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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을 가꾸는 건축가 Jul 14. 2021

건축사사무소 3년 차

2020.1, 나의 도면을 그리다.

인구구조의 노령화

프랑스 파리로 가는 비행기 안에 있다. 지금 프랑스는 연금개혁을 반대하는 시위가 한참 지속되고 있다. 12월 초부터 시작된 파업은 크리스마스를 끝으로 끝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연말을 넘길 기세다. 연금개혁의 골자는 62세까지 일하고 연금 받는 것을 64세까지 연장한다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은 전세계적으로 거의 동일한 인구구조를 가지게 했다.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들은 모두 세계대전 이후에 태어난 세대가 이제 막 일자리에서 물러나는 시기에 도래하고 있고, 그것과 동시에 연금의 문제가 동시에 발생되고 있다. 그들은 그것을 막기 위해서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이민자들을 공급받으면서 문제를 막고 버텨왔다.

우리나라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다만 2차 세계대전보다 이후에 일어난 6.25 전쟁이 베이비붐 세대를 만들었다. 88 올림픽에서 시작된 경제 호황이 97년 IMF로 끝나고 잠시 호황이었다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꺾어진 후 몇 년 전 다시 두 번째 호황을 지나면서 대부분의 기업들의 인구구조를 완벽한 피라미드 구조를 가지게 되었다. 이제까지 잘 이루어지던 승진도 없어지고, 경제가 좋지 않으니, 신입사원도 잘 뽑지 않는 악순환 속에서 기업들은 고민이 많아졌다. 대부분의 기업들의 연령 및 직급의 구조를 완전한 역 피라미스를 만들고 있다.      

파리에서 ⓒ권이철

         

눈앞이 깜깜하다.

2017년 초반에 내가 다니던 회사의 오너와의 대화시간이 있었다. 회사의 중간 직책들 10여 명을 모아놓고 하는 대화의 자리였다. 당시 나는 회사의 인사적채와 구조에 상당히 불만을 가지고 있던 중이었고 점점 밑에 직원에서 중간관리자로 넘어가는 시기였기 때문에 구조적인 해결을 고민하던 중이었다. 나는 그 대화 자리에서 “눈앞이 깜깜하다.”라고 이야기했다. 지금 생각하면 맞는 말일 수도 있으나, 오너에게 할 말은 아닌 것 같았다. 당시는 그 회사가 나의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15년 동안 있던 회사에서 벗어나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고 그곳에서 계속 있어야 했다고 생각했기에 앞으로 나아가야 했지만, 장애물이 많아 “깜깜하다”라고 표현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해 가을에 회사를 나왔다. 15년이면 상당히 오랜 시간 그곳에 머물렀던 것이다. 나름 그곳에서 젖어들지 않기 위해서 본부도 옮기고 다양하게 해 본다고 해봤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그냥 우물 속, 비닐하우스 속일 뿐 더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얼마 전에 해안에서 나온 사람들의 모임에서 타 회사의 임원급으로 가 있는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수주하기 위해서 얼마나 피 말리는 줄 알아? 너희들이 임원의 고통을 아나?”라고 했다. 그러나 그 친구는 그냥 직원일 뿐이다. 나는 오너의 마음을 아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대형회사의 가장 큰 단점은 대형회사에 직원으로 있으면, 그 회사가 마치 세상의 전부인 것 같은 착각을 하여 우물 속으로 점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2018년 인구구조 출처/통계청

사업을 하다.

사실 오너라고 하기는 좀 부끄러운 면이 있다. 다른 친구들이 “사업은 잘되는가?”라고 물어보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사업을 한다기보다는 그냥 개인이 프로젝트를 하나씩 해나가는 것이다”라고 한다. 그래도 이제 만 2년 되었다. 그러나 먹고살기 위해서 매일매일 무엇인가를 조금씩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은 사업의 경영개념이 매우 적기 때문이다. 매달 매년 수익을 정확히 계산하지 않고, 인원 투입 대비 수익률에 대해서 아직 크게 생각하고 있지 않고 있다. 그것은 회사가 2명으로 이루어져 있고, 프로젝트 수도 작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회사를 나오고 이제 만 2년이 지났다. 2년 동안 무엇을 향해 달리고 있냐고 물어보면 방향성은 있는 것 같지만, 정확히 무엇이라고 말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무언가 조금씩 하고 있고 매일매일 어떤 일에 도전하고 새로운 일을 만들고, 들어온 제안을 할지 말지 계속 고민하고, 새로 만난 발주처를 대응하고, 이제까지와는 다른 인력의 풀을 구성하고 있다.

