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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이경 Aug 01. 2024

나는 원조 "고딩엄빠"다.(13)

#13.


  

  아이가 여섯 살이 되던 봄에 남편이 대학을 졸업했고 취직을 했다.

취직이 되자 시집에서 결혼식을 올리자고 했고

5월 5일로 결혼식 날짜를 잡았다.


 시어머니가 병원에서 퇴원하면서 조금씩 변화가 왔고 나를 막내며느리로 인정해 주는 것 같았다.  

 결혼식에 앞서 혼인신고를 하고, 벌금을 물고 아이의 출생신고도 마쳤다. 과태료 10만 원을 물고 나도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았다.


이제 나도 합법적으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완전한 어른이었고, 한 가정의 당당한 주부이자 아내이며 엄마가 된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의 고생도 끝이 나는가 싶었다.      


 시집에서 신부패물과 예단비라며 2백만 원을 주셨다.

그러나 우리 친정에서는 우리 결혼식을 탐탁해하지 않았다. 엄마의 새 남편, 그러니까 새아버지가 그냥 혼인신고나 하고 살면 되지, 이제 와서 무슨 결혼식이냐며 못마땅해했다.

그러나 시집에서는 늦었지만 결혼식은 해야 한다고 했다.


 못마땅해하는 친정에서 결혼비용을 보태줄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시집에서 준  돈에 내가 그동안 계를 들고, 조금씩 적금을 들었던 돈을 보태서 시집에 보낼 예단을 최대한 간소하게 장만해 보냈다. 남편의 반지, 시계와 양복도 맞췄다. 예식장비며 하객들의 음식비를 냈고, 엄마와 새아버지의 한복과 양복도 맞춰줬다. 그리고 내 반지와 목걸이는 이미테이션으로 했다.  


 그러나 엄마는 모든 돈을 자신에게 맡기지 않는다고 섭섭해했다. 나는 엄마를 믿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엄마가 도와줘서 살아온 거는 맞지만, 엄마에게 돈을 보내주면 틀림없이 모든 것을 챙기고 날림으로 대충 해버릴 것이었다. 그것이 새아버지라는 사람의 생활 방식임을 나는 알았다. 엄마는 새아버지에게 잘 보이려고 모두 그에게 전해 줄 것이 분명했다.  


 어쨌거나 형식을 갖춘 결혼식이 치러졌다.

제주도로 신혼여행도 다녀왔다. 신혼여행은 신랑 측에서 보내주는 거라며 시집에서 모든 비용을 대줬다.


늦었지만, 우리는 제대로 결혼식을 올린 정식 부부가 된 것이다.  무엇보다 제일 기뻐해 준 것은 남편의 고모님들이었다.

 “네가 그동안 잘 참고 견뎌내서 받은 복이다. 넌 애도 잘 키울 거고 성공해서 잘 살 거다. 온 동네 사람들이 다 그렇게 말하고 있다. 꼭! 옛말 하면서 잘 살거라. “

덕담까지 잊지 않으셨다.


 여름에서 가을로 접어드는 어느 날, 엄마가 한 밤중에 찾아왔다. 장날이 쉬는 날도 아니었고 서울에 가는 날도 아니었다. 엄마의 모습은 평소와 달랐다. 외출복 차림이 아니었다.


  나는 그때 둘째를 임신하고 있었다. 결혼식도 올렸고 남편이 직장을 다니면서 생활도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둘째가 들어선 것이다. 첫째 때는 입덧이 뭔지도 모르고 지냈는데 조금 살기가 나아진 것인지, 아이를 갖고 두세 달부터 시작된 입덧은 아이를 낳는 막달까지 괴롭게 했다.

 먹지도 못하고 음식냄새도 맡을 수가 없었다. 그런 속에 엄마가 불안한 모습으로 찾아온 것이다.


“장사를 하러 갔는데 오후에 사라진 인간이 나타나질 않는 거야."

