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인물은 누구로 할까? 어떤 배우가 좋을까? 이 책을 읽으며 어느새 나는 사극 한 편을 찍고 있었다.
드라마는 보지만 사극은 좀체 보지 않는 나였다. 그런 내가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읽었고, 읽는 도중 내 입에서 저절로 '좀 재밌다..!'라는 육성이 차분히-실밥 터지듯- 툭 삐져나왔다.
청나라에 잡혀가 노예로 살고 있는 '윤승'의 고단한 삶 속에 드리운 채찍질과 고난, 그리고 억울함. 그러나 윤승의 삶은 그대로 끝나지 않는다. 윤승은 '수놓는 재주'를 통해 꿈과 미래와 가족과 함께하는 '그다음'의 생(生)을 그린다. 때로는 뜻하지 않은 일에 휘말리기도 했지만 그 과정에서 윤승은 자신에게 '수놓는 일'이 어떤 의미인지 되새길 수 있었다.
만일 이 책의 제목이 '수를 놓는 소녀'였다면 조금 뻔해서 책을 구입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성별을, 시대를, 편견을, 상하 구별을 넘어서서 '수놓는 행위'에 담긴 혼을 이야기한다. 무엇보다도 동양화를 전공했다는 저자의 소개를 보자마자 '수를 놓는 소년'이라는 이 청소년소설은 이 작가님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가장 잘 설명해 주고 가장 잘 그려 내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전혀 모르던 작가님이었지만 말이다.)
어찌 보면 형식상 동화의 느낌이 들기도 하고 어찌 보면 내용상 다소 의외의 인물(색목인이라 불리는 인물)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걸 다 뛰어넘어서 '병자호란'이라는 아픈 역사를 섬세한 필체로 그려 내는 솜씨에 한 장 한 장 수를 놓듯 정성스레 책장을 넘겼
기게 됐다. 나도 모르게 어느새 윤승이 그리는 그림과 윤승이 고르는 실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숨을 골랐다.책 읽는 과정이 수를 놓는 과정과도 같았다.
윤승의 한 땀 한 땀은 때로는 그리움이, 때로는 역사의 현장이, 때로는 윤승의 꿈 자체가 된다. 한 폭의 단단한 자수로 이어진 윤승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 우리의 한 땀 한 땀도 '윤승'의 용기처럼 그 길을 찾아 나설 수 있길 바란다.
1. 관전 포인트: 전문적으로 수를 놓는 남성 장인들이 실제로 있었다는 사실!('작가의 말' 참조)
2. 명장면(한 줄):"더 중요한 게 뭔지 아느냐?" "왜 수를 놓는지 아는 거다. 그걸 모르면 재주가 있어도 남들에게 휘둘리기만 하고 자신을 위한 삶도 살 수 없다." (119)
3. 추천 독자: 자기 길을 내고 싶고 자기 재주를 제대로 펼치고 싶은 사람
1일 1소설 핫썸머* 프로젝트!
하루 한 권의 소설을 느긋이 읽고 하루 한 번 조급히 리뷰를 올립니다. 소설 한 잔으로 이 쨍쨍한 여름을 뜨겁게 마셔 버립시다, 렛츠기릿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