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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이경 Oct 03. 2024

나는 원조 "고딩엄빠"다.(22)

#22.

   택시를 타고 가는 내내 나는 울었다. 그동안 살아온 세월들이 어제 일처럼 지나갔다. 서럽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시간이었다. 내게는 10대도 없었고 20대도 없었다. 내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누구의 엄마라는 호칭만 있을 뿐이었다.  

너무 일찍 내 이름을 포기해야 했다.


 한 번도 그것에 대해서 억울하다거나 아쉽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모두가 내가 선택한 거였다. 그렇기에 최선을 다해 잘해나가려고 안간힘을 쓰며 살아왔다. 그러나 되풀이되는 시어머니와의  유치한 감정싸움에 질력이 났다.


  택시기사가 룸미러로 자꾸만 흘끔거렸다. 그러나 나는 개의치 않았다. 나는 잃을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잃을 게 없는 사람처럼 무서운 사람이 또 있을까?


 마침 시부모님은 집에 계셨다. 내가 전화도 없이 들이닥치는 것을 보고, 내 얼굴에서 날 선 기운을 느끼셨는지도 모른다. 오랜 삶을 살아온 분들이니까, 눈치도 남달랐을 것이다.     

“네가 웬일이냐? 전화도 없이 이 시간에?”

이 시간이라 함은 저녁 시간이 임박했다는 뜻일 것이다. 식당을 지키고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뜻이기도 했다.

“어머님께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어요.”

내가 단호한 표정으로 어머니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어머니가 당황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무슨 일이냐? 꼭 어머니만 들어야 하는 거냐?”

주방에 계시던 시아버지가 거실로 나오시며 나와 어머니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서쪽으로 향한 거실 창으로 햇살이 들이쳐서 내 등을 비추고 있었다. 마주 서 있는 어머니의 표정이 또렷하게 보였다. 어머니가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있었다.


 십여 년을 넘게 살면서 어머니가 어떤 심한 말을 해도 나는 한 번도 대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랬던 내가 할 말이 있다며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있었다.


“아뇨, 두 분께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어요.”

“네가 내게 무슨 할 말이 있다는 거냐. 나 지금 저녁 해야 하는데…”

시어머니는 적이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두 분 다 앉아 보세요. 제가 여쭙고 싶은 게 있어요.”

내가 먼저 거실의 중앙에 앉았다.

시아버지가 먼저 따라 앉으며 말씀하셨다.

“그래,  중요한 얘긴가 본데 한 번 들어 보자꾸나.”

“아버님, 제가 이 집에 와서 못한 게 뭐가 있어요?”

내가 퉁퉁 부은 눈으로 시아버지에게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 네가 뭘 잘못했다는 거야?”

“그러니까요. 제가 이 집에 와서 뭘 잘못했는지 말씀을 좀 해주세요.

 제가 비록 비정상적으로, 부모님 마음에 들지 않게, 시집을 오긴 했지만, 말썽쟁이 아드님 대학교 졸업시켜서 번듯한 직장 취직하게 했죠? 이 댁에 없는 아들 둘, 낳아서 똑똑하게 공부시켰죠?

 남들보다 일찍 집 장만도 했죠? 그동안 단 한 번도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고 살아왔는데 제가 뭘 잘못했는지 말씀을 좀 해 주세요.”

 내가 시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 얼굴은 이미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래, 네가 그랬지. 나는 너한테 불만 없다. 착하고 똑똑해서 아이들도 똑똑하게 잘 키웠고, 니 말대로 니 남편도, 니 덕분에 대학 졸업해서 직장 잘 다니고 있는 거, 내가 왜 모르겠니.”

“그런데요? 그런데, 왜 어머님은 절, 못된 여자 못 만들어서 안달이신 건데요?”


“그게 무슨 말이냐? 네 엄마가 뭘 어쨌다고?”

시아버지가 곁에 앉아 있는 시어머니를 건너다보며 내게 말했다.

“아버님, 제가 아무리 못나고 마음에 들지 않으셔도, 저도 이젠 이 집 식구잖아요. 아버님께 손주 낳아주고 아버님 아들 뒷바라지 하는 아버님 며느리잖아요?”


“그렇지. 그걸 누가 뭐라고 하더냐?”

“그런데요, 그런데 어머니는 왜 남들에게 제 흉을 보고 다니시는 건데요. 바람 피나 안 피나 감시하라고 하셨다면서요.    제가 바람피울 여력이 어딨어요?

 제가 친정으로 빼돌릴 돈이 어딨어요? 주방아줌마는 우리 집 종업원이에요. 어떻게 종업원한테 며느리를 감시하라고 부탁을 하세요?”     


  시아버지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내 생각에는 아침마다 전화 통화할 때 시아버지도 분명히 곁에 있었을 테고, 귀머거리가 아닌 이상 둘의 통화내용을 알고 계실 거라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 그건 네 말이 맞다.”

 시아버지는 낮은 목소리로 내 말에 동의했다. 시어머니도 옆에 앉아 있었지만 말씀이 없었다.