회사의 방향성을 세운 것은 2017년 말에 회사를 나오고 홈페이지를 만들 때였다. 그때 회사의 전략을 세운 것이다. 건축, 미술, 건축의 미술, 미술의 건축, 미술, 이 범주의 스펙트럼을 넘나들며 새로운 성격의 사무실을 만들어 나간다는 것이다. 홈페이지의 구성을 고민하고 카테고리를 만들어 나갔던 것이 회사의 방향성을 정립하는데 매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 카테고리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

2018년 1월에 몇 개월간의 집에서의 사무실 생활을 접고, 외부에 사무실을 얻었다. 지금 생각하면 초반에 왜 집에 있었을까 싶고 무슨 생각으로 그랬을까 다시 물어보고 싶다. 무엇을 하려고는 했었던 것일까. 사업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사업을 한다고 했기 때문에 그러했다. 새로운 것을 하고는 싶었으나, 어떻게 어떤 형태로 하는지 잘 몰랐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형회사에서 직원으로만 15년을 있었으니, 작은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랐다. 교육공무원이었던 부모 밑에서 자라 사업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때는 왜 사무소를 개설했을까.

2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는 눈앞이 깜깜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큰 조직에서 치고 나갈 용기와 스킬은 없었다. 치고 나가서 잘하고 싶은 욕심은 있었으나, 스킬과 나의 기본기는 받쳐주지 못했다. 그러했다. 두 번째는 그러고 나니 건축사도 있고 해서 나와서 사무실을 차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차에 와이프가 미술 쪽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래서 그것을 결합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유의 순서는 없다.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하나 되어 방향성을 가지고 나아갔고, 그것이 지속성을 갖기를 원했다. 남들이 하지 않는 우리만의 개성을 만들고 그것이 지속성을 가져 계속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었다.     

사무실에서 ⓒ권이철

홍티와의 인연

우연하게도 2018년 초반에 사무실을 문정동의 오피스 건물로 옮기고 첫 번째 아주 작은 현상이 당선되었다. 부산 사하구청의 홍티예술촌에서 개최한 공모전으로 공공미술작품을 공모했다. 상금과 설치비용 포함해서 총 500만 원이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아주 작은 금액일 수도 있었으나, 도전했다. 인건비와 교통비 등의 비용은 제외하고, 재료비를 거의 500만 원으로 책정한 계획안을 제출했다. 사실 한 번도 만들어 본 적이 없는 것을 제안했던 것 같다. 무슨 용기였는지 지금 생각하면 어질하다. 사무실을 개설하고 최초의 매출이었다. 2018년 봄에 거의 한 달 이상을 부산에 내려가서 상주하면서 만들어냈다. 공사현장에서 구경만 해봤던 비계를 주문해서 현장에 설치하고, 대나무와 그물, 조명등을 구입하여 만들었다. 제작하던 중간에 부산의 바람에 비계가 넘어지는 사고도 있었다. 덕분에 1년 동안 설치되면서 문제없는 단단한 작품을 만들었다. 그러나 너무 단단했는지, 미적인 면은 조금 부족했다.

그때 홍티와의 인연으로 그 해 가을에 전시기획과 설치를 다시 할 수 있었다. 그때도 500만원 이었다. 홍티예술촌의 작업장 겸 전시장으로 쓰는 장소를 모두 전시공간으로 바꾸는 전시기획과 설치를 겸한 작업을 했다. 작가분들이 작품을 설치하고 그것이 돋보이게 하는 전시 설치작업이었다. 비계 임대업체에서 5톤 차량 가득 가설재를 빌려와서 그것을 모두 현장에 설치했다. 비계로 집의 형태를 만들었다. 홍티예술촌이 사라지고 있는 홍티 어촌마을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옛날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집의 형상을 하고 그곳에 작품들을 설치해서 서로 어울리고 영감을 주고받기를 원했다.     