한 번도 엄마가 새 남편을 그렇게 함부로 말한 적이 없었다.

 "장이 파하고 날이 어두워져도 돌아오지 않아서 장바닥을 다 뒤졌어. 그런데 차가보이질 않는 거야. 나는 몰랐는데 장에 오는 이웃들이 하는 말이, 몇 달 전부터 웬 여자하고 같이 다니더래. 나만 몰랐던 거지, 주변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대. 부랴부랴 짐을 싸서 이웃에 맡기고 버스를 타고 집에 와보니 살림이 전부 없어진 거야. 냄비 하나, 숟가락 한 개가 없어. 집주인 말로는 몇 주 전에 이사 간다고 전세금을 빼달라고 하더래. 그래서 오늘 빼주고 이삿짐이 나갔다는 거야.”


 한마디로 다른 여자와 달아났다는 거다. 전세금과 보험금, 적금통장과 예금통장의 모든 명의가 그 남자 앞으로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 남자하고 혼인신고도 하지 않은 채 살았다고 했다.

엄마 것이라고는 장에서 함께 장사하는 사람들과, 남자 몰래 들어놓은 곗돈과 그날 장사한 돈과 비상금이 전부라고 했다.

 엄마는 넋이 나가 있었다.


 우리 집에서 하룻밤을 보낸 엄마는 다음날부터 남자를 찾아 나섰다. 남자가 갈만한 곳은 모두 뒤지고 다녔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다니는데 한계를 느낀 엄마는 아는 사람을 통해 중고승합차를 샀다. 그 차는 할부가 남아 있는 차였는데, 남아 있는 할부를 엄마가 떠안기로 하고 무작정 차를 끌고 왔단다. 엄마는 운전면허가 없었다.


 기사도 고용했다. 가진 돈이 별로 없던 엄마에게는 무리한 결정이었다. 기사를 데리고 남자가 있을 만한 곳이라면 전국을 뒤지고 다녔다. 남자가 들고 달아난 돈은 그동안 그 남자와 살면서 안 먹고 안 입고 악착같이 모은 것이었다. 하루 종일 장바닥에 앉아서 먼지를 뒤집어쓰며 여름엔 땡볕을, 겨울엔 추위를 견디며 번 돈이었다. 엄마 말로는 꽤 많다고 했다. 그놈만 잡으면 찻값도 기사를 고용한 돈도 모두 한꺼번에 치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기에 법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지금처럼 사실혼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도움받을 수 있는 법령이 없을 때였다.


 남편이 직장에 다닌 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나도 그때는 입덧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고 있었다. 갖고 있던 돈으로 결혼식을 치렀고 18평짜리 아파트로 옮길 때 보증금을 냈다. 엄마를 도와주려고 해도 도와줄 수가 없었다.

 나는 차라리 잊고 새 출발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했지만 엄마의 고집은 완강했다.

그렇게 나는 나대로 입덧과 씨름하며 한 철을 보냈고, 엄마는 전국을 뒤지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웬 남자들이 찾아왔다. 엄마가 고용했던 기사라고 했다. 월급을 석 달이나 주지 않고 연락도 되지 않는다고 했다. 엄마가 우리 집을 알려주며 자신의 집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엄마의 집이 아니고, 우리 집이라고 말해도 남자는 믿으려 하지 않았다.


 급기야 남자는 소파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밀린 월급을 내놓지 않으면 절대로 나가지 않겠단다. 그동안 유치원에 갔던 아이가 돌아왔고 남편이 퇴근해서 집으로 왔다.

남자의 얘기를 듣고 남편이 화를 냈고 몇 번 큰소리 내며 옥신각신하던 끝에 밤이 늦어서야 남자가 돌아갔다.