“그리고요, 아버님, 아버님 시골 땅 보상받았을 때, 저희 말고 다른 형제들에겐 다 얼마씩 주셨다면서요?”

“아니, 누가 그러던?”

나는 이판사판이었다. 또 언제 이런 자리가 올지 모르는 일이었다.


“어머니께서 주방 아줌마에게 말씀하셨다면서요. 큰 아주버님부터 누나들, 형들, 모두 다 돈 주셨다고. 얼마씩  줬다고 했는지까지 말씀드릴까요?”

아버님은 말씀이 없으셨다. 어머니는 분노와 불안이 뒤섞인 묘한 표정을 짓고 계셨다.  

   

“전요, 그 돈 왜 저희는 안 주셨냐고 따지는 게 아니에요. 어머니아버지 것이니까, 어머니아버지 마음대로, 주고 싶은 사람 주시고, 마음에 안 드는 자식에게 안 주는 것에 대해서 저는 드릴 말씀이 없어요.

 다만, 다른 형제들에게는 그렇게 해주셔 놓고, 저희에게 팔백만 원 보증 서 주실 때 어떻게 하셨어요?

 또 나중엔 빨리 안 갚는다고 얼마나 닦달하셨어요? 저희 사정 다 아시면서 어떻게 저희에게 그러실 수가 있어요?

 전, 그게 너무 화가 나는 거예요. 공짜로 달라는 것도 아니었잖아요.

 전, 아버님 돈 십 원도 넘겨다 본 적도, 바란 적도 없어요. 그러고는 온 동네방네에 저희 집 사주셨다고 말씀하셨다면서요?

 언제 저희에게  집을 사주셨어요? 다른 형제 몇 천에서 몇 억씩 주실 때, 꼴랑 애 아빠, 백만 원짜리 중고차 한 대 사 주신 거는 왜 얘기 안 하신 건데요?

 생색을 내고 싶으셨으면 그걸 내야 하는 거 아니었어요?”


 시부모님은 아무 말씀이 없었다. 늦여름의 기우는 햇살이 열어 놓은 창으로 들어왔고 창으로 들어온 바람이 커튼을 펄럭이고 있었다.

그날이 8월 15일이었다.    

 

 내가 시집에 가서 한바탕 소란을 벌이고 내려온 후, 나는 주방아줌마를 해고했다. 아니, 주방 아줌마가 먼저 그만두겠다고 했다. 내가 시집에서 내려오고 시어머니와 어떤 대화가 오고 갔는지는 모른다.  

     

 아줌마가 무슨 생각으로 그날 내게 시집의 보상 문제를 알려 주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당장 쫓아 올라가서 그렇게 드세게 따질 줄은 몰랐던 거 같다.


 주방아줌마가 아직 우리 식당에 있을 때, 시부모님은 종종 식당엘 방문했었다. 그때마다 주방아줌마는 시부모님을 반갑게 맞아들여 식탁을 마주하고 앉았다. 나는 손님의 뒤치다꺼리나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이건 아주 뒤 바뀌어도 한참 뒤 바뀌었네. 누가 주인인 줄 모르겠어.”

 홀을 봐주던 종업원이 나 들으라고 한 말 같았다.   

  

 시어머니가 집안일을 시시콜콜 얘기했기에 주방아줌마는 알고 있었다. 나를 시어머니가 얼마나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고 나를 얼마나 하찮게 여기고 있었는가를.

나는 그때 알았다. 키우는 개도 주인이 아끼지 않으면, 아무나 함부로 대한다는 것을.

         

 나는 혼자서도 주방과 홀을 감당할 수 있었다. 어느 정도 대중적인 음식솜씨도 생겼고 손님을 대하는 요령도 생겼다. 주방아줌마를 해고하고 오히려 나갈 돈이 줄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는 그렇게 일 년 넘게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부동산에 내놓은 지 오래되었지만 보러 오는 사람은 없었다.    

 

 그해 명절엔 별일 없이 지나간 것인지, 늘 상 있는 일이어서 기억나지 않는 것인지는 몰라도 특별히 기억나는 사건이 없다.     

 

  다음 해 설 명절이 지나고 모든 기업의 신년행사가 시작되었다.

  남편의 회사에서는 음력으로 신년이 되면 연례행사로 모든 거래처를 순회하는 관행이 있었다. 남편이 그런 이유로 출장을 갔다. 다음 날 올 거라고 했다.


  하룻밤이 지났고 남편이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이었다. 이른 아침, 거실에 놓여 있는 전화벨이 울렸다. 한 겨울이었고 아침 여덟 시였다. 아이들은 방학 중이라서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때였다.   

  

“제수씨, 놀라지 말고 들어요.”

수화기를 들자마자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말했다. 남편 회사의 선배였다.

놀라지 말라는 그의 첫마디에 나는 이미 너무 놀라고 있었다.


“별일 아닐 거예요. 나도 아직은 어떻게 된 상황인지 정확히는 몰라요. 지금 병원으로 이송 중이라고 해요. 그러니 내가 다시 연락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요. 어느 병원으로 가는지 알아서 다시 연락할게요.”