홍티예술촌 공공미술 (디자인,설치:갓고다건축사사무소) ⓒ권이철

창동공공미술 당선

봄에 부산 작업을 끝내고 한참 더운 여름에 또 다른 도전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당선되었을까 싶다. 아무런 연고도 인연도 없었다. 아무리 당선이라는 것이 순수하게 작품성만으로 판단한다고 해도 사람이 하는 일이 꼭 그렇게 100% 그렇지 않다는 것을 완벽하게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도봉구청에서 진행한 공모전으로 창동역에 위치한 컨테이너로 만든 플랫폼창동61을 활성화하기 위한 공공미술 작품을 공모하는 것이었다. 현장설명회에 가니 작가들이 많이 와있었다. 8월에 공모 작품을 제출하고 심사 시 발표도 진행하였다. 우리가 제출한 작품은 바람에 위해서 자연스러운 소리가 나는 작품을 제출하였는데, 자연스러운 소리에 대한 심사위원들의 이견이 매우 많고 토론이 이어졌다. 공모전 발표결과 당선! 전체 아티스트 피와 설치비가 9,600만원이나 되는 아주 큰 금액이었다. 홍티에서 시작한 금액의 약 20배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큰 금액이고 무엇인가를 직접 설치해본 경험이 홍티에서의 경험밖에 없었기 때문에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이 되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설치 완성할 수 있었다.

당선 이후 첫 번째 도봉구청과의 미팅. 현상설계 때 생각했던 시스템을 한 모듈 샘플 제작하여 가져 갔다. 그러나 비판이 계속 이어졌다. 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심사위원들도 심사 이후에 의견을 제시하였는데, 모두 안전과 소리에 대한 우려들이었다. 소리를 만들어내는 장치를 만들어본 전문작가도 아니었고, 소리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도 아니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실현이 잘 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첫 번째 미팅 이후 처음부터 다시 생각했다. 낙원상가에서 악기들을 연구하고, 서울의 공공미술 작품들도 모두 탐방을 하며 어떤 방식이 가장 좋을지를 살펴보고 연구했다. 그리고 발주금액 안에서 설치를 할 수 있을지를 맞추기 위해서 을지로를 하루가 멀다 하고 다녔다. 을지로에서 시제품도 제작하고, 단가를 맞추기 위해서 동분서주했다. 건설공사나 설치작가들이 하는 것처럼 반복적인 작업이었다면 단가에 대한 어느 정도의 경험치에서 오는 금액에 대한 예상이 있을 것이나, 우리는 그렇지 않았다. 건축가들이 하는 공공미술 설치작품이 그런 것 같다. 건축가들이 하는 설치작품은 대부분 매번 새롭다. 예술작가들은 자신의 내면을 파고 자신이 하던 작품을 조금씩 변형하면서 작품을 만들어내는 반면, 건축가는 그때의 시간과 공간, 과거와 미래 속에서 장소에 맞는 공공미술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예측이 어렵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2018년 12월 26일 크리스마스 다음날 설치를 완료하였다. 외부 현장에서 눈과 추위를 이겨내며 만들었다. 최대한 공장 제작한 것을 현장에서 간단하게 설치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으나, 생각보다 현장의 일은 간단하지 않았다. 설치시공을 우리가 주도하고, 인력사무소에서 일일 인부를 필요할 때마다 쓰고, 부품들은 공장과 공장을 연결하고 가공하여 최대한 만들어진 채로 현장으로 이동시켰다. 그것들은 현장에 설치하고, 조립하였다.    

  

플랫폼창동61 공공미술 (디자인,설치:갓고다건축사사무소) ⓒ이한울

공공미술과 함께한 1

갓고다의 1년차는 공공미술과 함께하였다. 회사를 만들고 처음부터 건축과 미술이 함께하기를 원했다. 우연하게도 1년차를 공공미술이 우리와 같이 동행해주었다. 부산 홍티예술촌과의 2번의 작업과 창동에서의 1번의 작품으로 1년이 훌쩍 지나갔다. 공공미술의 가장 큰 장점은 다른 이들이 하지 않는 독특한 작업을 직접 할 수 있다는데 있다. 기획부터 계획, 설치까지 직접 하면 문제점을 해결하며 작품을 완성할 수 있다. 마치 수공업, 수공예와 같다. 계획이 완벽하지 않아도 문제없다. 현장에서 바로 해결할 수 있다. 마치 옛날에 시골에서 본인이 직접 살집을 짓던 것과 같다.

