다는 거다. 한두 번 그녀가 무심하게 내뱉은 한 마디에 상처 받기 시작할 무렵 문화센터에 모인 다른 엄마들과 모임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녀는 서서히 나에게 멀어져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속상했다. 나의 취향이 아닌, 아이를 매개로 한 엄마들 모임이 편하지 않게 느껴졌다.
한동안 뜸한 엄마들과의 모임이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가면서 자연스레 다시 생기기 시작했다. 유치원에 아이를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고 하다 보니 엄마들과 인사할 기회가 생겼다. 처음에는 보통 아이 이야기를 한다. 몇 시에 자냐, 밥은 잘 먹냐, 한글은 배우냐, 아이에 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정보도 주고 받다 보면 조금씩 친해진다. 그리고 한두 번 서로 집에도 놀러 오고 하면서 모임이 생긴다.
그런데 큰아이는 좀 예민한 성격이라 친구들과 어울리기 힘들어할 때가 있었다. 가끔 오지랖 넓은 엄마들이 한 마디씩 툭 건네곤 했다.
“00 이는 저렇게 잘 울어서 어떡해?”
“00 이는 친구랑 놀다가 잘 토라지는 것 같네.”
악의는 없었다 해도 내 아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는 이야기를 듣는 것은 힘들었다. 아이마다 크는 속도도, 자라는 모양새도 다르기 마련이고 아이가 어릴 때 겪게 되는 여러 문제는 상당 부분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해결되기도 하는데 초보 엄마는 남들의 이야기에 이리저리 흔들렸다. 한 번은 아이가 나도 없는데 다른 엄마에게 떼를 쓴 일이 생겼다. 유치원의 한 엄마가 여러 아이들에게 붕어빵을 사줬는데 하필 우리 아이가 싫어하는 팥 붕어빵을 사준 것이다. 아이는 슈크림 붕어빵으로 바꿔 달라고 했지만 우리 아이에게만 다시 사줄 수 없어 그 엄마가 난처했다는 것이다.
“00 이는 왜 그래? 보다 못한 다른 엄마가 ‘너희 엄마한테 가서 사달라고 그래!’ 한 소리 했어.”
그 말을 전해 듣고 얼마나 창피했는지 모른다. 돌이켜보면 아직 일곱 살이니까 그럴 수도 있는 일인데 그때는 집에 오자마자 아이를 다그치며 혼을 냈다.
“거지도 아니고, 왜 엄마도 아니고 다른 아줌마한테 먹을 거 바꿔 달라고 떼를 쓰고 그래?”
“난 팥이 너무 싫어서…….”
“그러니까 엄마 올 때까지 기다리지, 엄마도 없는 자리에서 왜 다른 사람한테 떼를 부렸냐고?”
사정없이 몰아세우는 내 말에 아이는 결국 서럽게 울음을 터뜨리고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했다. 그래서 한동안 우리 아이는 놀이터에서 누가 먹을 것을 준다고 해도 잘 받지 않았다. 엄마한테 혼난다면서.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니 그런 식으로 아이한테 핀잔을 준 누군가의 엄마가 좀 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걸 곧이곧대로 전한 엄마도 의도가 무엇이었든 잘한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초보 엄마는 소위 기가 센 엄마들 사이에서 공연히 위축되어 필요 이상으로 아이를 잡기도 했다.
(중략)
이렇게 몇몇 사건을 겪은 이후로 아이를 위해 할 말은 하기로 마음먹었다. 앞뒤 상황 따지지 않고 내 아이만 싸고도는 엄마는 되지 말아야 하지만 정당하게 할 말도 못하는 엄마가 되는 것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낯선 목소리의 한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대뜸 용건부터 이야기했다.
“댁의 아이가 저희 아이와 안 놀아줘서 저희 아이가 무척 속상해해요.”
“아……. 네. 그런 일이 있었나요?”
“주변에 다른 아이들이랑은 놀면서 저희 애 하고만 안 논다는데 무슨 일인지, 그러지 말라고 제가 직접 댁의 아이에게 얘기 좀 해보려고요. 아이 좀 바꿔 주시겠어요?”
한때 마음 약한 엄마였을 때는 혹시 우리 아이가 무슨 잘못을 했을까 싶어서 바꿔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러 사건을 겪으며 제법 단단한 엄마가 되었다.
“저희 아이가 의도적으로 누구를 따돌리거나 괴롭히진 않을 것 같아요. 하지만 확인하고 이야기를 나눌 필요는 있겠네요. 지금 상황에서는 이야기를 하더라도 일단 엄마인 제가 먼저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제가 아이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상대방은 딱히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순순히 전화를 끊었다. 남들이 보기엔 별일 아니지만 소심한 엄마로서는 꽤 용기를 낸 것이다.
그 뒤로도 아이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에는 엄마들 간의 보이지 않는 기싸움이 있었다. 엄마들 사이에서도 현실적인 조건들-재력이나 사회적 지위 등-이나 아이의 성적, 본인의 성향 등 여러 변수가 작용해 여느 인간관계에서와 마찬가지로 힘의 역학관계가 형성된다. 이것이 자식에게 영향을 끼칠 때는 무섭게 변하는 엄마들도 있다.
그 사이에서 내 교육관과 소신을 지키며 내 아이를 적절히 변호하며 방어하는 것도 필요했다. 엄마들 모임에서 내 아이의 흉허물을 편하게 터놓고 이야기하면 어느 날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특히 내 아이랑 상대방의 아이가 부딪히는 일이 생기면 그랬다. 이런 이유로 엄마들은 차츰 자신의 아이에 대해서도 솔직하지 않게 되나 보다.
예전에 직장 다니며 어려운 인간관계의 고비를 꽤 많이 넘겼다고 생각했는데 엄마들과의 관계는 아직도 쉽지 않다. 자식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 미묘한 관계 속에서 적당히 선을 지키며 내 목소리 내고 적절한 선에서 솔직함을 유지하는 것이, 나처럼 한번 내주면 다 내주는 스타일의 사람에게는 참 맞지 않는다.
그래도 자식 낳아 키우며 인생 공부한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려 애쓴다. 진심은 통한다고 개중에는 상대방이 부유한지, 아이가 공부를 잘하는지, 같이 다니면 남들한테 우쭐할 수 있는 대상인지 따지지 않고 솔직한 곁을 내주고 친밀한 관계가 되는 엄마도 있으니까. 알게 모르게 권력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마당에 모두와 친하게 잘 지내려는 건 욕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