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선정되었다. 공공건축가에게 주어진 업무는 공공건축물을 건립할 때 건축 자문을 하거나, 서울시내 공공건축물 설계시 설계권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설계권을 주는 것은 수의계약 범위이거나, 공공건축가 지명설계공모를 통해서 당선자에게 설계권을 주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공공건축가에 선정되고, 송파구에 경로당 건립을 위한 자문을 한번 하였고, 여러 차례 공공건축물 설계권을 받기 위한 지명절차에 지원하였다. 지명설계공모에 참여할 의사가 있는 사람은 참여의사를 밝힌 내용의 지원서를 써내면 지명선정위원회에서 지명을 하는 방식이다. 지명선정위원회는 정확하게 어떤 위원들로 구성되어 있는지 공개되어 있지 않지만, 중진 공공건축가로 이루어져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어떤 사유로 지명을 하는지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알려진 것은 없지만, 모든 공공건축가에게 1번 이상의 기회를 공정하게 배분한다는 원칙 정도가 있다고 한다.
설계공모 지명
‘대방동 지하벙커 청소년 창의혁신 체험공간 설계공모’ 지원에 대한 메일을 받고 지원서 1장을 작성하여 제출하였다. 어떤 절차로 선정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서울시 공공건축가 명단 안에서 지명을 통해서 현상공모를 하는 8명의 건축가로 지명되었다. 서울시 공공건축가 6명과 공모를 주최하는 서울시 동작구에서 지명한 동작구에 사무실이 있는 2명의 건축가들이 설계공모를 시작하였다.
서울시 공공건축가 명단 안에서 지명을 받아서 설계공모를 하는 것은 이전부터 공정성에 논란이 많았다. 나는 금년에 공공건축가가 되고 처음 설계공모에 지명을 받은 것이었다. 이전의 논란들은 공공건축가 지명 현상공모가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 폐쇄적이라는 것을 공격받았고, 그들 안에서 서로 당선을 주고받는다는 밝혀지지 않은 ‘뒷거래’가 공격을 받았다. 폐쇄적이라는 것에는 동의하고 폐쇄적이기 때문에 공정하지 않다는 의혹은 당연히 있을 수 있다. 2019년 전국적으로 공공건축가 시스템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풀어야 할 숙제이다.
이번에 지명받은 설계공모 지명은 ‘대방동 지하벙커 청소년 창의혁신 체험공간 설계공모’였다. 동작구 대방동에 위치한 오래된 군사용 벙커가 있는데, 이것을 리모델링하여 청소년시설로 변경하는 것이다. 설계비는 2억, 공사비는 평당 800만원으로 책정되었다. 현장설명회가 개최되고, 현장을 방문하여 설명을 들으니, 2억의 설계비로 가능한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일반적이지 않은 벙커라는 오래된 시설을 리모델링하는 것으로 사례가 거의 없기 때문에, 평당 800만원이라는 공사비의 적정함이 옳은지 확인하기 어렵다. 평당 800만원은 공공건축물의 일반적인 신축공사비이다. 리모델링 공사비는 신축과 유사하다는 것일 일반적이지만, 이 시설은 벙커라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달랐다. 또한 설계용역단가는 공사비의 일정비율안에서 책정되었지만, 내부 인테리어 설계비와 지질조사비용, 리모델링 구조비용 등 일반적인 설계업무에 비하여 추가 업무가 포함되어 있어, 더욱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설계공모가 공공건축가 안에서 지명하지 않고, 조달청이나 완전하게 시장에 풀렸다면 누가 현상에 참여할까 하는 궁금증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궁금증은 설계비가 문제가 있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현장설명회 이후 참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다. 그러나 공공건축가를 지명하여 진행하는 설계공모가 논란이 많고, 폐쇄적이라고 공격을 받는 상황에서 지명을 받았는데, 설계안을 제출하지 않는 것은 공공건축가의 취지에 어긋나는 것이기 때문에 제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반설계공모였다면 제출하지 않았을 것인데, 공공건축가 지명설계공모의 취지상 제출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서 제출했다. 내가 만약에 제출하지 않는다면, 또 다른 누군가의 기회를 뺏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공모 제출 결과는 동작구에서 지명 받은 한명의 건축가만 제출하지 않았고, 나머지 7명은 모두 제출했다.
