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건축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성장과정 속에 그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크게 2가지였다.
하나는 중학교 때 인천 남구 주안동에서 관교동이라는 곳으로 이사를 갔는데, 그곳은 신규 택지개발지구였다. 우리 부모님께서 택지의 단독필지를 사셔서 직접 집을 지으셨기 때문에
집을 어떻게 설계할지 가족이 모여서 논의를 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집에서 중, 고등학교 시설을 보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몇 년 동안 주변은 공사장이었다. 한동안 주택 공사현장을 옆에서 계속 보고 살았다. 자연스럽게 건축에 가까워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한 이유로 건축과에 갔고, 그 안에서 특히 설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다른 친구들은 시공, 구조, 설비 등에 관심을 가지고 다른 길로 갔지만, 나는 건축사사무소에 들어갔다. 왜 시공이나 구조, 설비 등의 다른 길을 가지 않고 설계를 택하였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망설임 없이 1학년 때부터 설계 공부에 집중했다.
2003년 8월에 졸업해서 몇 개의 사무실에 원서를 냈고, 면접을 봤다. 그러던 중 면접을 본 사무실 중 한 곳에서 먼저 연락이 왔고, 그곳은 해안 종합건축사사무소였다.
그곳은 지금은 1,000여 명이 되는 큰 사무소였지만, 그 당시에는 150명 정도 되는 크지 않은 사무소였고, 모르는 사람도 많았다. 한참 성장하고 있는 회사였다. 지금 생각하면 해안에 입사했던 것은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좋은 곳에서 좋은 건축을 배웠기 때문이다.
또한 설계를 하는 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어떤 설계를 하고자 하는 생각은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떤 설계를 하고자 하는지를 알고 그것을 하기 위해서 사무실을 구해야 했었다. 그러나 그때는 그렇지 못했다. 만약에 다시 그때로 가서 사무실을 정한다면 작은 사무실과 큰 사무실로 구분하고, 어떤 설계를 하는 사무실에 갈까를 고민했을 것이다.
해안에 가서는 본의 아니게 회사의 배정에 따라서 주택팀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당시 해안은 시행자, 건설사와 개발사업의 주택설계를 주로 하는 곳이었다. 공동주택 설계를 하면서 끊임없이 뒤돌아 보게 되었다. 나는 어떤 설계를 하고 있으며, 해야 하는가? 학교 때 배우고 봐 왔던 세계적인 멋진 건축가들처럼 그런 건축물을 설계하고 싶었지만, 매일 일률적인 아파트 설계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계속 무엇인가를 했다. 현실을 바꾸고 싶어 했다. 유학을 가려고 공부도 하고, 작은 설계사무소에 가려고도 하고, 시행사에 가고 싶어 하기도 했고, 건설사에 가려고도 했다. 그러나 노력을 했지만, 변화를 이루어 내지는 못했다.
몇 차례의 노력에도 변화가 없었고, 끝내는 회사 내에서의 변화를 택했다. 7년 차에 주택팀을 벗어나서 해안 내부에서 디자인팀(디랩)으로 옮겼다. 변화를 꽤 하고자 하는 것 중에서 소극적이지만, 그래도 설계에 대한 열망을 분출하고 싶어 했다. 디자인팀에 가서 2년을 일했다. 그러나, 그쪽에 내가 소질이 없었고 다른 팀원들보다 잘하지는 못했다. 능력이 부족하기도 했겠지만,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2년 후에 다시 주택팀으로 돌아와서 아파트 프로젝트를 했다. 그곳에서 다시 3년을 있었다.
3년 동안 4개의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하는 기회를 가지면서 거의 설계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경험하며 완성되는 좋은 경험을 하였다. 3년이 지나고 나서 다시 고민하던 중에 대학원을 가기로 결정했다. 서울시립대 도시과학대학원에 진학했다. 이것도 작은 변화를 꾀하고자 하는 노력이었다.
그런데 연초에 회사의 지시로 본부를 옮기게 되었다. 대학원도 다니고, 새로운 본부에 적응도 하는 생각지 못한 것이었다. 그곳은 개발사업 위주의 현상을 하는 곳이었다. 처음에는 융합본부라고 해서 뭔가 거창하게 시작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주상복합 2개를 처음부터 끝까지 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더 새로운 것을 해야 했지만 결국 아파트에서 살짝 옆으로 빗겨나간 채로 3년이 지났다.
그리고 해안을 나왔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퇴사를 결정했다. 더 늦으면 내가 원하는 새로운 것을 하지 못한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어쩌면 퇴사가 준비가 되었냐 보다도, 늦었다는 조바심이 더 컸다. 나는 왜 설계사무소를 내가 직접 운영하고 싶다고 생각했는가. 그것은 내가 왜 해안을 나오게 되었는가와 같다. 해안에서 14년(2003.9~2017.9) 동안 대형건축물 설계를 하면서 갖지 못했던 갈증에 대한 해답일 수도 있다.
첫째는
건축을 한다는 것은 건축기획부터 계획, 실시, 시공관리, 준공 후 관리 등 그 설계의 범위가 매우 넓다. 대형사의 단점은 그 과정을 전체를 잘 알지 못하고 매우 분업화되어 있다는 데 있다.
분업화된 곳에서 일하면 의외로 편한 것이 있다. 내 분야가 아니라고 생각되면, 회사 내에 그것만 전문으로 하는 직원이 별도로 있기 때문에 물어보고 지원받으면 된다.
그러나, 여기서 내가 원했던 한 가지는 그것을 모두 관통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대형 프로젝트가 아닌 작은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해보는 기회를 가지면서 건축가로 성장하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다.
두 번째는
무엇이었을까. 건축일의 범위를 넓히고 싶다는 욕구였다. 순수 건축설계 이외에 조각과 인테리어, 그리고 기획 등 다양한 분야로 넓혀 일을 하고 싶다. 단순히 순수 건축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조각, 파빌리온, 그리고 일의 범위를 넓히는 것이다.
일의 범위에는 오래된 것의 보존 및 의미를 찾는 일, 건축교육 그리고 출판 등 건축을 알리는 일 등 다양한, 어찌 보면 잡다한 일을 하는 곳, 그런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
세 번째는
그것은 급변하는 세상에, 나만의 브랜드를 가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건축, 미술, 그리고 다양한 업역의 일을 하면서도 브랜드로서의 가치를 가지고 그런 종류의 일을 하는 곳을 만들고 싶다. 자신만의 브랜드를 가지는 일만큼 어렵고 고민이 많이
필요한 일이 또 있을까. 많은 고민과 다양한 작업 속에서 브랜드를 구축해나갈 것이다.
사무소의 이름은 '갓고다'
'갓고다'는 가꾸다의 옛말로 세상을 가꾸어 나간다는 뜻이다.
건축과 미술로, 그것의 결합으로 세상을 가꾸어 가는 회화적인 건축으로 세상을 가꾸어 나가는 것이다.
해안이라는 큰 곳에서 있었을 때 매너리즘에 빠져서 하던 일을 반복하는 것보다. 나의 일을 찾아가고, 나를 브랜드화시키는 노력을 하며, 끝까지 살아남고자 하는 노력이 좋다.
생각해보니 가장 큰 것은 끝까지 살아남고자 하는 것이었다. 일본 소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속의 건축가처럼 묵묵히 오랫동안 건축의 일을 하는 그런 모습을 꿈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