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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이 Dec 31. 2020

아티스트 웨이




나는 '예술가'라는 사람들에 대한 거부감이 심했다. 그들은 현실에 발을 붙이지 못하고 정령처럼 유리하는 족속 같아서 항상 연약하고 위험해 보였다. 대화도 잘 통하지 않았다.


그들을 피한 가장 큰 이유는 공연히 옆에 있다가 그들이 팽개쳐 놓은 현실적인 문제들을 결국 내가 떠맡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마치 일평생 고흐를 후원한 동생 테오처럼.


그런데 얼마 전 '나를 사랑하는 여행'을 간 바닷가에서 어머니의 자궁을 느끼고 오니, 내게도 뭔가 예술적인 영감 같은 것이 있는 걸까 싶다. 그리고 많은 저서를 통해 '삶의 본질은 나 자신'이라는 가르침을 남기신 고 구본형 님의 연구소 프로그램을 살펴보니 '아티스트 웨이' 코스가 있더라.


그것은 꼭 예술가를 지향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내 삶을 대면하고, 진짜 나를 깨우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아티스트라는 뜻 아니겠어?


나는 늘 심미안이 없다고 생각했다. 중학교 때, 나는 시험을 보면 전교 1등이었지만, 미술실기 점수를 합산하면 늘 전교 4, 5등으로 밀려나곤 했다.


반에서 전교 1등이 나오길 바랬던 욕심 많은 담임 선생님이 미술 선생님한테 가서 따지자, 미술 선생님이 한숨을 쉬면서 "걔 그림 좀 봐. 중1 짜리가 초5 수준이야."라고 대답했다더라. 담임 선생님은 우리 엄마한테 전화해서 초등학교 때 미술학원도 한 번 안 보내고 뭐했냐고 한소리 했고, 엄마는 그걸 또 고스란히 내게 전했네.


엄마는 내가 그 말을 들으면 '노오력'이란 걸 할 거라고, 노력해서 그림을 더 잘 그리게 될 거라고 생각했나 보다. 나는 오히려 위축되었는데. 그때부터 나는 스스로가 '예술적 재능이 없는 사람, 아름다움을 탐할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느껴졌다.


그런데 요새 와서 내가 꽤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일단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그릇. 그중에서도 예쁜 찻잔. 이번에 간 '나를 사랑하는 여행'은 찻잔 하나 챙겨 온 것만으로 여행의 질이 훌쩍 높아졌다.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어. 이럴 줄 알았으면 그 많은 시간 동안 카페 투어 다닌다고 돈 쓰지 말고 그걸 모아서 찻잔이나 살걸.


그리고 나는 눈이 시원해지는 자연의 풍경을 사랑한다. 물론 이걸 안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보냐만, 사람들과 어딘가에 갈 때 유독 경치, 풍광, 전망에 집착하는 나를 본다. 사냥감을 노리는 매처럼 두 눈을 부릅뜨며 풍경이 가장 예쁘게 보이는 자리를 찾아 앉고, 그다음 편안한 마음으로 그것을 감상한다. 남들보다 내가 더 특별히 좋아하는 것은 틀림없어.


그리고 옷차림에 관하여. 나는 쇼핑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실용성을 매우 따지는 편이라 옷에 대한 관심은 그닥 많지 않았다. 스스로 '남자로 태어났으면 스티브 잡스처럼 매일 똑같은 옷만 입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인에게 '내게 심미안이 없다'라고 말하자 그분이 "볼 때마다 예쁘게 차려입고 있던데요?"라고 말씀하셔서 놀랐다. 제가요?


"남편과 엄마가 사준 옷이에요. 제가 쇼핑을 자주 하지 않기 때문에 남편이나 엄마가 억지로 쇼핑을 끌고 가거나 뭔가를 사다 주는 일이 종종 있거든요."라고 말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엄마는 몰라도) 남편이 자기 취향대로 내게 사준 옷은 대부분 잘 입지 않더라.


올여름에 내가 주로 입고 다녔던, 허리를 졸라매는 진초록색 원피스도, 인사동에서 한눈에 반해서 산 하늘하늘한 에스닉풍 스커트도, 소매가 둥그렇게 부푼 검은색 레이스 니트와 베이지색 마바지도 모두 내가 고른 것이었다. 언제 이렇게 다양한 옷들을 가지게 되었지? 예전에는 늘 옷 하나 사서 낡아빠질 때까지 입다가 버리고 비슷한 종류의 새 옷을 사곤 했는데.


아, 그렇구나. 학생 때에는 돈이 없어서, 기껏 샀는데 안 어울리면 낭패이니까 늘 입던 스타일의 옷만 고집했었구나. 내게 선택의 자유를 허락하지 않았구나. 나 자신이 예쁘지 않다고 생각해서, 늘 단점을 가리기에만 급급했구나.


그렇다면 나를 제한하지 말자. '나는 패션에, 쇼핑에 관심이 없다'라고 못 박지 말자. 이것 또한 나를 표현하는 훌륭한 수단이 될 수도 있으니.


불현듯 깨닫는다. 나는 예술가를 싫어한 것이 아니라 질투하고 있었음을. 현실에 매이지 않고 마음껏 '나다움'을 풀어놓는 그 자유를 부러워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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