공개심사
이번 설계공모 심사는 공개심사였다. 서울시에서 진행하는 공공건축물 발주제도인 “프로젝트서울-project.seoul.go.kr”에서 진행되었고, 이번 설계공모는 공개심사로 진행되었다. 최근의 설계공모는 대부분 공개심사로 진행되는 추세이다. 그런데, 이번 심사는 한 단계 더 나아가 페이스북에서만 생중계를 하는 것이 아니고, 유튜브까지 같이 하였고, 여러 장비가 추가되어 유튜브에서도 발표 화면과 PPT자료화면을 동시에 보여주는 편집된 화면을 내보내고, 마이크 장비도 개선되어 이전의 어떤 공개심사 보다도 더 투명하고 내용을 잘 전달할 수 있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심사 당일 돈의문 박물관마을 안내센터에 오전 9시 30분에 참여해달라는 문자를 받았다. 9시 30분에 도착하여 주최 측에서 참여 명단을 확인하고, 제비뽑기를 통해서 발표순서를 정하고 10시부터 발표가 시작되었다. 발표자가 스크린 앞에서 발표를 하고 그 앞에 심사위원 5명이 앉아 있고, 그 뒤에 발표자들과 일반 참관하는 사람들이 앉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그 날은 발표하는 건축사사무소들과 서울시의 공개심사 과정을 참관하러 온 타 시도의 공무원분들도 참여하였다.
심사위원장의 간단한 개최사와 심사절차를 설명하고 바로 발표가 진행되었다. 발표는 10분 동안 계획안을 발표하고 5분 질의응답이었다. 7개의 사무소가 모두 추첨 순서대로 발표와 질의응답을 진행했다. 시간을 지키는 것은 철저했다. 발표는 절대 10분을 넘지 못했고, 질의까지 15분을 넘지 못했다. 발표가 10분이 안 되는 팀은 질의응답에 시간적 여유를 조금 더 주었다. 7개 팀이나 되었으니, 전체 발표가 끝나는데 약 2시간가량 걸렸다.
이번 설계공모는 제출물이 매우 간소했다. 약 A1 크기의 디지털 패널 파일과 패널에 쓴 내용을 편집한 발표자료 PPT가 전부였고, 모형과 인쇄 제출물 또한 없었다. 패널에 삽입된 CG도 스케치업 모델링 수준으로 ‘렌더링 이미지’가 불가능하여 제출물 작업에 추가적인 에너지를 쓰지 않아서 계획안의 완성도에 집중할 수 있었다. 발표 시에는 심사장 옆 TV에 패널을 띄어놓고, 발표자는 PPT 파일을 넘기면서 계획안을 순서대로 설명하였다.
모든 발표가 끝나고, 1시부터 공개심사와 토론이 있을 예정과 모든 사람들이 참관할 수 있다고 안내받았다. 우리는 점심식사 후에 그곳에 가서 참관하였다. 3팀 정도가 참관하고 있는 것 같았고, 나머지 참가팀들은 다른 일정 때문인지 자리에 없었다.
6명의 심사위원이 참여했다. 심사위원장 1명, 5명의 심사위원, 그중에 1명은 예비였기 때문에 투표권은 주어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7개의 계획안에 대해서 6명의 심사위원이 돌아가면서 각자 의견을 순서대로 말하였다. 장점과 단점을 모두 잘 분석하여 말해주었다. 심사위원들이 공통적으로 말한 의견도 있었고, 서로 대립되는 의견들도 오고 갔다.
