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보아라
아마 조금만 덜 못난(잘난 것은 바라지도 않고...) 언니였다면 너는 비행기에 오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너는 조금은 험한 나라로 갔다. 너는 현장에서만 쓸 법한 안전모를 쓰고 작업복을 입었다. 너는 자랑스럽게 네 사진을 보내왔지. 평평하지 않은 땅들을 밟으며 너는 이 사람에게서 저 사람에게로 말을 옮겼을 거다.
다른 나라의 말을 곧잘 한다는 것은 참 ‘있어 보이는 일’이다. 하지만 그 있어 보이는 일을 하기 위해 너는 너 혼자 퍽 애를 많이 써 왔다. 부모님이 좀 얹어 주셨다고는 해도 너 혼자 해낸 일들이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대책 없는 언니 다음에 태어나지만 않았어도 넌 조금 더 우아하게 일할 수도 있었을 텐데, 거참 안 됐다. 나는 지금 새로 옮긴 직장에서 긴장의 고삐를 조이다가도 문득 널 생각한다. 열몇 시간이 넘어야 갈 수 있는 타국에서 2주에 한 번뿐인 휴식으로만 몸을 달래야 하는 너를 생각한다. 키도 덩치도 그 나름 큰 네가(여자보고 ‘덩치’라고 해서 어쩐지 미안하다만) 그 비좁은 비행기 좌석에서 쭈그리고 앉아 열몇 시간을 버티었을 것을 생각한다. 엄마, 아버지는 너를 외국으로 보낸 첫날 밤, 너의 덩치와 네가 보내온 비좁은 비행기 좌석 사진을 비교해 가며 끝내 깊이 잠들지 못하셨다. 나는 부모가 아니어서 잠은 꽤 쿨쿨 잘 잤다만 부모님은 마음이... 마음이 아니셨나 보다.
맏딸이나 장녀라는 말은 나보다 네가 더 어울린다. 그렇게 만든 게 왠지 나인 것만 같다. 원래도 큰 머리여서 무거운 내 머리를 오늘따라 더 숙연히 숙이게 된다. 어, 잠깐잠깐, 너에게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는데 엄마가 나한테 문자를 보내셨네. 잠시 확인해 보자.
<최○○ 님께서 애○팡에서 최고 점수 111,891점을 달성하셨습니다.>
네가 엄마에게 가르쳐 주고 간 게임^^;;; 엄마가 '게임 자랑' 문자를 보내셨다;; 너를 멀리 타지에 보내고 잠 못 이루시다가 애○팡에 빠지셨나 보다.
아무튼 우리 가족은 너를 걱정하고 너를 사랑하고 있다. 그 사실을 네가 가장 잘 알 것 같으면서도 혹여 가장 모르는 사람이 너일 수도 있겠다 싶어 알린다. 그래서 나는 네가 연수를 갔을 때처럼 매일같이 편지를 쓰려고 한다. 너의 제2 외국 생활을 응원한다. 다시 편지폭탄 맞을 준비를 하거라. 이만 총총.
-9월 어느 날, 동생 같은 언니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