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오늘은 라디오 이야기로 시작하려고 한다.
텔레비전은 아직 흑백이었고 방송국은 세 개였다. 국영방송국인 KBS와 민영방송국인 MBC, 지금은 사라진 TBC였다.
우리 동네에 텔레비전이 있는 집은 딱 한 곳, 마을 입구에 있는 구멍가게 송씨네뿐이었다.
라디오조차 집집이 있지 않았다.
엄마는 하루 종일 라디오를 틀어 놓았다. 라디오에는 커다란 건전지를 끈으로 묶어 놓았다. 전파가 고르지 않았기에 안테나를 길게 빼서 수신했다. 우리 집 뒤로 높은 산이 있어서 전파를 잘 받을 수 없다고 했다.
엄마는 라디오를 항상 들고 다녔다. 빨래할 때도, 밭을 맬 때도, 밥을 할 때도 항상 켜두었다. 나는 나중에, 엄마가 너무 무서워서 그랬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도 그럴 것이 깊은 산중에, 그것도 공동묘지로 둘러싸인 곳에 우리 집이 있었다.
시간마다 뉴스가 있었고, 뉴스 말미엔 일기예보를 해주었다. 그때, “안녕하십니까? 김동완통보관입니다, 오늘의 날씨를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시작하는 일기예보를 들었다. 하지만 일기예보는 맞을 때도 있었지만 틀릴 때가 더 많았다. 그래도 엄마는 빼놓지 않고 일기예보를 들었다.
낮에는 주로 노래가 나왔고 축구나 야구, 레슬링 경기를 중계해주기도 했다. 오후 다섯 시쯤 되면 어린이 만화가 나왔다. ‘태권 동자 마루치 아라치’였다.
한 30분 정도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매일 그 시간을 기다려서 마루치 아라치가 악당들을 무찌르는 것을 손에 땀을 쥐며 들었다.
시작과 끝에 나오는 주제가인,
‘달려라 마루치 날아라 아라치 마루치 아라치 태권동자 마루치 정의에 주먹에 파란 해골 13호, 납작코가 되었네.’
따라 부르던 노래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지금 아이들의 우상이기도 한 뽀로로만큼이랄까, 모든 아이들이 좋아했던 걸로 기억한다.
저녁 일곱 시부터 아홉 시까지는 연속극을 했다. 엄마는 그 시간에 맞춰서 모든 집안일을 끝냈다.
열 시엔 ‘전설 따라 삼천리’가 나왔다. 한 15분 정도 했던 거 같다. 우리나라 방방곡곡에 있는 전설들을 성우들이 연기를 하며 들려줬다. 무서운 얘기도 있었지만 슬픈 얘기도 있었다.
나는 엄마 곁에 누워서 들었다. 원한을 품고 죽은 처녀귀신과 시어머니에게 구박받다 죽은 며느리 얘기, 이웃 동네의 처녀를 좋아하다 죽은 총각얘기, 며느리에게 구박받다 굶어 죽은 시어머니 얘기, 은혜 갚은 구렁이 얘기들이 나왔다.
소리에 상상력까지 더해져서 더욱 실감 났다.
매주 수요일엔 여느 때보다 더 일찍 하루를 시작해야 했다.
아침 일곱 시나 새벽 여섯 시 삼십 분쯤이면,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하는 노랫소리로 하루를 시작했다. 새마을운동 노래였다.
학교에 가기 전에 마을길을 빗자루로 쓸었다. 날이 점점 따뜻해지면 길가에 꽃을 심기도 했다. 동네의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동참해야 하는 의무였다.
마을 대청소는 의무이기도 해서 빠지면 안 되었다. 우리 집은 동네하고 워낙 떨어져 있었기에 동참한 적이 거의 없었지만 동네에 있는 언니오빠들은 대청소를 마친 뒤 학교를 향해갔다. 내가 유난히 일찍 일어나 학교에 가려고 동네로 내려가면 모두들 비나 삽을 들고 동네를 청소하고 있었다.
어른들은 그 일을 마친 후 하루의 일을 시작했다. 그때는 어디에나 자주, 근면, 협동이라고 쓴 팻말과 함께 새싹이 그려진 초록색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다.
학교에 다니면서 국기와 국가에 대한 예의라는 것을 익혀야 했다.
교실에 들어가면 칠판 위에 오른쪽엔 박정희대통령 사진이, 왼쪽엔 태극기가 걸려 있었다.
교실에 들어가면서 잠깐 동안 멈춰 서서 태극기와 박정희대통령 사진에 예를 표해야 했다. 국기에 대한 경례였다. 국기에 대한 맹세도 외워야 했고 국민교육헌장도 외워야 했다. 그것과 애국가를 4절까지 외워서 시험을 봤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나라와 태극기와 국가원수는 반드시 받들어야 하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동절기엔 5시 30분, 하절기엔 6시에 태극기를 내렸다. 학교와 경찰서, 면사무소에서 방송으로 애국가를 틀어 놓고 하강식을 거행했다. 그때는 모든 행동을 멈춰야 했다. 태극기가 하강하고 있는 곳을 바라보고 서서, 왼쪽 가슴에 오른손을 올리는 예를 갖춰야 했다.
하강식의 애국가가가 울려 퍼지면 일하다가도, 길을 가다가도, 도로를 주행하는 차들조차도 갓길에 멈춰 서야 했다. 태극기를 하강하는 사람이 태극기를 공손하게 잘 접어서 수납함에 넣고 나서야 멈췄던 행동들을 다시 움직일 수 있었다.
태극기를 훼손하는 것은 큰 범죄였다. 비 오는 날 태극기는 비를 맞게 하거나, 낡은 태극기를 게양해도 안 되었다. 만약 낡은 태극기가 게양되어 있다거나 비가 오거나 날이 저물었음에도 태극기가 게양되어 있다면 담당자는 크게 문책을 당했다. 낡은 태극기는 깨끗한 곳에서 깨끗하게 소각해야 한다고 배웠다.
박정희 대통령에게 ‘각하’라는 호칭을 덧붙였다. 대통령은 나라의 아버지이고 영부인은 ‘국모’라고 할머니들은 말씀하셨다. 만약 대통령을 함부로 말한다거나 태극기를 훼손하면 국가모독죄나 국가원수 모독죄에 해당됐다. 교도소에 갈 수 있는 큰 범죄였다.
지금처럼 대통령을 "이놈 저놈"하고 말한다거나, 이름을 함부로 불렀다가는 아마도 대부분의 국민들은 교도소에서 오랜 시간 형을 치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