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해외살이에 대한 로망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학창 시절 친구들이 머나먼 이국 땅을 동경할 때에도 나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고, 대학 때 남들 다 가는 배낭여행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한국에서의 삶을 안온하게 여겼다. 경제적으로 여유롭다고 자신할 수는 없지만 늘 돈보다는 시간이 부족했기에, 돈만 내면 다 해주는 퀵서비스 천국인 한국 생활에 이미 익숙할 대로 익숙했다.
그럼에도 미국살이를 결정한 건, 내게 찾아온 해외연수 기회를 버리기는 아깝다는 생각과 아이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대치동은 아니지만 그와 비슷한 학군지에서 초등맘으로 몇 년을 지내오면서 '이게 과연 내 아이에게 맞는 길일까'를 고민한 지 오래였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학원 뺑뺑이를 돌면서 대학입시를 향해 달려가는 생활, 실컷 놀고 많은 것을 경험하면서 행복하게 보낼 어린 나이에 미래를 위해 현재를 유예하는 삶을 아이에게 강요하는 게 맞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끊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공부 외에 다른 길로 진로를 정하거나 국제학교, 유학 등을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저 아이도 나도 새로운 세상을 보면 시야가 바뀌지 않을까 싶긴 했다.
그래, 1년도 안 되는 해외살이 뭐 별 거 있겠어. 외국에서 사는 것에 대한 로망은 없어도 외국 여행은 좋아하니까 조금 긴 여행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연수준비를 시작했으나, 이것이 대단히 큰 착각이었다는 사실을 곧 깨닫게 되었다. 돈을 펑펑 쓰면서 잠깐 있다 가는 여행객과 비자를 받아서 살러 가는 거주자의 지위는 (사실 돈을 펑펑 쓴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지만) 천지차이였다. J1 비자를 받고 아이를 미국의 공립학교에 보내기 위한 해외 대학 어드미션, 비자, 거주지 렌트, 환전, 짐 싸기 등등 끝없이 이어지는 절차들은 나를 질리게 했다. 아마도 이런 것인 줄 미리 알았더라면 시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
해외연수가 결정되고 출국 때까지 6개월이 안 되는 기간 내내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연수준비를 하면서 저도 모르게 입에서 육두문자가 튀어나오는 경험을 여러 번 했다. 게다가 남편 없이 아이를 데리고 혼자 낯선 땅에서 살 생각을 하니 계속 긴장과 불안에 눌려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 때문인지 갑자기 몸도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했다.
출국날.
남편과 아이와 함께 셋이 밤늦도록 놀다가 새벽 5시 반에 일어났다. 부랴부랴 준비를 마치고 인천공항으로 갔다. 체크인을 하고 짐을 다 부친 후 남편과 헤어지려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지금까지 준비하느라 바빠서 이별을 실감 못 하고 있었는데 막상 공항에 오니 앞으로 거의 1년 동안을 따로 산다는 사실이 갑자기 피부로 느껴졌다. 나도 아이도 남편도 서로 눈시울이 벌게진 채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렸다.
입국장 안으로 들어와서 라운지에서 좀 쉬다가 비행기에 탑승했다. 편도 14시간의 비행과 그 이후 이어질 긴긴 정착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 비즈니스석을 예매했는데, 아이는 자기 생애 처음 타는 비즈니스석에 흥분하면서 친절한 승무원들의 서비스에 몸 둘 바를 몰라하더니 내 귀에 살짝 속삭였다. "엄마, 아빠랑 헤어지는 건 슬픈데 비즈니스석 타는 건 좋아!" ㅋㅋㅋ
기내식을 먹고 양치를 한 뒤 미국 현지 밤시간에 맞춰 미리 처방받은 수면제를 먹었다. 시차적응에 도움이 될까 해서였다. 한국에서 미리 테스트해 본 결과 수면제를 먹으면 8시간 정도 푹 잘 수 있었기에 이번에도 기대했는데.... 잠든 지 한 시간 만에 아이가 심심하다고 깨웠다;;;;; 수면제를 먹는다고 누가 깨워도 안 일어나는 건 아닌가 보구나;; 다행히 아이와 조금 놀고 나서 다시 잠들 수 있었다.
워싱턴 공항에 도착해서 입국수속을 했는데, 현금을 4만 달러 가져왔다고 신고하는 바람에 세컨더리 룸, 일명 진실의 방으로 끌려갔다;; 어디선가 후기에서 정직하게 신고하면 안 끌려간다고 했는데?? 1년 살 거면 다들 그 정도 현금은 가져오는 거 아니었어??
아이와 둘이 세컨더리 룸으로 이어지는 노란선을 따라 걸으면서 짧은 영어로 뭐라 설명해야 풀려날 수 있나 싶어 식은땀을 흘렸다. 나도 모르게 사극톤으로 "아이구 나으리, 소인은 수상한 자가 아닙니다요. 그저 우리은행 미국법인도 와이어 송금도 모르는 무지랭이인 탓에 일이 이렇게 되고야 말았습니다요."라고 읍소하는 상상을 했지만, 다행히 문답 자체는 '너 직업 뭐야? 현금 왜 가져왔어?' 정도로 쉽게 끝났다. 비수기라 그런지 사람도 많이 없어서 너무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던 것도 다행이었다.