1년차는 건축과 졸업 이후 대형 사무실에서 설계와 시공의 완벽한 분리 속에서 살아왔던 10여 년의 시간을 다시 본래의 건축으로 돌아가게 해 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우리나라의 대형 사무실은 설계 이후 시공을 완벽하게 나 몰라라 하는 극단의 시스템으로 치닫고 있다. 수주하고 설계하여 허가를 내고 실시설계 도서를 납품하면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는 관행이 계속되고 있어 건축계를 후퇴시키는 부정적인 역할을 해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속에서의 10여 년의 시간을 지나, 다시 건축(建築)의 본래의 역할에 충실하게 해 준 것이 공공미술 작업이었다.   

   

소규모 건축과 현장에 직면하다.

2018년의 공공미술 작업을 끝으로 2019년에는 소규모설계가 진행되었다. 2018년에 계약한 시흥의 상가주택의 설계가 2019년 1월에 바로 시작되었다. 연말을 전후하여 다녀온 스페인 여행의 여독이 풀리기도 전에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공사 기간이 6개월로 봄에 공사를 시작해야 가을에 끝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1월에 설계를 시작해서 봄에 착공을 위해서는 설계, 허가, 시공자선정, 착공신고 등 여러 차례의 절차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1월부터 4월까지 쉬는 시간 없이 완전하게 몰입하여 만들어 내었다.

이 건물은 1층 상가와 2~4층 6가구의 다가구가 모여 있는 완전한 수익형 부동산으로 조금의 면적 여유도 허용되지 않는다. 특히나, 시흥의 부동산시장의 가치의 위상은 더욱 면적에 따른 수익형에 맞추어져 있다. 주차를 최대한 콤팩트 하게 배치하고, 상가는 절대적으로 도로에 완전하게 면하고 있으며, 조경면적 조차도 최대한 옥상으로 올려 1층 상가 임대면적을 최대화했다. 2~4층의 주택도 방 3개와 화장실 2개를 만들면서 부동산 임대시장의 표준주택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했다.

이렇게 구성된 상가주택은 자금흐름상 토지비, 공사비, 전세금, 월세로 이어지는 단순한 현금흐름을 가진다. 6가구 전체를 모두 전세로 임대를 주어 가구당 1.5~2억 정도의 전세금으로 10억-평당 공사비는 400만 원 정도-이라는 공사비를 최대한 감당하고, 1층 상가에서 나오는 월세는 토지비용 투자에 대한 수익을 가져다주는 아주 단순한 공식에 의한 상가주택이다. 리스크를 최대한 감안한다면 토지비용에 대한 이자만 감당할 수 있으면 15억 전후의 상가주택을 하나 가질 수 있는 상황이다. 면적의 허용을 넘지 않은 한도에서 건축이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이 상가주택은 전후면이 도로에 면하고 있어 2개의 파사드가 외부로 면하고 있고, 좌우측면은 옆집과 매우 붙어 있어서 보이지 않는 면이다. 2개의 도로에 면한 파사드가 주변과 어울리면서도 독특함을 가지게 했다.

대형설계사무소에서 만나는 대형건설사들과 소규모 설계시장에서 만나는 소규모 건설사는 성격과 회사의 목표가 다르다. 대형 건설사는 자신들의 브랜드와 그것을 지키기 위한 지속가능함이 필요했기 때문에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퀄리티 있는 시공을 했다. 그러나 소규모 시장의 일반적인 건설사들은 지속가능함이라는 것은 그 프로젝트에서 이윤을 남기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기본적으로 하자없이 추후 문제의 소지를 최소화하면서도 도면과 내역서의 기준과 상관없이 이윤을 남기기 위한 자재 및 시공방법의 변경이 난무했다.

