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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필런 Jan 22. 2019

‘선의’와 ‘오지랖’ 사이 그 어디쯤

결핍 ; 있어야 할 것이 없어지거나 모자람

우리 회사는 어울리지 않게도 최첨단 시스템으로 출입문을 연다. 로봇 태권브이를 만드는 회사도 아닌데 말이다. 무려 안면인식 시스템. 출입문 어딘가에 얼굴을 인식시켜야만 문이 열린다. 결혼을 앞두고 있는 옆팀 여자 직원은 얼마 전 보톡스를 맞았는데 그 이후 얼굴 인식이 안된다고 했다. 최첨단 시스템을 도입한 것은 확실해 보인다. 


사실 우리로서는 불편하기 그지없다. 화장실을 한번 오가는데도 얼굴을 찍어야 하니 말이다. 하지만 얼굴을 대신해 주는 무언가도 있다. 그것은 바로 사원증이다. 이쪽 세계, 즉 직장인들의 전문용어로는 ‘개목걸이’라고도 불려지는 그것의 이야기이다. 



누군가에게는 로망이지만 또한 누군가에게는 개목걸이라고 불리는 사원증. 회사 안에서도 마찬가지. 여전히 누군가에게는 로망이다. 


대부분의 회사가 그렇듯이 우리 회사도 계약직, 파견직, 인턴 등 자신의 자리가 불안정한 계층이 있다. 물론 외부 시선에서는 쉽게 구분하기 어렵겠지만 분명하게 그 계층적인 구조는 존재한다. 


다행히도 자리가 안정적인 나는 감히 그들의 심정을 공감하려 하거나 딱히 그들을 위한 특별한 배려를 하지는 않는다. 그저 가능한 범위 내에서 그들과 이질적이지 않게 일을 하려 노력할 뿐이다. 


하지만 그런 그들과 본의 아니게 불편함을 느껴야 하는 경우가 생겼다. 바로 앞에서 말한 최첨단 안면인식 시스템이 도입되면서부터이다.



안면인식이 도입되기 전에는 지문인식 시스템이었다. 인사팀에 가면 누구라도 쉽게 지문 등록이 가능했었다. 어떠한 계층이라도 상관없이 말이다. 하지만 최첨단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안면인식 등록 자체가 복잡하고 어렵다는 이유로 회사에서는 정직원들에게만 안면인식 등록을 지원한다고 했다. 


그 대신 회사는 얼굴을 등록하지 못하는 그들에게 우리의 사원증과 비슷하게 생긴, 출입증이라고 써져있는 목걸이를 제공해 주었다. 하지만 그나마도 한 사람당 하나씩이 아닌 부서당 2개씩... 


보안 때문이라는 명목 하에 내려진 결정이라지만 그 결정은 특정 계층에 속한 누구에게는 많이 야속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야 알았다. 안정적이지 못한 그들 사이에서도 분명 또 계층은 존재했다는 것을. 그나마도 그 계층에서 가장 하위권인 인턴들은 하나의 목걸이를 여러 명이 함께 나눠 써야 했으니까. 


어쨌든 그들도 사원증처럼 생겼지만 사원증은 아닌, 목걸이를 가지게 되었다. 


꼬인 감정과 알량함


취업을 앞두고 있던 10여 년 전, 나는 직장인들의 사원증이 그렇게도 빛나 보일 수가 없었다. 사원증을 찰랑거리며 걸어가는 그들에게 나는 적당히 꼬인 감정이 있었던 것 같다. 지하철에서, 그리고 길거리에서 항상 그랬다. 목걸이를 걸고 다니는 그들을 볼 때마다 애써 부러운 감정은 숨기고 적대심을 가지곤 했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흘러 100여 번의 입사지원서를 쓰고 난 뒤 비로소 나도 사원증이란 것을 가질 수 있었다. 


사원증을 받은 날부터 나는 몇 달간 항상 사원증을 목에 걸고 다녔다. 출퇴근 때도 마찬가지. 선배들이 퇴근하면서도 사원증을 걸고 다니는 나를 놀리곤 했다. 회사가 그렇게 좋으냐고, 그리고 시간이 지나 보면 그게 목걸이인지 개목걸이인지 알게 될 거라고 했었다. 그래도 나는 한결같이 잠드는 시간만 빼고 항상 사원증을 걸고 다녔던 것 같다. 왜 그랬을까? 적어도 애사심은 아니었다. 


되돌이켜보면, 그저 안정적이지 못한 계층에서 운 좋게 탈출해 그 위의 계층으로 올라갔다는 뿌듯함. 또는 자랑. 딱 그 정도의 알량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지금은 사원증을 목에 걸고 다니지 않는다. 그저 배가 불러서만은 아니다. 사원증만 갖게 되면 모든 것이 술술 풀릴 거라 생각했지만 인생이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달았을 뿐이다. 그저 자연스러운 변화이다. 


사원증의 내 얼굴을 활짝 웃고 있다. 사원증을 처음 받았던 그날의 표정과 같다. 하지만 그 표정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나 역시도 사원증을 개목걸이라고 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웃고 있는 사원증의 사진과 무표정한 지금의 내 표정이 사뭇 대조적이다.  


자리가 안정적이지 못한 그들 계층 중에 가장 하위에 있는, 그리고 또 그들 중에서도 가장 막내인 우리 팀 인턴에게 내 사원증을 건넸다. 


“출입문 열기 불편할 때 필요하면 쓰세요” 


그녀는 내 사원증을 받아 마치 경이롭다는 듯이 이리저리 쳐다본다. “이거 저 주셔도 돼요?”라고 되물으며 나를 멀뚱히 쳐다본다. 

그에게는 엄청난 무언가 이지만 나에게는 별 의미 없는 물건이다. 사원증을 이리저리 한참이나 쳐다보는 그녀의 심정을 알듯 말듯했다.  



며칠 뒤 그녀의 목에 걸린 내 사원증을 보았다. 요즘 유행한다던 캐릭터 스티커를 교묘하게 활용해 내 얼굴을 가린 뒤였다. 웃고 있는 내 얼굴을 가려준 그녀가 고마웠다.   


다만, 가끔 무표정하게 자신의 목에 걸린 나의 사원증을 바라보는 그녀를 볼 때마다 혹시라도 그녀의 자존심이 무너지고 있지는 않을지 걱정이다. 


우린 각자의 결핍을 지니고 있었다.

(결핍 ; 있어야 할 것이 없어지거나 모자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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