7개의 작품에 대해서 6명이 한 번씩 말을 했으니, 42번의 멘트가 오고 갔다. 모든 심사위원이 의견을 말한 이후에 7개 작품 중에서 7등부터 뽑기 시작했다. 5명의 심사위원이 7등으로 생각하는 제출작의 번호를 적어내면 다수로 뽑힌 작품이 7등이 선정되었다. 다음은 6등을 선정하는 투표였다. 6등 투표는 동시에 2팀이 선정되어서, 다시 투표를 진행했다. 6등을 선정하고, 다시 투표를 통해서 5등, 4등까지 선정했다. 3개 작품에 대한 심사를 하기 전에 심사위원장은 혹시 4~7등작 중에서 올리고 싶은 작품이 있는지 재점검했다. 그러나, 아무도 이견을 제기하지 않았다.
3개의 작품이 남은 시점에는 다시 6명의 심사위원이 3개의 작품에 대해서 모두 다시 의견을 내었다. 다시 3등을 뽑는 투표를 진행했다. 2개 작품이 남고 다시 6명의 심사위원이 2개의 작품에 대해서 의견을 냈다. 2개 작품을 두고 심사위원들은 많은 토론을 진행하였다.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 모습이 진지하게 작품을 뽑고자 하는 의도를 엿볼 수 있었다. 한참의 토론 끝에 이번에는 당선작을 뽑는 투표를 했다. 투표권을 가진 5명이 투표를 하여 3표를 받은 작품이 당선 안이 되었다. 나머지 하나는 자연스럽게 2등 작으로 선정되었다. 심사의 과정은 매우 진지하고 철두철미하게 진행되었다. 심사위원 각자가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개진하는 과정 속에서 심사위원은 더 훌륭한 계획안을 뽑을 수 있는 판단을 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공개심사의 아쉬운 점
심사는 매우 공정하게 진행되었지만,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첫째는 개별 작품 발표 이후에 질의응답이 있어 서로 의견을 나눌 수 있었다. 그러나 제출한 모든 건축가들과 심사위원이 모두 둘러앉아서 서로의 계획안에 대해서 냉철하게 이야기하는 토론의 장이 없었다는 점이 아쉬웠다. 서로를 공격한다기보다는 서로 의견을 나누는 과정 속에서 본인들의 계획안의 장단점을 공유하고 토론함으로 해서 차후에 있을 설계공모나 건축계획시에 서로 지식을 공유해서 발전적인 방향으로 갈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보았다. 설계공모안의 정답은 있을 수 없고, 제일 좋은 것 또한 있기 어렵다. 모든 안이 장점과 단점이 있다. 서로 토론을 통해서 문제를 발견하고, 토론하면 그 과정을 통해서 선정된 건축사도 더 좋은 계획안을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둘째는 마이크 문제다. 심사위원 또는 발표자가 마이크 사용이 서투르거나, 마이크 상태가 좋지 않아, 생중계로 방송되는 과정에서 목소리가 전달되지 않는 일이 자주 있었다. 개선해야할 점이다. 공개심사를 중계하는 것이 이제 첫발을 내딛고 있는 상황이니 점차 나아질 것으로 본다.
공정하고 발전적인 방향
‘프로젝트 서울’의 공개심사는 건축계의 발전에 매우 필요하다. 이제까지 현상은 제출하고 떨어지면 나의 계획안에 대한 의견을 듣기 힘들다. 어떤 점이 좋았는지, 문제가 있었는지를 피드백을 받아야 다음에 설계할 때 반영할 수 있어 서로 더욱 발전적인 방향으로 갈 수 있다. 이러한 공개심사는 나의 계획안에 대한 냉철한 의견들은 바로 현장에서 모두 들을 수 있고, 생중계를 하고 영상자료가 인터넷에서 이후에도 계속 볼 수 있으니, 공정하고 서로에게 발전적인 방향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