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3학년 3월 2일, 그날이 되고야 말았다. 나, '지안'은 2학년 때 친구들과 다른 반이 된 터라 3월 2일이 두렵다. 그런데 이게 웬일? '채린이'라는 아이가 자기 무리를 끌고 내 앞으로 다가와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 친구 하자!"
인공지능 '메이트'가 너, 지안이를 내 친구로 추천했다는 채린. 이 손을 덜컥 잡아도 될까? 그러나 내 코가 석 자. 우선 '메이트'를 믿어 보기로 한다. 우정은 살면서 차차 맞춰 가기로 한다.
그런데 지안은 친구 찾기 여정에서 또 다른 친구도 만난다. 바로 '강은서.' 왠지 내면이 단단해 보이는 은서를 나의 메이트가 추천했다. 과연 누구와 친구를 해야 '나'가 '나'로 숨을 쉬고 '나'가 온전히 '나'로 설 수 있을까?
사랑에만 중매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소설 속에서는 디지털 발자국들을 모아 '우정 정보'를 조합하고 추천하고 관계의 다음 스텝까지 안내한다. 이른바 '우정 중매'라고나 할까.
그렇게 우정 AI로 얻은 '우정' 안에서 우리는 정말 친구였을까?
아니, 친구가 대체 뭘까?
이 소설을 읽으면 '너랑 친해지고 싶어' 쪽지를 받았던 학창 시절이 떠오르기도 하고, 억지로 대화 분위기와 일의 수준을 맞춰 가며 뱁새가 황새 따라가듯 일해야 했던 내 예전 직장 생활이 떠오르기도 한다. (쫓아가던그 뱁새는 황새와의갈등 폭발로 '퇴사'라는 정점까지 찍었다는 후문이다.)
'나'의 우정 서사를 돌려 보며 과연 내게는 어떤 우정 시뮬레이션이 적합할까 고민해 보았다. 빅스비는, 시리는, 챗GPT는 나에게 어떤 친구를 추천해 줄까? 혹 그런 세상이 온다면,
난 그 운명을 실천해야 할까,
아니면 내 안의 '진심'을 실행해야 할까?
청소년 소설이라는 껍질만 보고 살짝 가벼우리라 생각할지도 모르겠으나,이 소설, 의외로 단단하다. 그리고 깊숙이 인간관계의 내밀한 고민을 함께 나누어 준다.
한 번쯤 '지안'처럼 관계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렸던 분들이라면 이 소설을 일독해 봐도 좋겠다.
<눈길이 멈추던 문장들 필사>
1. 손발에서 땀이 배어 나오면서 머릿속이 하얘졌다. 내 안에는 준비된 진심이 없었다. 진심은 냄비에 쏟아붓고 끓이기만 하면 되는 부대찌개 밀 키트가 아니니까. 기슭에서부터 봉우리까지 한 걸음씩 오르는 산과도 같으니까. (14)
2. 새로운 친구란 말을 들은 심장이 갈비뼈 안쪽 공간을 뛰놀았다. 그제야 나는, 내가 얼마나 절박하게 친구를 원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2반 교실에서 살아남으려면 친구가 필요했다. 그 친구가 누구든 말이다. (32)
3. 소라, 소연이가 있는 단톡방에 메시지를 올린다. 이 방은 펼쳐 놓고 페이지를 넘기지 않아 먼지만 쌓이는 책과 같다. 내가 채효미와 어울리는 동안 소라와 소연이는 한 반에서 지내며 더더욱 단짝이 되었고, 새로운 친구들도 생겼다. ... 이렇게 천천히 예의 바르게 헤어지는 중인 걸까. (47~48)
4. 답은 나도 알았다. (...) 지금이라도 내 생각과 느낌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나를 못 믿겠다. 나보다 똑똑한 누군가의 조언이 절실하다. 그 대상이 인공 지능 앱이라 할지라도 나 혼자인 것보다는 나았다. (1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