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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을 가꾸는 건축가 Jul 07. 2021

건축 작업실 에스키스

90년대에는 각 건축학과마다 '작업실'이라는 것이 있었다.

     

건축 작업실이라고 하면 생소할 것이다. 내가 대학교를 다닌 90년대에는 각 건축학과마다 '작업실'이라는 것이 있었다. 우리 학교뿐만 아니라 다른 학교에도 있었고, 어느 작업실은 학교 연합으로 하기도 했다. 다른 실습이 동반되는 예술대학에도 있었던 것을 알고 있다.

이곳은 동아리와 같은 성격인데, 숙식을 같이 한다는 점이 더 강한 연결고리를 갖는 곳이다. 이곳에서 건축설계를 같이 공부하고 연구하고, 세미나 등의 학술활동을 하였다. 내가 다닌 학교 건축과에는 작업실이 5-6개 정도 있었다.

그 이름은 에스키스, 가람, 에이디에프..  몇 개 더 있었는데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곳 작업실에는 1학년 겨울방학 때부터 시작하며, 원하는 사람이 가입하여 같이 지내는 곳이다. 건축과 학생 수의 약 20% 정도 가입하여 활동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완전히 다르지만, IMF 전에는 건축과 졸업하면 취직 1등이 건축설계였다고 한다. IMF 이후 내가 학교 다닐 때는 건축설계가 1등 인적이 없었다. 반면 1997년까지는 건축과 커트라인이 의대를 넘어설 정도였다. 지금처럼 건축공학과 건축학과가 나뉘어 있지도 않고, '건축학'과 '건축공학'이 '건축공학과'의 이름으로 하나로 합쳐져 있을 때이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공부 잘하는 순서대로 건축과에 들어왔고, 건축설계를 지망하여 취직했다. 건축사만 따면 돈을 많이 벌어들이는 완전한 건축 성장기의 시절이었다. 지금은 건설사에 가면 연봉이 제일 많고, 건축설계가 제일 꼴등이다. 건축과 입학 순위도 중하위로 떨어졌다. 졸업생 중에 10% 정도만 건축설계를 한다고 한다. 완전 세상이 달라졌다. 건축설계를 하겠다는 학생은 줄어들었는데, 반대로 건축학과는 5년제가 되어 학비만 늘어나는 꼴이 되었다.

1학년 겨울, 4명의 동기가 같이 에스키스라는 작업실에 들어갔다. 합숙의 시작...

그곳에 왜 들어갔는지 정확히는 생각이 나지 않지만, 1학년 지나고 공부를 잘할 것도 없는 시기이지만, 그래도 공부를 제대로 하고 싶다는 생각에 그곳에 가입했다. 그리고 그 겨울방학부터 그곳에서 숙식을 하며 건축설계를 공부했다. 그 당시 작업실에 들어가면 '그래도 설계를 열심히 하려고 하나 보다'라고 주변에서 생각했었다.

당시 작업실 책꽂이

 지금은 작업실이 거의 없다. 건축과 5년제 되면서 학교 시설도 너무 좋고, 학생들이 작업할 공간도 넉넉히 제공하고 있다. 기자재도 건축책도 공간도 학교 시설이 좋은 상황이다.

그러나 내가 학교 다닐 그때는 그렇지 않았다. 학교에 기자재가 거의 없었다. 지금은 당연히 있을 것 같은 열선조차도 없었다. 그냥 나무로 된 연필로 도면을 그리던 시대의 제도판만 있었다. 학교에 건축책도 거의 없었다. 반면, 작업실이라는 곳에 가면 기자재도 있고, 건축책도 많이 있어서 학교보다 나았던 시절이었다. 겨울부터 시작된 작업실 생활은 군대 같았다. 그때는 군대를 가기 전이었기 때문에 몰랐는데, 2학년 끝나고 군대를 가니 작업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군대에서 있던 얼차려 등의 강압행위만 없을 뿐이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밖에 나가서 체조를 하고, 밥 당번을 정해서 돌아가면서 10여 인분의 아침밥을 했다. 체조를 하고 같이 아침밥을 먹고, 세미나를 시작했다.

같은 건축책을 보고 책의 내용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유명한 건축물에 대해서 모형도 만들어보고 설계도면도 그대로 다시 그려보는 공부도 했다. 또한, 설계 주제를 정해서 설계를 하고 그것에 대해서 서로 비평하며 더 나은 방향을 연구했다.

당시 작업실 설계판

1997년 11월에 IMF 외환위기가 왔다. 나는 97년 겨울에 설계를 열심히 해보겠다고 작업실에 들어갔고, 1998년 온 나라는 완전히 경직되어 있었다. 98년 2월에 졸업을 한 선배들은 회사에 합격했다가도 합격을 취소당해서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지금 돌아보면 완전히 세상이 바뀌는 시점이었다. 건축설계는 이때부터 완전히 바닥으로 가는 시기였다. 건축사만 있으면 돈을 벌던 시기가 완전히 끝났다. 그래도 나는 뭔지 모르고 설계를 열심히 한다고 하며 겨울 내내 공부하고 있었다. 내가 대학교를 다니면 1997 ~ 2003년 사이에 건축설계 시장은 완전히 얼어있었던 것을 그때는 전혀 모르고 학교를 다녔다.

그 어려움의 증거는 분명히 있었다. 2002년 내가 있던 작업실은 신입생이 들어오지 않아 문을 닫았다. 사실 그 전 몇 년 동안 작업실의 기능은 숙박의 기능이 더 강했기 때문에 IMF가 터지면서 작업실의 온전한 기능은 사라졌다고도 볼 수 있다. 그 원인은 설계 시장의 어려움과 건축학과 5년제 전환으로 학교의 시설이 대폭 좋아졌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설계를 계속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2008년 위기 이전인 2006년 건설경기 활황에 힘입어 건축설계시장도 대형 위주로 많이 성장하였다. 2008년 위기에 잠시 주춤했고, 2012 ~ 2015년 주택경기 활성화로 대형 설계사무소와 아뜰리에 위주로 활황을 보이고 있었다. 중견 사무소는 계속 어려웠다. 이후의 전망이 어떨지. 거의 10년마다 호황이 오니 2025년을 기다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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