그리고 엄마는 며칠 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한 보름쯤 지나자 이번엔 또 다른 남자들이 찾아왔다. 자동차 주인이라는 것이다. 보증금은 나중에 주기로 하고 자동차 할부를 떠안기로 하고 차를 가져갔는데, 보증금은커녕 할부를 내지 않아 자신의 집에 압류가 들어오게 생겼다는 것이다. 자동차 명의이전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번의 남자들도 엄마를 찾아오라고 소리쳤다. 나는 이번에도 할 말이 없었다. 다만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다는 말밖에는.

 남자들은 자동차라도 돌려달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자동차는커녕 자동차바퀴도 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한 달 정도가 지났을 어느 날, 아이하고 가까운 시장엘 다녀오는데 웬 승합차가 길을 막아섰다. 자동차 안에는 자동차 주인이라며 다녀갔던 남자가 조수석에 타고 있었고 , 모르는 남자가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자동차 주인이 내리며 할 말이 있으니까 잠깐 타라고 했다. 나는 오가는 사람들 시선이 두려워서 열어주는 뒷문으로 아이를 데리고 올라탔다. 자동차 주인남자가 뒤따라 올라타며 문을 닫았다. 문이 닫힘과 동시에 차가 출발했다.


 당황한 내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딸이 엄마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것은 말이 돼요? 엄마가 오기 전에는 내려 줄 수가 없으니까 엄마에게 연락을 해서 당장 오라고 해요.”

말을 마친 남자는 입을 굳게 다물어버렸다. 나는 내려 달라고 말했다. 아이가 놀랄까 싶어 크게도 말하지 못했다. 그 차는 한 시간 정도 달려서 남자의 집인 듯싶은 곳에 도착했다.


 집 입구엔 중장비들이 늘어서 있었다. 아마도 중장비를 대여해 주는 것을 업으로 하는 듯했다. 남자가 부리듯 우리를 자신의 집 마당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자신의 부인인 듯해 보이는 여자에게 잘 감시하라고 말했다. 여자는 표정이 없었고 덩치가 컸다.

 “엄마가 오기 전까지는 여기서 한 발자국도 못 나갈 테니까 그리 알아요.”

 “돌아가게 해 주세요. 저 진짜 엄마가 어디 있는지 몰라요. 엄마는 내가 여기 잡혀 온 줄도 모를 거예요.”


 그렇게 나는 그 집 마당에 놓인 평상 위에 아이와 나란히 앉아 있었다. 내가 일어서거나 움직일 때마다 평상 귀퉁이에 앉아 있던 여자가 몸을 일으켰다. 여자는 말이 없었다. 무표정으로 우리를 노려볼 뿐이었다.

 불안했다. 어디 연락할 데도, 연락할 수도 없었다. 몇 시간쯤 흘렀다고 생각했을 때 웬 노인이 마당으로 걸어왔다. 작업복을 입고 발에는 검은 장화를 신었고 손에는 삽을 들고 있었다. 아마도 논이나 밭에 다녀오는 행색이었다.


 “무슨 일이냐?”

마당의 평상에 장바구니를 발밑에 두고 오도카니 앉아 있는 나와 아이를 본 노인이 말했다.

 “아, 아버지, 왜 그때 우리 차 가져간 여자 있잖아요? 그 여자 딸이에요. 여자를 통 찾을 수가 없어서 딸을 데려왔어요. 아무리 못된 엄마라고 해도 딸이 잡혀 있다고 하면 나타나지 않겠어요?”

 집안에 있던 남자가 노인의 목소리를 듣고 마당으로 나오며 말했다.


“그래서 그 먼데까지 가서 애 엄마를 데려 온 거냐?”

“네, 별 수가 없잖아요.”

“에라이, 이 못된 놈아. 생각하는 거라곤. 당장 보내줘라.”

“아버지, 안 돼요. 그 여자 때문에 우리 집에 차압 들어온대요.”

