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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을 가꾸는 건축가 Dec 21. 2021

아랫동네, 중간 동네, 윗동네

권여선의 ‘토우의 집’

권여선의 ‘토우의 집’

    

소설 속에서 삼악산, 삼벌레 고개의 묘사가 자세하고 마치 60년대 서울의 산동네 같은 모습이라 과거 서울의 현실의 모습으로 생각했으나, 지명은 실존하지 않았다.

그러나, 60-70년대 서울 산동네의 전형적인 모습인 아랫동네, 중간 동네, 윗동네의 서열에 따라서 산등성이에 모여 살고 있는 모습이 현재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 돈이 없는 이들이 주인 없는 땅인 산등성이 맨 위의 윗동네에 사는 것은 돈의 논리로 보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의 아파트는 1층이 가장 저렴하고, 최상층 펜트하우스가 가장 비싸니 완전하게 역전된 것이다.    

 

산꼭대기에 바위 세 덩어리가 솟아 있어 삼악산이었다. 삼악동은 삼악산 남쪽 면을 복개해 산복도로로 만들면서 생겨난 동네였다. 시내로 통하는 너른 개천을 낀 도로에서부터 개발이 시작되었다. 줄을 친 듯 가로로 홈이 파인 시멘트 도로가 완만한 경사를 타고 오르다 삼악산 꼭대기의 바위셋을 만나 서야 끝이 났다. <9쪽>


삼벌레 고개에서도 등급과 등고선의 높이는 반비례했다. 아랫동네에는 크고 버젓한 주택들이 들어섰다. 아랫동네 주민은 대부분 자기 소유의 집에 살았고 세도 안 놓았다. 중턱부터는 주택의 소유자와 거주자의 관계가 복잡해졌다. 제집 사는 사람, 전세 사는 사람, 월세 사는 사람이 섞여 있었다.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윗동네는 집값이 쌌지만 제집 사는 사람은 드물었다. <11쪽>     


산등성이를 삼등분한 위치에 따라서 자가, 전세, 월세, 마지막 세도 못 내는 사람들까지 사는 것이 우리네 현실의 모습처럼 금수저 계급론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랫동네 사는 사람은 마당이 있는 집에 자동차가 있고, 정원사, 운전기사, 식모, 보모까지 있는 빈부격차가 너무 심한 딴 세상을 살고 있었고, 윗동네는 이런 집에 가서 식모살이, 운전기사, 보모를 나가는 곳이었다. 게다가 “팔다리 개수도 아랫동네 사람보다 적었다.”에서 너무나 슬픈, 등고선에 따라서 나뉜 세상의 경계가 확연히 느껴진다.     


삼벌레 고개에서 행해지는 모험의 등급도 고갯길의 등고선에 따라서 나뉘었다. 아랫동네 소년들은 집 밖으로 잘 나오지 않았고 부모 몰래 불량 냉차를 사 먹는 것만으로도 간담이 서늘해지는 축이었다. 반대로 윗동네 소년들은 극히 볼온하고 위험해, 모험이라기보다 범죄에 가까운 짓거리에 물들어 있었다. <13쪽>


윗동네에는 부족한 게 많았는데, 부족한 와중에도 사람들은 쉬지 않고 이불이며 냄비며 놋그릇이며 전당포에 잡혀먹었다. 윗동네 사람들은 하다못해 치아나 팔다리의 개수도 아랫동네 사람들보다 적었다. <14쪽>


넓이의 모험은 중턱 소년들이 삼벌레 고개 꼭대기 바위에 올라가 기른 호연지기를 아랫동네에 내려와 한껏 과시하는 축제적 성격을 띠었다. 평평하고 넓은 복개도로와 고개 초입의 경사면이 만나는 지점 맞은편에는 아랫동네를 휘감고 흐르는 개천이 있었다. 넓이의 모험은 그 개천을 건너뛰는 모험이었다. <198쪽>     


소설 속의 중심이 되는 산등성이 중간 동네에서 윗동네 경계쯤에 있는 우물집에는 안채와 행랑채까지 네 가구에 무려 13명이 살았다고 하는 매우 밀도 높은 곳이었다. 안채 5명, 하꼬방에 청년 1명, 바깥채 새댁네 4명, 바깥채 심여인네 3명, 이렇게 13명이 살고 있는 집이다.     

우물집엔 무려 네가구가 살았는데 크든 작든 머릿수만 헤아리면 도합 열세식구나 되었다. <12쪽> 


원래 바깥채는 독채로 전세를 주어야 마땅할 구조인데 돈이 없는 새댁네 네 식구와 골골 앓는 옆방 여자네 세 식구가 각기 한방씩 세들어 조용조용 각불 때며 잠긴 미닫이문을 통해 들려오는 서로의 소리를 못 들은 체 살고 있었다. <34쪽>     


바깥채의 하나로 써야 할 공간을 나누어 쓰는 3 식구, 4 식구인 새댁네와 심여인네의 ‘잠김 미닫이문’의 실체가 이들의 삶의 모든 것을 대표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매우 높은 밀도에서 서로의 프라이버시가 지켜지지 않는 상황이었다.

화장실은 재래식을 같이 쓸 것이고, 부엌은 없어서 주인네와 같이 쓰거나, 마당 수돗가에서 설것이를 하는 매우 밀도 높은 우물집에 묘사되어 있다. 모두가 모이는 마당은 모두의 공간이다. 마당을 공유해서 가족의 방이 하나더라도 삶은 현재의 원룸, 고시원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든다.     


우물집에서 두 집 건너 사는 사우디집은 남편을 모래바람부는 사막 한가운데 보내놓고 졸지에 팔자가 늘어진 여인이었다. <48쪽>


우물집 대문이 활짝 열리고 굿판이 벌어졌다. 굿 상위엔 알록달록한 종이 장식과 촛대와 과일과 떡이 놓였고, 좁은 마당엔 통장집을 제외한 계원들이 쭉 둘러섰다.  <209쪽>    

 

“토우가 되어 묻히고, 토우의 집은 캄캄한 무덤” 이지만, 어느 곳보다도 웅장하고 수려한 삼악산의 단풍이 이들의 삶과 함께하고 있었다. 내가 아주 어릴 때 살던 집과 같은 다른 가족들이 모여 함께 살았던 우물집을 보면서 어렷풋이 그때가 생각났다. 그러나 “토우가 사람 집에 들어가” 사는 것만큼은 아니었으나, 우리 부모세대의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    

 

가을이 깊어가면서 삼벌레고개에도 단풍이 한창이었다. 마당이 넓은 아랫동네 주민들은 단풍을 자랑하기 위해 서로의 정원을 제한적으로 개방하기도 했다. 윗동네로 갈수록 수목을 키울 공간이 없어 판잣집 주변에서는 단풍을 보기 어려웠지만, 판잣집들 너머 택지로 개발 안된 삼악산 수목 단풍은 아랫동네 정원의 예쁘장한 단풍들과는 비교할 수 없이 웅장하고 수려했다. <2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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