세컨더리 룸을 나와서 덩그러니 놓여 있는 짐을 찾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유료 카트가 있었다. 아이와 둘이 캐리어를 끌어야 할 것을 생각하고 짐을 조금만 쌌는데 미국 공항에도 카트가 있는 줄 알았더라면 좀 더 가져올 걸 그랬어. 한국에 두고 온 옷이며 책들이 아쉬워지는 순간이었다.
입국장을 나와 마중 나온 친구를 보자 긴장이 풀렸다. 친구 차에 짐을 싣고 페어팩스에 있는 친구의 집으로 향했다. 미드에서나 보던 그림 같은 싱글하우스를 보니 내가 미국에 왔다는 실감이 났다. 한편 싱글하우스를 먼저 본 아이가 우리 아파트를 마음에 안 들어하면 어쩌나 걱정도 되었다.
점심을 먹은 후 아이를 친구 집에 둔 채 픽업 오신 중고차업체 직원분과 매장으로 향했다. 이 업체는 단기체류자를 위해 공항 픽업, 도착 첫날 숙소 제공, 은행계좌 개설, 차량 판매, 보험 가입을 하고, 출국 시 다시 차량을 매수해 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매장에 도착해서 사장님과 인사를 나눈 후 다른 직원분과 함께 은행으로 향했다. 중고차업체 직원과 은행직원 사이의 길고 긴 대화를 들으면서, 혼자 왔더라면 이걸 처리할 수 있었을까, 낯선 나라에서 내 나라 말로 알아듣게 설명해 주고 일처리를 도와주는 분이 계셔서 다행이다 싶었다.
은행업무를 마치고 다시 중고차매장으로 돌아와 사장님이 미리 준비해 주신 차에 올랐다. 원래 차에 대한 지식도, 취향도 거의 없는 데다가 1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탈 차인데 개인적인 호불호를 따질 여유는 없었다. 그저 가격 적당하고, 고장 잘 안 나고, 되팔 때 괜찮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알아서 추천해 달라고 말씀드렸더니 받은 차는 혼다 CR-V. 받을 때만 해도 별생각 없었는데 나중에 무빙세일받으러 갈 때 웬만큼 덩치 큰 가구들도 다 실리는 것을 보고 감동했다.
차를 구입했더니 사장님이 운전연수까지 시켜주셨는데, 이것이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다. 미국 운전은 여유롭긴 하지만 신호체계가 좀 달라서 배우지 않았더라면 헷갈리고 긴장했을 것 같은데 연수를 받으면서 시운전을 하니 이해가 잘 되었다. 연수 덕분인지 이후 정착을 위해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도 운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적은 없었다. 중고차 계약까지 마치고 집에 왔더니 친구가 하루 사이에 많은 일을 했다며 축하해 주었다.
저녁을 먹는데 먼저 먹고 일어난 아이가 구석에서 게임을 하면서 짜증을 내다가 급기야 울먹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옆에 앉아 무슨 일인지 물으니 브롤스타즈 승급전에서 실패했단다.
고작 그런 걸로 이렇게 날카롭게 군단 말이야? 예전에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모습이었기에 긴장이 되었다. 혹시 미국땅이 낯설어서 그런가, 아빠와 친구들이 보고 싶어 그런가, 여러 가지 생각으로 마음이 착잡해지면서 '내가 남편과 떨어져서 아이를 데리고 미국에 살러 온 것이 과연 잘한 일일까' 하는 생각까지 단숨에 내달렸다. 비행기를 탈 때까지 계속 가기 싫다고 투정을 부렸던 아이였기에 더욱 그랬다.
하지만 기우였다. 다음 날 아침 아이는 승급전에 성공했다며 해맑게 웃었다. 어제의 짜증은 온데간데없었다. 진짜 게임 때문이었니, 이 단순한 녀석아;;;; 엄마 간 떨어질 뻔했잖아. 그래, 이왕 온 거 우리 앞으로 10개월 동안 걱정은 내려놓고 즐겁게 지내보자.
[정착 꿀팁]
버지니아에는 우리은행이 있다. 미국법인과 한국법인은 별개의 회사이지만, 한국에서 미리 미국법인의 은행계좌를 만들어 출국 전에 송금해 놓을 수 있다. 현지에 도착해서 우리은행을 방문해서 송금한 돈을 출금하거나 다른 은행에 이체하면 된다. 내가 살 리치몬드에는 우리은행 지점이 없어서 나는 신청하지 않았다.
국내 지점 중 위 업무를 처리하는 지점이 많지 않으므로 알아보고 가야 하고, 필요한 서류도 미리 확인해서 준비해가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