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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존재 Oct 28. 2020

상흔 20201028

몸에 움푹 파인 곳이 있다. 깊이도 파여서 빛이 들지 않아 어둑하기만 하다. 저 안에서 데워지고 있는 뭔가가 있는데,  매연을 몸에 흩뿌리는 무언가가 타오르는 중인데 나는 알 수가 없다. 눈을 떴더니 어김없이 검은 연기가 차오르는 중이다. 교활하고 느릿하게 시야를 휘감는 덩치, 그것은 하늘을 가리고 내게 내려지던 찰나의 빛마저 등지기 위하여 안간힘을 쓴다.


다들 몸의 주인이 되고자 살아가는 중일 터인데, 몸은 당연하단 듯이 늘 주인을 배신한다. 여기저기가 벗겨진 자국들뿐이다. 북 그어 피가 줄줄 흐른다면 차라리 사혈을 모두 내보낼 수 있을 것이다. 목 끝까지 차오른 죽은 마음과 흉터가 남아있을지라도 피로서 함께 흘려낼 수만 있다면 인간의 정신은 언제라도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상처는 그저 벗겨진 것들뿐. 칼도 없고 상흔도 얕다. 죽은 피가 신체를 맴돌고 있으나, 가죽만 얇게 벗겨져서는 그들을 꺼낼 수 없다.  나는 그저 어딜 가져다 대던 찌릿하고 따끔한 감각에 눈물 두세 방울 정도만을 맺게 되는 얇은 가죽의 인간이다. 


손아귀가 머리를 잡아채간다면 나아질지도 모른다. 정수리부터 손톱을 찔러 넣어 내용물을 전부 뽑아낸다면 텅 빈 얼굴만을 몸통 위에 이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때라면 행복은 없겠지만 좌절 또한 없겠지. 더 이상 타인을 바라보며, 자기 자신을 거울을 통해 바라보며 괴로워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응시를 거듭하여도 어떤 환희도 절망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자동인형으로서의 삶을 살아간다면 기쁨도 사랑도 없겠지, 자기 파괴와 실재하는 나의 열등함 앞에서 그런 소중한 걸 포기하는 것은 옳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둘은 언제라도 나를 목조를 듯이 다가온다. 맹렬하여 몸이 굳어 되려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나는 석고상처럼 딱딱해진 몸속에서 뇌만을 움푹 파인 곳에 풍덩 던져놓고는, 비대해진 자아만을 이리저리 굴리며 가만히 누워있는다. 정말 가만히, 지네가 몸을 훑고 지나가는 기분으로 나는 감지도 뜨지도 않은 눈을 흐릿하게 거머쥐고 있다. 


결국 나도 현대의 발에 챌 듯이 널린, 신경증을 가진 인간 1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진취적이고 강한 행위보다 쓰라린 가죽을 쓰다듬으며 구덩이에 침잠하는 게 어울리는 것이다. 허기가 있으나 나의 굶주림을 만족시켜줄 생각은 전혀 없다.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다. 어째서 이렇게 괴로운지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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