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9월에 회사에서 미국 연수대상자로 선정되고 나서 처음에 배정받은 학교는 워싱턴 DC에 있는 곳이었다. 회사가 나를 연수대상자로 선정했다고 해서 미국 대학의 어드미션 절차까지 처리해 주는 것은 아니었기에 나는 그 과정을 모두 알아서 해야 했다. 최대한 빨리 나갈 수 있는 시가가 올해 2월이어서 그때로 지원하는 바람에 회사에서 정한 출국일까지는 6개월도 채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나는 부리나케 배정받은 학교 담당자의 이메일 주소를 알아내어 나를 비지팅 스칼러(visiting scholar)로 받아줄 수 있는지 물어보는 메일을 보냈다. 그와 관련하여 수차례 연락이 오가던 중 담당자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학교 방침이 바뀌어 이번부터는 비지팅 스칼러 지원자도 94점 이상의 토플 성적표를 내야 어드미션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What? 달랑 10개월 미국살이 하자고 토플공부를 하고 싶지는 않아서 토플 성적을 요구하지 않는 학교들을 골라서 지원했고, 그중 한 곳으로 배정받은 것인데?
크게 충격받았지만 일단 마음을 가라앉히고 하나님께 이 문제를 어찌할지 묻는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기도하는 도중 혹시나 내가 남은 몇 달의 기간 동안 집중적으로 토플공부를 하는 것이 하나님 뜻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래 봬도 왕년에 수능영어 고득점자였단 말씀이야. 안 해서 그렇지 일단 하면 그깟 토플점수쯤이야 금방 따지 않겠어?
하지만 토플책을 한 번 펼쳤다가 '아아, 이게 아닌가벼.' 하고 바로 덮었다. 왕년의 수능영어 고득점자였던 나와, 대학 졸업 후 20여 년을 영어와 담쌓고 살아온 나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느껴졌다. 결국 토플 점수가 필요 없는 다른 대학을 알아보기로 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날씨 좋은 서부로 가 볼까나? 저어기 서부 바닷가에 있는 어떤 대학은 비지팅 스칼러한테 한국어 통역도 붙여 준다던데. 회사 인사과에 물어보니 대학을 바꾸는 것도, 서부에 있는 대학을 지원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현재 다른 연수대상자 중 그 대학에서 어드미션 절차가 진행 중인 사람이 있어 그것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하라는 답변을 받았다. 동시에 두 사람이 지원할 경우 먼저 지원한 사람의 어드미션에 불이익을 줄 수 있어서였다.
흐음... 마음 같아서는 느긋하게 기다렸다가 그곳으로 지원하고 싶었지만 이미 워싱턴 DC에 있는 대학과 교섭을 하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바람에 4개월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일단은 어찌 될지 모르니 다른 대학교도 알아봐 놓는 것이 안전했다.
어디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묻는 기도를 계속하면서, 비지팅 스칼러를 뽑는 미국 대학을 구글링 해서 몇 개의 대학들을 추려보았다. 그런데 그중 하나가 묘하게 눈에 들어왔다. 리치몬드 대학. 리치몬드라... 리치몬드는 미국사에서 큰 의미가 있는, 우리나라로 치면 경주 같은 도시였으나 역사문외한인 내가 그 이름을 듣고 떠오르는 것이라고는 한국에 있는 '리치몬드 제과점' 밖에 없었다. 그것도 그 둘이 직접 상관관계가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그 이름에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리치몬드 대학을 포함해서 몇 군데에 '당장 시작하는 봄학기에 비지팅 스칼러를 뽑는지'를 묻는 메일을 보냈다. 메일을 보낸 직후 친한 언니에게 연락이 왔다. 내가 새로운 대학을 물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를 돕기 위해 여기저기 알아보던 중 괜찮은 대학을 추천받았다고 한다. 그 이름은 리치몬드 대학. 이 놀라운 우연이라니.
게다가 그 언니는 내게 '추천자가 말하기를, 리치몬드로 가게 되면 거기 있는 한인교회 분을 소개해 줄 수 있다고 했어'라고 말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미국 연수 기간 동안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학교생활도, 영어도, 골프도 아니라 신앙생활이었다. 한국에서 바쁜 직장생활 때문에 말씀 보고 기도할 시간이 늘 부족하다고 느꼈던지라 미국에 가서는 신앙부터 재정비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러기 위해서 좋은 교회를 만나기를 바랐는데, 갈 지역도 학교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교회 얘기가 먼저 나오다니. 혹시 이곳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아닐까?