“그렇더라도 보내줘라. 애 엄마한테 그러는 거 아니다. 자식이 뭔 죄가 있냐? 더군다나 저렇게 어린애까지. 당장 보내줘라. 너 그러다 죄받는다. 그러는 거 아니다. 돈이야 벌면 되는 거지만 사람에게는 그러면 못쓴다. 더 늦기 전에 당장 차비 들려서 보내주든가 다시 데려다주고 와라.”


그러는 사이 뒤따라, 할머니 한 분이 왔다.

 “에구, 임부인가 보네. 점심은 먹었수?”

 내가 말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아이도 아무것도 못 먹었겠네. 너 여태 밥도 안 먹이고 사람을 여기다 앉혀 놓은 게냐?”

 할머니는 며느리를 바라보며 물었다. 며느리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서 있었다.

“너, 얼른 가서 뭐라도 좀 차려 와라. 애 가진 사람, 저렇게 굶겨놓는 거 아니다. 벌 받는다. 뭐 하냐. 빨리 가서 뭐라도 차려 내오지 않고.”


  며느리가 차려 온 밥상을 마주 하고 앉았지만 밥이 목으로 넘어갈 리 없었다. 아이에게 조금 떠먹일 뿐이었다.

“우리 아들 이해해 줘요. 요즘 워낙에 불경기라 중장비 일도 잘 안 되는데, 자꾸 법원에서 뭐가 날아오니까 화가 나서 그랬을 거야. 사람이 살다 보면 별별 일이 다 있는 거라우. 새댁 엄마도 뭔가 사정이 있겠지. 사람이 처음부터 나쁜 맘먹는 경우는 드문 거니까. 쯧쯔.”

밥상머리에서 할머니가 잔잔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남자가 나와 아이를 버스터미널에 데려다주었다. 내키지 않는 마음이 곁에서도 느껴졌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이에게 신신당부했다.

“아빠에게 오늘 일 절대로 말하면 안 돼.”

“왜?”

“그러면 아빠하고 엄마하고 또 싸울게 될 거야. 그리고 외할머니도 우리 집에 앞으론 못 와.”

아이가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아이는 비밀 하나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남편의 퇴근이 늦었다.


  그 후로도 중장비 남자는 찾아왔고 전화를 사흘돌이로 걸어왔다. 어떤 이는 엄마에게 꿔준 돈을 달라며 찾아왔다. 좀 아는 사이인데, 며칠만 쓴다고 꿔가더니 나타나질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우리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려줬다는 것이다. 전화는 휴일도 가리지 않았다. 급기야는 남편이 알아버렸다. 그때마다 우리는 다퉜다. 나중에는 전화벨 소리가 무서울 지경이었다. 지금처럼 발신자를 알 수 있는 기능이 있을 때가 아니었다. 전화를 받아봐야 발신자를 알 수 있었다. 나는 엄마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인가 남자가 찾아오지 않았다. 전화도 하지 않았다. 나는 엄마가 잘 해결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한 두어 달쯤 지났을 때였다. 벨 소리에 현관문을 열어보니 남자가 서 있었다. 느닷없이 나타난 남자에 깜짝 놀랐다. 남자의 아내는 커다란 가방까지 들고 있었다.

 순간 나는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남자가 양팔을 목발에 의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뜸하다가 갑자기 나타난 남자 때문에도 놀랐고, 남자의 멀쩡했던 두 다리가 없어진 것에도 놀랐다.

간신히 4층 계단을 올라온 남자는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열린 현관문으로 비칠거리며 들어온 남자가 거실 바다에 쓰러지듯 앉았다. 거실 바닥에 앉은 남자를 보며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넓적다리부터 비어 있었다. 남자와 기분 좋은 얘기를 나눠본 적은 없었다. 그렇더라도 얼굴을 아는 사람이 느닷없이 상반신만 가지고 나타나다니.

 그러면서도 자꾸만  눈길이 그의 아내가 들고 들어온 커다란 가방으로 갔다.


 “아직 엄마는 연락이 없어요?”

