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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이 Mar 29. 2024

아이의 스포츠 클럽

아이와 단둘이 미국 정착기

오늘도 주룩주룩 비가 내린다. 벌써 며칠째인지 모른다. 미국 동부는 생각보다 비가 자주 온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역시 날씨 좋은 서부로 갈걸. 그럼 겨울옷도 안 가져와도 됐을 텐데... 뭐 후회해 봐야 소용없다. 하긴 서부도 요새는 이상기온으로 예전 같지 않다고 듣긴 했다.


오늘은 셔틀버스에서 내린 아이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지난주 처음 가고 나서 며칠은 '공부 안 하는 미국 초등학교'에 반해서 묻지도 않은 학교일을 주저리주저리 말하곤 했는데, 오늘은 입술을 한일자로 꾹 다물고 걷기만 한다. 아이를 따라 걸으며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레 "오늘 어땠어?" 하고 묻자 아이가 대답했다. "오늘은 재미없었어. 아무도 나한테 말 안 걸었어. 요새 계속 그래." 말하는 아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별도리 없이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다. 지난 세월 하나님만 의지하여 수없이 어려움을 헤쳐나간 경험을 바탕으로 이제 나의 고난, 나의 역경에는 비교적 담대해졌지만 아직 아이의 어려움 앞에서는 나도 모르게 가슴이 조여든다. 여전히 믿음이 적은 탓이겠지만.


간식을 먹으면서 아이와 조금 얘기를 나누어 본 결과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운동을 잘하는 아이는 리세스 타임에 축구실력을 뽐내면서 반 아이들과 가까워질 수 있었는데 요 며칠 비가 내려서 축구를 하지 못했다. 아이는 아직 영어로 의사소통이 어려우니 말로 하는 놀이에는 낄 수 없고, 아이가 오기 전 주에 담임선생님이 '전학생이 오니까 모두 한 마디씩 걸면서 챙겨주라'고 당부한 것 같은데 일주일쯤 지나니까 그 약발도 떨어진 모양이다.


일단 따돌림을 당하는 건 아닌 것 같아서 안심했다. 그럼 이제 미국 친구들과 어떻게 친해져야 할까 고민이구나. 친구를 집으로 초대해 보는 것은 어떨까? 아이에게 물었더니 돌아오는 답은 "애들 다 궁전 같은 집(= 싱글하우스)에 살 텐데 우리 아파트에 초대하기 좀 창피해. 놀 것도 없고." 지난주에 같은 한인교회 분에게 저녁초대를 받아 갔다가 마당에 미끄럼틀까지 있는 싱글하우스를 보고 단단히 반해서 '왜 우리는 이런 집에서 못 사냐'고 잔뜩 투정을 부린 터였다.



아이의 대답에 괜스레 빈정이 상했다. 야, 너 이 집도 월세가 얼만 줄 알아? 엄마가 차로 한 시간 거리까지 가서 무빙세일 잔뜩 받아서 가구도 다 갖춰놨구만. 딴 집 가봐라, 달랑 10개월 살면서 이렇게 꾸며놓은 집 있나.


내가 입국할 즈음에 선박택배가 막히는 바람에 꼴랑 이민가방 하나와 캐리어 두 개 들고 들어왔는데, 그중 하나를 아이의 장난감으로 꽉 채워왔더랬다. 혹시 친구를 집에 초대해서 놀면 아이가 미국에 금방 적응할까 싶어서, 친구와 함께 가지고 놀 것들을 가져온 것이다. 그런데 집이 싱글하우스가 아닌 게 걸림돌이 될 줄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장난감은 내버려 두고 화장품이나 잘 챙겨 올 걸 그랬어. 강렬한 미국 자외선에 에미 피부는 타들어가고 있는데 말이야.


어쨌든 싫다는데 별 수 없고, 다른 뾰족한 수도 없다. 잠이나 청할 수밖에. 그리고 다음 날 새벽, 알람도 없이 평소보더 일찍 눈이 떠졌다. 삼십 분이 넘도록 '제발 오늘은 날씨가 맑기를, 리세스 시간에 축구를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빌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겨주신 덕분인지 그날은 오랜만에 햇볕이 쨍쨍했고, 아이는 '오늘 축구하다가 연속으로 골을 넣고 반 친구들 모두와 하이파이브를 했다'며 환하게 웃었다. 그 뒤로 맑은 날은 며칠 동안 이어졌고, 아이는 다시는 침울한 표정을 짓지 않았다.