 전화를 끊고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날따라 낮에도 밤에도 예약 손님이 있었다. 명절이 끝나고 다시 시작되는 때이므로 이런저런 모임들이 한창일 때였다.     


 남편선배의 말에 의하면, 출장을 갔는데. 새해다 보니 거래처 사람들과 늦게까지 술을 마셨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본사에서 높은 분들이 내려온다는 연락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새벽에 함께 출장을 나간 동료들과 부랴부랴 사무실로 돌아오던 길이었다고 했다.     

 

  전날 시작한 눈이 새벽까지 내렸다. 고속도로였지만 도로는 구석구석이 빙판길이 되어 있었다. 과장이 운전하고 뒷자리엔 남편의 후배가 탔다. 남편은 조수석에 타고 있었다.


  차가 언덕의 커브 길을 돌 때, 빙판에 미끄러지면서 맞은편 도로의 언덕 아래로 추락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늦게까지 과음을 한 탓에 순간적인 판단에 미스가 생긴 것 같았다.

 술이 채 깨기도 전에 운전대를 잡은 것이다.

 그곳은 직원 모두가 자주 출장을 다녔기에 눈 감고도 다닐 만큼 익숙한 도로였다.    

 

  내가 다시 연락을 받고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오전 11시였다. 엄마에게 식당 예약손님을 부탁했다. 큰애에게 아빠가 다쳤다고 얘기하고 병원으로 향한 거였다.


 어떻게 알았는지 이미 시부모님이 와 계셨다. 그때는 휴대전화가 없을 때였다. 물론 카폰이나 휴대폰이 있긴 했지만 일반화가 되기 전이었다. 모든 연락이 유선전화로만 할 수 있었다. 삐삐라는 무선호출기가 있었지만, 그조차도 유선 전화가 없으면 무용지물이었다.  

    

“아니, 여태 뭐 하다 이제야 오는 거냐?”

시어머니가 나를 보고 말했다.

“조금 전에 연락받고 바로 택시 타고 오는 거예요.”

시어머니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남편은 내가 걱정한 것보다는 괜찮아 보였다. 다른 곳은 타박상 정도고 어깨를 심하게 다쳤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취를 해놓은 탓에 의식이 없었다.


“구급대원 말로는 차가 거의 반파됐다고 하던데,

 정말 주신(酒神)이 있긴 한가 봐요. 맨 정신에 이렇게 됐으면 정말 위험했을 텐데. 이만하길 천만다행입니다.”

응급실에 온 주치의가 농담조로 말했다.  

   

  남편은 어깨뼈가 부서졌다고 했다. 차가 벼랑으로 굴러 떨어질 때 무의식적으로 창문 위에 달린 손잡이를 잡았는데, 그때 어깨뼈가 분리되면서 분쇄골절이 됐다는 것이다.

 수술은 할 수 없었다. 뼈가 너무 작게, 여러 조각으로 부서졌기 때문이었다. 어깨를 묶어놓고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10주 진단이 나왔다.


 신기하게도 다친 사람은 남편뿐이었다. 운전자도, 뒷좌석에 앉았던 남편후배도, 털끝하나 다친 곳이 없었다. 뒤좌석에 앉았던 후배는 사고 나는 것도 몰랐다고 했다. 잠이 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주신(酒神)에 대해서 두고두고 얘기했다.

    

 남편이 병원에 입원을 했다. 분쇄골절이라서 입원해서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워낙에 큰 사고였기에 차후에 일어날지도 모를 몸의 상태를 지켜보는 것이 좋겠다고 의사가 말했다.

 남편이 다친 팔이 오른쪽이었기 때문에 생활하는 것이 불편했다. 그런 상황에 입원은 오히려 내게 짐을 덜어주는 일이기도 했다.


 식당 문을 닫을 수가 없었다. 손님이 있거나 없거나 문을 열어놔야 다른 사람에게 넘길 때 유리했다. 매달 사십 만원씩 나가는 임대료도 내야 했고, 융통한 돈의 이자도 내야 했다.


 나는 아침에 식당 문을 열기 전에 남편에게 먼저 들렀다. 두 아이 밥 준비를 해놓고 집안 청소와 세탁물을 정리한 후, 택시를 타고 병원에 도착하면 아침 아홉 시가 넘었다.


 언제나 시부모님이 먼저 와 계셨다. 환자침대의 식탁에 음식을 잔뜩 차려놓고 셋이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아니, 너는 차비 없애가면서 뭐 하러 매일 오는 거냐? 식당 일이나 하지 않고.”

시어머니가 나를 보고 차갑게 말했다. 그 말이 내겐 염려하는 말로 들리지 않았다.


 밥을 먹다 말고 나를 쳐다보는 세 사람의 표정과 눈빛이 동일했다. 닮은 사람 셋이 나를 남처럼 바라보는 것 같았다.

어쩐지 내가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테두리 안에 그들이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 테두리밖에 있었다.

 소외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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