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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Jun 22. 2024

이 정도면 인연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만

너와 나의 인연

거기 있나요?



'너'를 두고 이런 말을 아주 여러 번 해야 할 줄은 몰랐다. 그만큼 너는 소중한 존재였고 내 옆에 착 붙어 있는 존재였기에. 아무리 세상의 번잡한 것들이 나의 눈을 가리고 막고 뒤흔들어도 너와의 인연만큼은 쉬이 저버리지 않는 나라고 힘껏 자신해 왔었는데..

'어딨지, 어딨지, 여깄다, 영수증.'


-죄송한데요, 잠깐 맡아 주시겠어요?

나는 기어이 너를 잠시 낯선 이에게 부탁하고야 만다. 그들이 처음 본 너를 잘 돌보아 줄지는 의문이다. 다만 전화를 걸어 신신당부를 건넸으니 그래도 조금쯤은 너를 안전하게 맡아 주지 않을까.


-헉.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집으로 온 만큼의 거리만큼을 되짚어 너를 찾으러 간다. 너를 도로 받아 들며 연신 고개를 숙이고 마음을 숙인다. 손에 받아 든 너를 두고 생각한다. '너'는 이 낯선 곳에서 얼마나 어리둥절했을까?!



"아니, 그냥 만 원 주고 하나 다시 사."

혹자는 너를 두고 이리 잔인한(?) 말을 건네 온다. 2만 5천 원이었던 너는 어느새 로켓배송으로 11,000원이 되었다. 너의 몸값이 낮아졌건 어쨌건 상관없다. 나는 꼭 '너여아만' 한다. 우리는 늘 다시 '만날 테니까.'


의외로 눈에 잘 띄지 않는 너의 하얗고 고운 자태. 그래서 난 모임이 끝나고 일어서는 시간이면 테이블을 살피는 게 버릇이 되었다. 행여라도 다시 또 너를 놓치고 올까 봐. 하지만 누구 버릇 누구 못 준다고... 중국집을 나오며 너를 두고 오고, 업무 중에 정수기 앞에 너를 잠시 두었다가 그새 너를 또 두고 오고... 심지어...



이건 춘천에 놀러 갔을 때의 일이다.


"엄마, 내 계획표 봐."

"완전 15분 단위로 계획을 세워 놨네?"

나는 자랑스럽게 하루 계획이 빼곡히 적힌 종이를 내민다. 나, 혹시 알고 보면 MBTI의 'T' 아닐까! 시에 어디서 밥을 먹고 시에 어디를 구경하고 시 몇 분쯤에 버스를 타고! 이러다 똑 부러진 춘천 관광객이 될지도 모른다!


-헉, 엄마...

-어쩐지.. 사람이 너무 없다 했어.


<선박 건조 중이라 배 운항은 다음 달부터 실시합니다>


분명 블로그를 살피고 갔었는데 우째 이런 일이.. 우리는 소양강 댐 앞이었다. 배를 타고 들어가 보려고 했는데 오늘은 배가 안 뜬단다. 최신 정보를 확인했어야 하는데 내가 확인한 블로그는 몇 달 전 블로그. 꼼꼼하지 못한 '자칭 T, 타칭 극 F'인 나는 오늘도 엄마를 '땡땡 훈련' 시키며 오늘도 '죄송'과 미안한 표정을 남발한다. 그런데 나는 곧바로 또 한 번 더 죄송해지고 만다.


-앗!

-왜, 또?


나의 '앗'만 들리면 엄마가 깜짝 놀란다. 또 무슨 일로 '대환장파티'를 준비하려는 건가, 싶으신 걸지 모른다.


-엄마. 어쩌지?

-뭐가 또?


애를 두고 왔어. 무슨 애? 하얀 애. 하얀? 그때 우리 조카 혀니가 골라 준... 하얀 보온병...



그렇다. 나는 '너'를 또 두고 왔다. 이번이 세 번째다. (큰 사건으로만 세 번째다. 생고생을 해야 했던 것만 기준으로 잡아서 세 번째...)


-그냥 사. 저번에도 두고 와서 같이 찾으러 갔었잖아.

-근데... 소중한 거라.

-소중한 걸 두고 다니시나 봐요?


할 말이 없다. 대답할 자격도 없다. 우연히 보온병을 살 때 내 옆에 조카가 있었다. "이모, 물병 뭐 고를까, 좀 긴 거? 아니면 좀 작은 거?" "이모, 이 작은 거 해!" 조카가 '찜콩'해 준 물병이란 말이다. 게다가 나의 손때와 물때(?)가 잔뜩 낀 보온병이기도 하고....



춘천에서도 나의 이 '덤벙'이 빛을 발한다. 나는 여행 파트너인 엄니를 꼬드겨 다시 버스를 타고 내려간다. 중간에 들렀던 문제의 그 식당으로 다시 돌아가 기어코 나의 하얀 보온병을 찾아낸다. (물론 영수증을 보고 다시 전화를 걸어 또 한 번 '신신당부'를 했다는 것은 안 비밀.)



제 애를 맡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를 또 한 번 거듭 외치고 돌아 나와 버스 정류장에서 나를 한심하게 지켜보지도 않으시는(이제는 당연해서 한심해하지도 않으시는 무념무상, 무탈, 해탈의 표정이신...) 어머니께 다가가서 승전보 같은 '보온병 컴백' 소식을 알린다.



이쯤 되면 나와 '너'는 인연이다.

이쯤 되면 떼려야 뗄 수 없는 필연이다.


우연히 만난 물건 하나 허투루 다루지 않고 너를 버렸다가도(?) 끝내 다시 찾아오는 나는.. 진정...


너와 질기고 진한 운명임에 틀림없다.

앞으로...


앞으로도 잘해 보자. 우린,

돌고 돌아도..

다시 '만날 테니까.'


https://youtu.be/Xgjcixb9YlY?si=guhzWoa1PH9HGEsb

가끔은 운명이란
단어조차 잊은 채 살지만
한없이 표류하던 맘
낯선 곳에서 길 잃은 나
나의 나침반이 가리킨 곳
너의 빛을 따라가
길고 긴 서사를 넘어서
운명의 품 속으로 난
Believe me
Don't you worry
돌고 돌아 널 만날 테니까
You Save Me     

 ('이클립스'의 '만날 테니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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