자아, 이제 학교는 해결됐고... 그다음은 방과 후가 문제. 아이는 오후 3시 전에 집에 돌아오는데, 돌아와서는 잘 때까지 하릴없이 방구석에서 뒹굴뒹굴한다. 아직 날이 추운 탓인지 놀이터에는 같이 놀 친구 한 명 보이지 않고, 가지고 온 몇 권 안 되는 책은 다 읽었다. 유튜브나 게임시켜달라고 조르다가 한 번 시작하면 너무 빠져들어서 꼭 잔소리를 들어야 멈춘다. 그렇게 심심하고 시간이 남아돌면 한국에서 가져온 수학문제집이나 풀지 그러냐... 몇 번 말해보았으나 역시 씨알도 안 먹힌다. 에혀... 벌써부터 귀국 이후가 걱정이지만 일단 그건 그때 가서 고민하기로 하자.


아무래도 아이가 방과 후에 할 스포츠 클럽을 좀 알아보아야겠다. 심심한 것도 심심한 거지만, 한국에서 매일같이 각종 운동을 하면서 놀던 혈기왕성한 아들이 집안에만 있으니 남아도는 에너지를 자꾸 나에게 쓰려고 해서 문제다. 에미는 가스 오토페이도 신청해야 하고, 방문대학 교수도 만나야 하고, 하루 세끼 밥도 차려야 하건만, 그렇게 바쁘고 몸 피곤한 나를 붙들고 자꾸 레슬링을 하자고 하질 않나, 최근에는 내가 다니는 길목에 누워서 내가 지나갈 때마다 발목을 잡아채는 트랩 놀이를 혼자 개발해서 놀고 계시니 이대로 가다간 내 몸이 성치 않을 것 같다.


아들놈을 빡세게 굴려서 힘을 빼놓을 무언가가 필요해. 축구, 농구, 야구 등등 되는대로 다 집어넣으리라. 이런 각오로 여기저기 알아봤지만 의외로 스포츠 클럽에 넣기가 쉽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시즌별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그전에 트라이 아웃(try out)이라고 선수선발전도 거치는 등 절차가 꽤 까다로워서 이미 결성된 팀에서는 중간에 받아주지 않는 모양이다.


일단 주말에 하는 YMCA 축구를 하나 신청했지만 평일 프로그램이 절실히 필요한데, 스포츠클럽에 메일을 보내도 답이 없는 게 태반이고, 가끔 오는 답메일에서는 ‘이미 팀구성이 끝났으니 대기자 명단에 올려주겠다’는 말만 있었다. 아아, 전화 한 통과 계좌이체 한 번으로 아무 때나 들어갈 수 있고 집 앞까지 셔틀이 모시러 오는 한국 키즈짐들이 너무 그리웠다.


그러다가 한인교회 인맥을 총동원하여 간신히 등록을 받아주는 농구클럽 하나를 알게 되었다(아마도 팀단위로 뽑는 게 아니라 개인 기술훈련 중심이라 가능한 듯 했다). 바로 입금을 하고, 왕복 한 시간의 라이딩도 기쁘게 감수하며 간 훈련 첫날. 입구에서 유니폼을 받아 들고 들어가니 광활한 농구장이 보인다. 아~ 이 땅 넓은 미국은 역시 애들 농구장 스케일도 다르구나. 서울 학군지 한복판 지하 1층에 있던 닭장 같은 키즈짐들은 어찌나 좁은지 아이가 맘껏 뛰기라도 하면 벽에 부딪힐 것 같았는데. 이런 코트에서라면 농구할 맛 나겠다.



관중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 말고도 아이 라이딩 온 엄마, 아빠들이 주르륵 앉아 있었는데, 노트북을 무릎 위에 얹고 일하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어떤 엄마는 정장 차림에 하이힐을 신은 채였다. 미국 부모나 한국 부모나 다들 애 키우느라 고생이 많네요. 묘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훈련 시작 전 아이들이 한 줄로 섰을 때, 각자의 키와 체격을 눈으로 가늠해 보았다. 스무 명이 넘는 아이들 속에서 동양인은 우리 애 한 명이지만, 대충 봐도 밀리지 않는다. 오히려 큰 편이었다. 키 크라고 매일 고기 먹인 보람이 있구만. ㅋㅋ 하긴 미국인들은 내 예상과 달리 별로 크지 않더라. 덴마크던가 어느 유럽에 갔을 때에는 사람들 다리가 다 내 허리 위에 있어서 깜놀했는데. 미국은 역시 다양한 인종이 섞인 이민자의 나라라 그런가, 아니면 먹는 게 부실해서 그런가. 한 달 넘게 있었지만 미국애들이 샌드위치, 햄버거, 핫도그 말고 뭐 맛있는 거 먹는 걸 본 적이 없다.


훈련이 시작되자 나는 부지런히 아이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았다. 스피드도 빠르고 드리블도 곧잘 한다. 슛은 좀 부족하지만 연습하면 될 것 같은데. 흐뭇한 마음으로 보고 있는데, 내 아이를 주인공으로 짜인 나의 시선 프레임 한쪽 구석에서 자꾸만 눈에 띄는 움직임이 있었다.