그리고 여러 대학에 동시에 보낸 메일 중 가장 먼저 리치몬드에서 대답이 왔다. 그것도 메일 보낸 다음날 바로. 미국의 느린 일처리를 생각하면 기적 같은 일이었다. 여기가 하나님이 예비하신 곳이 맞는가 보다. 그 뒤 절차도 일사천리. 토플 점수 없이 비지팅 담당 교수와의 인터뷰만으로 어드미션이 가능했다.
물론 갑자기 영어실력이 확 늘어날 리 없으니 원어민과의 영어인터뷰도 쉬운 미션은 아니었다. 인터뷰 직전에 유튜브에서 미국 대학 입학 인터뷰 영상들을 찾아서 계속 돌려보고, 예상질문과 답변을 뽑아서 입에 붙도록 계속 연습하고, 원어민과 함께 하는 화상영어도 신청해서 최대한 준비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미진했던지라 인터뷰 때에는 열심히 연습한 답변을 외우듯 말한 뒤 덧붙여서 얘기했다. "제 영어실력이 아직 모자랄 수 있지만, 저는 빨리 배우는 사람입니다. 학기가 시작하기 전까지 열심히 영어공부를 해서 비지팅 과정을 따라가는 데 지장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수잔(원어민 발음으로는 '수전'에 가깝지만 그것은 수도꼭지를 연상케 하므로 그냥 이렇게 쓴다)이라는 이름의 친절하고 다정한 교수님은 기분 좋은 웃음으로 화답했고, 결과는 통과.
아아, 하지만 그 약속은 결국 지키지 못했다. 인터뷰할 때만 해도 열의에 차서 일하고 애보고 남는 시간은 전부 영어공부에 쏟아부을 기세였건만, 애초에 일하고 애 보면 나면 남는 시간이란 거의 없는 데다가, 어드미션 뒤에 이어지는 절차들도 어쩜 그리 지난한지. 비자 받고, 살 집 구하고, 중고차, 아이 학교 입학, 전기, 가스, 인터넷 등등등.... 이 모든 절차들을 일하면서 혼자 처리하느라 막판에는 정말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결국 비행기를 타기 전날 오후까지 일하고, 짐도 대충 싸서 공항으로 가느라 영어공부는 한 자도 하지 못했다. 미안해요, 수잔. 이러려던 건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진짜로 공부할 생각이었다고요.....(먼 산 보기)
리치몬드 대학 내 카페테리아
미국에 도착해서 2주 동안 바쁘게 정착업무를 보고 아이를 학교에 보낸 뒤, 드디어 나도 처음으로 대학교에 가는 날이 되었다. 오늘은 수잔을 만나서 학교생활에 관한 설명을 듣고 필요한 행정절차를 마치기로 했다.
친절한 수잔은 다른 교수들을 소개해 주겠다며 그들과 점심을 같이 먹자고 한다. 히익! 여러 명의 교수들 사이에 둘러싸여 나에게 주어지는 질문 공세에 "이.. 익스큐즈 미... 파든? 아임 쏘리, 아임 낫 굿 앳 잉글리쉬."라고 대답하고, 다른 교수들이 '얘는 영어도 못 하면서 미국 대학에 왜 왔어?'라고 놀란 뒤 어색한 침묵이 흐를 것을 상상하니 정신이 혼미하다. 정중하게 살짝 돌려 말하며 '조금 부담스럽다'는 뜻을 전했더니, 그럼 단둘이 밥을 먹자고 했다. 그것까지는 사양하기 어려워서 알겠다고 했다.
첫 등교일. 내가 다닐 대학 건물 현관 앞에서 오전 10시에 수잔과 만나기로 했다. 9시 50분에 인근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나서 떨리는 마음으로 약속장소로 향했다. 아아 어쩌지... 뭔 소린지 하나도 못 알아들을 텐데. 미국에 도착한 뒤 마트에서, DMV(Department of Motor Vehicles)에서, SSA(Social Security Administration)에서, 뭐 하나 시원하게 알아들은 적이 없다. 미국 사람들은 왜 이렇게 말이 빠르고 발음이 굴러가는지...
저 멀리서 살짝 은색이 섞인 금발머리 여자가 나를 보고 웃으며 다가왔다. 수잔이다. 이크, 얼른 준비한 첫인사를 건네자. 그다음은... 에라, 모르겠다. 대충 yes, no로 찍다 보면 내가 영어 못하는 거 눈치채고 집에 보내주겠지.