남자가 거실에서 짧아진 다리에 걸린 바지가닥을 추스르며 말했다.

 “네…”

 “새댁네 엄마도 어지간하네…”

 남자도 남자의 아내도 말이 없었다. 나는 그들에게 주스 두 잔을 내어 주었다. 주스를 내어 주면서도 이 사람들이 아예 돈을 받을 때까지 눌러앉을 생각일까 싶었다.


 주스를 한 모금 마신 남자가 입을 열었다.

“두 달 전에 새댁네 집에 왔다 가서 이렇게 됐어요."

"어쩌다가....?"

 내가 그의 사라진 다리를 바라보며 물었다.


 "공사 중에 고장 난 포클레인이 덮쳤어요. 요즘 워낙 불경기라서 인건비라도 아껴보려고 기사 대신 내가 나갔다가....."

 나는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창밖을 한 참 바라보던 남자가 말했다.

"우리 아버지는 새댁네 집에 가지 말라고 했어요. 가봤자 받지 못할 돈이라고.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열불이 나는 거야. 남은 돈이 한 450 정도 되는데, 연체이자가 붙어서 자꾸 늘어나는 거야. 뭐 사람이 이렇다 저렇다 말이 있어야지, 말도 없이 우리만 피해를 입은 거잖아요? 화가 나서 밤에 잠이 오질 않더라고.”

나는 마주 앉아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아무튼 돌아가서 이렇게 되어버렸어요…”

그의 아내도 나도 그도 잠시 말이 없었다.


"한두 달 병원에 누워서 곰곰이 생각을 해봤어요. 사실 처음엔 죽고 싶었어요. 이 다리로 앞으로 어떻게 사나 싶기도 하고 억울한 마음도 들고... 나 세상 살면서 누구에게 크게 잘못을 한 일이 없어. 누구에게 해를 입힌 일 없이 착하게 살려고 노력했는데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마음에 걸리는 게 없어. 난 최대한 양심껏 산다고 살았거든. 우리 아버지엄마 봐서 알겠지만 우리 그렇게 악하게 산 사람들 아니에요."

 남자는 조금 울먹이고 있었다.

 "그런데... 새댁이 걸리더라고... 애 가진 엄마에게는 함부로 하면 안 된다고 하시던 아버지 말씀도 생각나고..."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내가 남자의 나이를 가늠할 수는 없었지만 마흔 살은 훨씬 넘어 보였다. 그때 내가 느끼기에 마흔 살은 굉장히 많은 나이였다. 더군다나 검게 그을린 그의 얼굴은 더 나이를 먹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어른이 하는 말에 내가 보탤 말은 없었다.


“아무튼 그동안 내가 너무 심하게 말하고 행동한 거에 대해서 용서해 줘요. 내가 미안했어요. 새댁이 잘못한 게 아닌데 내가 괜한 새댁에게 화풀이한 거 같아요.”

 남자가 고개를 숙이고 다리를 덮고 있는 긴 바짓가랑이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아니에요. 다 우리가 잘못한 건데요. 괜찮아요. 마음에 두지 마세요. 오히려 제가 죄송해요.”

“아, 그리고 차 문제는 걱정하지 말아요. 나, 사고 난 거에 대해 보험회사에서 보상금을 8천만 원 받았어요. 들어놨던 다른 보험도 있고... 그래서 자동차 할부도 해결했고 내가 조금 빚이 있었는데 그것도 갚고......”


“그럼 앞으론 뭐 하고 지내세요?‘

“남아있는 중장비 다 팔고 그냥저냥 지내야죠 뭐. 어차피 요즘엔 진행되는 공사도 없는 편이라서 그냥 세워둘 때가 더 많았어. 한 6개월은 여기 종합병원의 재활원에서 재활치료받을 거예요. 사실 오늘 거기 입원하는데 겸사겸사 왔어요. 새댁 만나서 사과부터 하고 들어가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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