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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Jul 06. 2024

목걸이가 필요합니다만

(헉) 21만 원이요?



놀란 숨을 안으로만 삼킨다. 순간적으로 덤벙덤벙 철퍼덕철퍼덕 해 버린 대가치고는 세다. 놀란 마음은 "3.. 3개월로 해 주세요."로 막을 내린다. 대체 그날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인가?


한창 따릉이 타기에 빠져 있던 시절. (나는 따릉이 덕에 뒤늦게 자전거 걸음마를 뗐다. 어릴 때, 그리고 스무 살 때쯤, 분명 두 발 자전거를 타고 달린 적이 있었는데도 나이 들어 다시 타려니 내 몸이 두 발 자전거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아무튼 따릉이 덕분에 자전거를 다시 시작하였다.  요리조리 직장 근처 골목골목을 누비며 출근 시간 전, 혹은 자투리 점심시간을 따릉이의 두 바퀴와 함께했다. 그날도 따릉이를 하나 고른 후 안장 위치를 조정하고(키가 작아 팍팍 내리고)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할 생각이었다. 공원을 빠져나와 다다른 곳에는 마침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자전거와 나뿐이었다. 그렇게 둘만 남았을 때는 그야말로 천국의 자전거, 아니 E.T.의 명장면처럼 달을 가로지르는 자전거 비행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딱. 타탁. 치익.


누가 우리의 달콤한 여정에 제동을 건다. 끼익 소리를 내며 자전거를 멈췄다. 뭐, 뭐지?  


또 한 번 내 안에서 '덤벙벨'이 울린다. 이번엔 좀 '세게' 울린다. 귓구멍에서 뭔가가 급한 속도로 뜯겨 나갔기 때문이다. 유선 이어폰이었다. 이어폰이 내 귀를 뜯어낼 듯 조급히 빠져나갔고 동시에 유선 이어폰 단자가 무언가를 툭 하고 내팽개쳐 버린다.


자연스레 나의 시선이 멈춘 곳에서 발견한 너는...




저기, 친구야. 일어나 봐. 정신 좀 차려 봐. 친구야. 안 돼, 안 돼. 이대로 널 보낼 수는 없어..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된 녀석이었는데 갑자기 녀석이 얼굴을 보여 주지 않는다. 오로지 검은 표정, 검은 액정으로만 무심히 나를 쳐다본다. (쳐다보는 건지 어쩐지도 모른다. 액정이 켜지지를 않으니.)

따릉이 바구니와 내 유선 이어폰이 뒤엉키면서 선이 말려 들어갔던 것이다. 이어폰이 휴대폰을 잡아당기는 힘이 휴대폰의 무게를 이겨 버렸다.


-21만 원이요.

-산 지 얼마 안 됐는데...

-고치실 거예요?

-네.


새 휴대폰을 한 달도 안 되어 다치게 해 놓고 망설인다. 노트 엣지를 산 것이 잘못이었나. 그전에는 이렇게 떨어졌다고 금세 액정이 나가 버리지는 않았다. 둥근 모서리를 타고 금이 갔고 그 금은 내 마음에도 내 통장에도 금을 긋고 균열을 일으켰다.




일주일 후.

(드라마에서는 일 년 후, 이 년 후, 이런 말이 나오면 해피엔딩각이던데...)


그러고서도 정신을 못 차렸다. 나는 따릉이를 또 타고 말았다. '생돈' 21만 원을 들였으니 더 조심해야 했다. 그러나...


툭.

아니 뚝.


이번엔 자전거 때문만은 아니었다. 자전거를 잠시 세워 두고 벤치에 휴대폰을 내려놓다가 내 귓구멍에 이어폰이 껴 있는 것을 깜빡했다. (깜박할 것이 따로 있지, 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깜빡할 것들을 때때로 따로 두고 다닌다.) 그대로 지난번과, 정확히는 딱 일주일 만에 휴대폰이 뚝 소리를 내고 맨바닥에 부딪친다.



친구야. 아니라고 말해 줘. 이게 진짜일 리 없어...



 번은 실수지만 두 번은.... 실력이고 실패다. 그렇다. 나는 휴대폰 액정에게 패하고 말았다. 애초에 가진 덤벙 실력과 방심 실력이 나를 이곳으로 이끈 것이다.



목걸이라도 할걸 그랬어...



그 뒤로 나는 나에게 '승질'이 나서 액정을 고치지 않았고 그렇게 만 5년을 버티다 얼마 전에야 새 친구를 만났다.


https://brunch.co.kr/@springpage/400



이젠 목걸이를 반드시 하고 다닌다. 휴대폰 님은 이제 나와 일심동체여야 한다. 설거지를 할 때도, 집 안을 돌아다닐 때도, 달리기를 할 때도 내 목엔 목걸이가 매달려 있다. (때로는 이것이 족쇄가 된다.)


덤벙은 이따금 큰 대가를 치른다.

그게 21만 원일 수도 있고 5년이라는 시간일 수도 있고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라는 깨달음일 수도 있다.



나의 안일한 덤벙은 내게 돌다리를 주었다.

매번 나무에서 떨어지는 원숭이인 나는

오늘도 목걸이를 메고 외출 준비를 한다.

(한쪽 어깨가 좀 자주 아픈 것은.... 덤벙이 준 작은 선물로 여겨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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