"I'm so happy to meet you in person. (직접 만나서 너무 기뻐요)"
수없이 연습했던 첫인사를 마쳤다. 거기에 수잔이 뭐라고 대답하기 시작했는데... 어라? 좀 들린다?? 수잔은 나를 향해 미소 지으며 한 문장씩 또박또박 천천히 말했다. 수잔이 하는 말이 내 귀에 들어와 머릿속에서 해석되는 것을 잠깐 듣고 있다가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영어와 원어민 영어는 전혀 다르다. 수잔은 지금 내가 외국인이고 영어를 잘 못하는 것을 전제로, 외국인을 위한 영어를 구사하고 있다. 그래서 들을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영어와 담쌓고 산 지 오래라지만, 한국에서 치열한 학창 시절을 보내며 수많은 듣기 평가시험을 통과한 사람인데, 어째 본토에 와서는 안 들려도 너무 안 들린다 했다. 내가 그동안 한국에서 공부하며 들었던 수많은 영어들은 외국인을 위한 영어였던 것이다.
수잔의 말이 들리기 시작하자 나는 약간의 자신감을 되찾았다. 그러면서 마음속에서 한 가지 열망이 조금씩 샘솟기 시작했다. 아아, 나도 외국인과 영어로 대화해 보고 싶다. yes, no를 넘어서는 말을 해보고 싶다. 내 인생 첫 미드 '하바드 대학의 공부벌레들'처럼(크아, 연식 나온다! ㅋ) 나도 미국 대학에서 미국 교수와 영어로 토론해 보고 싶다.
샘솟는 열망이 내 무의식을 건드렸나 보다. 그 순간 뇌 속에서 잠자던 to 부정사와 have p.p 등이 깨어나 꿈틀대기 시작했다. 먼 옛날 성문종합영어와 맨투맨에서나 보던 것들인데... 아직 내 안에서 살고 있었구나, 짜식들. 반갑다.
나는 조금씩 문장을 만들어 수잔과 대화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대화라는 게 이런 수준이었지만...
수잔 : I have a daughter. She lives in Philadelphia and.... @$#%$&^& (저는 딸이 하나 있는데 필라델피아에 살고 있어요. 그 애는 @#$%를 전공하고, !#%$%@#가 되고 싶어 하는데...)
나 : Oh, you have a daughter? (오우, 당신은 딸이 있습니까?)
수잔 : These books are...&^%*%&$# (이 책들은 당신의 연구에 도움이 될 거예요. 그 분야에서는 바이블이라고 할 만합니다. 각종 케이스들이 담겨 있고...)
나 : I love them, because they are thin. (저는 그들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얇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나는 부끄러움 없이 계속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야 한국에서 보기 드문 외향성을 지닌 대문자 E인 것이다. 예전에 MBTI 검사를 받았던 심리상담소의 선생님도 한국인 중에 이 정도 외향인은 없다고 깜짝 놀라셨지. 낯선 사람, 그것도 외국인과 만나서 소통할 기회를 부끄러움 따위로 날려버릴 수 없다.
내가 적극적으로 대화에 나서자 수잔은 내 전공분야와 관련된 교수님을 소개해 주겠다고 만나러 가자고 했다. 이런 대화 수준으로 될 일인가 싶었지만 또 에라, 모르겠다. 그냥 부딪혀보는 거지 뭐.
인자하게 생기신 교수님은 자신의 방에서 잠깐의 티타임을 제안하셨고 나는 수잔과 함께 교수님 방에 있는 둥근 탁자에둘러앉았다. 이 교수님도 수잔만큼은 아니지만 발음이 명료하고 천천히 말하신다. 다행이다.
자기소개가 끝나고 교수님은 미국에 와서 가장 인상적인 것이 무엇인지 물으셨다. 나는 코스트코, 월마트, 트레이더 조, 홀푸드 등 각종 그로서리들이 지천에 널려 있는 것을 꼽았다. 미국 식당 음식은 영 별로지만, 미국 식재료의 그 다양성과 풍부함은 진정 넘사벽이다.
그다음 교수님은 미국에 와서 어디 어디 가 보았냐고 물으셨다. 이제 겨우 2주 됐는데 가긴 어딜 가... 나는 다시 한번 말할 수밖에 없었다. 코스트코, 월마트, 트레이더 조, 홀푸드... 교수님은 빵 터지셨다. ㅋㅋ
이런 식의 대화를 이어가면서 티타임을 보내고, 수잔과 교정을 산책하고 밥도 먹은 뒤, '아아, 이제는 한계다'라고 느낄 무렵 시계를 보니 오후 1시였다. 히익! 나 지금 외국인이랑 3시간을 대화한 거야?
또 한 가지를 깨달았다. 내 영어능력에 상관없이, 나와 소통하고자 하는 사람은 얼마든 할 수 있다. 또박또박 쉬운 영어로 말하고, 내 말에 천천히 귀 기울이며, 못 알아들으면 다시 한 번 물으면 되는 것이다. 소통은 언어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