바라보니 내 아이 또래, 아니면 그보다 조금 위일 듯한 한 흑인 아이가 선생님과 슛을 연습하고 있었다. 아이는 농구화를 신은 두 발로 코트 바닥을 사뿐히 밟고 뛰어오르면서 농구공을 든 손목에 스냅을 주었고, 그때마다 농구공은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며 철렁! 바스켓 속으로 떨어졌다. 네 번, 다섯 번, 여섯 번... 슛은 계속해서 성공했다. 나는 그 흑인 아이의 실력에 감탄하여 넋을 잃고 쳐다보다가 직감했다. 만약 내 아이와 이 아이가 둘 다 농구선수가 된다면 내 아이는 이 아이를 결코 이길 수 없을 것이다.


흑인 아이가 연속해서 슛을 성공시켰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의 움직임은 특별한 것이 있었다. 발끝에서 손끝으로 이어지는 동작 하나하나가 힘 있으면서 동시에 우아했다. 피부 밑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아마도 근육의 생김마저 달랐으리라. 전체적으로 마른 몸이었지만 손은 컸는데, 그 손으로 농구공을 잡은 모습을 보니 공이 마치 빨려 들어가듯 손에 붙어 있었다. 이것은 연습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선천적인 재능이다. 내 아이가 아무리 연습한다 해도 이 아이를 농구로 이길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안타까웠을까? 아니었다. 오히려 자유해졌다. 나는 새삼 다시 한번 하나의 진리를 깨달았다.


하나님을 우리를 모두 다른 존재로 창조하셨다.


내 아이는 이 아이를 농구로 이길 필요가 없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다른 존재로 창조하셨고, 각자에게 맞는 재능과 소명을 주셨다. 내 아이는 내 아이의 길을, 이 아이는 이 아이의 길을 가면 된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 나는 내가 열심히 공부했기 때문에 명문대를 졸업하고 소위 말하는 전문직을 가지게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삶이 누구에게나 좋은 것이고, 열심히 하면 누구나 이렇게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충분히 똑똑하고 재능이 넘치지만 나와는 전혀 다른 성정을 가진 아이를 키우면서 그저 나는 이런 모습으로, 아이는 저런 모습으로 태어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받은 재능과 소명이 운 좋게 한국에서 선호하는 대학과 직업에 맞아떨어졌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 나의 삶이 누구에게나 좋은 삶도 아니다. 


아직 한 달 정도밖에 있지 않아서 잘은 모르지만, 슬쩍 본 바로는 미국에서의 삶 역시 녹록치 않다. 부모들은 새벽부터 일하고, 오후에는 아이 라이딩 하기 바쁘다. 물가는 비싸고, 고용은 불안하며, 의료는 최악이다. 하지만 적어도 여기에는 한국처럼 '각자의 개성은 무시한 채 모두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 미친 듯이 뛰어가는 삶, 가장 앞줄에 들어야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도태되는 삶, 그 앞줄에 들기 위하여 너무 어린 시절부터 미래를 위해 현재를 유예하는 삶‘은 없는 듯하다. 너는 너의 길을, 나는 나의 길을 가는 것을 서로 존중해 주는 다양성의 문화가 있다.


새삼 한국에서 떠나올 때의 고민이 생각났다. 아이를 작금의 한국 입시 환경에 두는 것이 옳은 일일까 하는 의문. 결국 탈한국이 답일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탈한국을 위해 치르는 비용과 희생, 그 부작용도 만만치 않을뿐더러, 내 아이만 탈출시킨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남은 아이들은 어떻게 하나? 아니 그 이전에 이런 입시환경은 누가 만들었나? 글로벌한 경제와 고용상황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아이의 입시결과를 부모의 트로피로 여기는 문화, 끊임없이 남과 나를 비교하면서 내 자식을 남들보다 우위에 세우고자 하는 문화는 우리가 노력하면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이런저런 상념에 잠겨 있는 동안 수업은 끝났고, 땀을 흠뻑 흘린 아이는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와 “엄마, 나 아까 멀리서 슛 성공시키는 거 봤어?“ 물었다.  그.. 그래? 엄마가 남의 아들 플레이 보느라 우리 아들의 명장면을 놓치고 말았네. 미안… 이런 말은 속으로 삼키면서 ”당근 봤지. 대박!! “하고 엄지를 추켜올렸다. 아이는 만족스러운 듯 씩~ 웃는다. 이로써 오늘도 사이좋은 모자관계 이상 무!




ps. 예전에 쓴 글 중 위 내용과 관련있는 것 링크 겁니다.


https://brunch.co.kr/@mychoi103/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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