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도 모르고 닥치는 대로 치열하게 살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만나던 한 아이가 물었다. 정은, 넌 뭘 위해서 그렇게 바쁘게 사는 거야?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질문이었다.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어서 그냥 더 많은 돈과 명예와 힘을 원한다고 말했다. 늘 무던하던 그 아이는 웬일인지 조금 감정이 실린 목소리로 그게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냐고 물었다.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어서 그저 더 많은 돈과 명예와 힘을 원한다고 말했다. 대답을 하자마자 내 얕음에 스스로가 너무 부끄러웠는데 정말 그것밖에 할 말이 없었다. 종잇장같은 생각과 믿음을 들키고 싶지 않아 괜히 더 힘을 주어 말했다. 누가 그걸 원하지 않겠어? 사회적인 성공은 멋진 거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원하고 그러니 나는 바라는 게 당연한 거고 그래야만 이 치열한 바닥에서 생존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말이다. 그 시절의 나는 그것만 붙잡고 버티고 있었기 때문에 그 믿음이 무너지면 안됐다. 나의 대답을 들은 그는 말이 없었다. 그는 잠시 버석이는 미소를 짓더니 고개를 돌렸다.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늘 무던하던 그의 눈에 무언가를 진실로 갈망하는 사람이 스쳐 지나갔다. 자기도 모르는 무언가를 찾아 오랜 시간 헤매고 있는 사람의 눈빛이었다. 헤어지기 직전에서야 우리는 서로를 바라볼 수 있었다. 그의 눈에 껍데기 같은 내가 비쳤다. 서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손을 흔들고 헤어졌다. 스물다섯 겨울이었다.
계절이 몇 번 돌고 그 시절의 내가 겹쳐 보이던 한 아이를 만나던 때였다. 어느 날 문득 궁금해져서 그에게 물었다. 넌 무얼 위해서 그렇게 바쁘게 사는 거냐고. 그 아이는 한때의 나처럼 더 많은 돈과 명예와 힘을 원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게 그에게 어떤 의미가 있냐고 물었다. 그는 뭘 그런 걸 묻느냐는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더 많은 돈과 명예와 힘을 원하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 당연한 거 아니겠어? 내 종교는 자본주의야. 그의 대답을 들은 순간 마음에 스르르 힘이 빠지더니 모든 게 연기처럼 흩날렸다. 번뜩 과거 나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던 한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너 이런 기분이었구나. 그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그가 나를 바라보는 게 느껴졌지만 마주 볼 자신이 없었다. 헤어지기 직전에서야 그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의 눈빛은 아주 단단한 방패로 둘러싸여 있었다. 우리는 건조한 눈빛으로 짧은 포옹을 하고 헤어졌다. 스물아홉 여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