우리는 설계도면과 내역서를 작성하였고, 그것을 기반으로 10여 개의 건설사로부터 가격입찰을 받아서 시공사를 선정했다. 이정도 하면 건설사들이 도면에 기반을 두어 어느 정도는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산이었다. 내역에 있어도 못하겠다고 바로 손을 들어버렸다. 내역에 있어도 통상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기 때문에 그럴 줄 몰랐다고 하면서 일반적이고 기본단가의 물건으로 시공하겠다고 했다. 그들에게 도면은 중요하지 않았다. 통상적으로 전체 연면적이 얼마에 층수가 몇 층이면 평당 얼마에 한다는 소규모 시공자의 ‘통밥’ 안에 들어있는 자재의 스펙이 중요했지 도면에 어떤 스펙이 들어있는지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전쟁의 시작이었다. 그것은 우리는 위한 것도 아니었고, 순전히 건축주를 위한 것도 아니었다. 상식적인 소규모건설현장의 표준화, 정상화를 위한 외침이었다. 언제까지 골목에 면한 10여 개의 집을 한 사람의 시공자가 짓던 80년대 빨간 벽돌 다가구 시대를 지속하려고 하는가에 대한 변화에 대한 물음이었다.

디테일 도면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디테일 도면도 많이 그리고, 몇 가지 중요한 것들은 실제 자재와 샘플 제작을 통해서 실현성을 높여 놓았다. 그러나 소규모 시장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도면 자체를 보지도 않았고, 샘플 제작한 것도 쳐다보지도 않았으며, 바로 못하겠다고 뒤로 물러났다. 건축가가 도면을 많이 그린다는 것은 매번 현장에 방문하여 지시를 하거나, 수정을 해줄 수 없기 때문에 아주 간단한 전달의 도구였으나, 작동하지 않았다. 도면을 보고 시공자가 각 공종별 작업자들에게 전달을 하고 감독을 해야 했으나 그렇지 않았다.

이것이 소규모 건설시장의 현실이었다. 그들은 그럴 것이다. 공사비 단가가 시간이 지나도 올라가지 않는데, 어떻게 일반적이지 않은 도면에 맞추어 시공을 할 수 있겠냐고 아우성일 것이다. 지금 한국건설시장의 딜레마다.

몇 년 전부터 건축사가 감리를 직접 못하게 되어 있다. 그렇다는 것은 도면을 잘 그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건축사가 감리를 병행하면 도면을 자세히 그리는 것보다 현장 작업자와의 대화를 통해서 디테일을 해결하는 것이 제일 좋은 것일 것이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그렇지 않다. 앞으로 해결해 나아갈 문제다.    

 

시흥 상가주택 (디자인,설치:갓고다건축사사무소) ⓒ이한울

3년차를 맞이하며

갓고다의 3년차를 맞이하며 지금 프랑스에 있다. 프랑스는 유럽 문화의 중심으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자산과 정신을 따라갈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한다. 2019년의 마지막 날 파리 시내를 하루 종일 걸어다녀 스마트폰에 기록된 걸음수가 3만보를 넘어가는 순간, 깜짝 놀랐다. 3만보가 될 동안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도시를 걸어다니는 것이 조금만 걸어서 지루할 때쯤이 되면 무엇인가 볼거리가 생기고, 그것을 지나면 약간 먼 곳에 도시의 축 저 멀리 새로운 볼거리가 머리를 내밀고 있어 지루하지 않게 도시를 탐방할 수 있었다. 도시전체가 일관된 파사드와 높이로 이루어져 있지만, 디테일이 살아있고, 조금씩 다르면서도 같은 것이 생동감을 준다. 우리가 한국에서 건축을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해주었다.

1년 차는 공공미술을 통해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직접 설치를 통해서 내공을 키우는 해였다. 2년 차는 우리나라의 소규모 설계, 건설시장에 바로 직면하여 우리가 앞으로 해나갈 숙제를 직면하게 된 해였다.

3년 차는 결합의 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1년 차의 공공미술과 2년 차의 소규모 건축이 결합되어 우리가 살아가야 할 도시의 풍경을 만들어내는 해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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