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판타지였다면 좋았을 일들. 요양원에서만 만나야 하는 '나'의 엄마, 점점 시간을 거꾸로 돌리고 세월을 와작와작 거꾸로 먹어치우느라 딸인 '나'를 잊고 사는 엄마, 아니 딸뿐 아니라 자기 자신을 잊고 심지어 당신이 '인간'이었다는 사실조차 잊고, 그 모든 세상을 점차 잊어가는 엄마.
딸과 엄마의 위치가 바뀌어 버려 가끔 딸은 이 엄마가 원망스럽다. '나'로 하여금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엄마. 그러나 (저자의 말처럼) 결코 '나'는 '엄마의 엄마'가 될 수는 없다. 더는 '나'가 알던 엄마의 모습이 없어 눈물과 경악을 품곤 하는 '나'지만, 다만 이 문장, 엄마가 가끔 내뱉던 이 문장만이 딸인 '아니'의 곁에 남는다.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아."
그래서 '아니'도 엄마의 밤을 좀체 떠날 수 없다. 언제 끝이 날지 알 수 없는 엄마의 밤.
누군가의 밤을, 지치지 않고 지킬 수가 있을까.
우리에게 그럴 용기가, 그럴 끈기가 있을까.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속담만큼이나 아픈 소설.
아픔이 길어 더는 아픈지조차 모르게 되어 버리는 소설.
읽을수록 왠지 모르게 우울해지지만 이것 또한 삶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버리는 소설,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필사의 문장으로 리뷰의 마지막을 대체해 본다.
*단지 어머니 곁에 있을 뿐, 그게 전부다. 내 곁엔 항상 어머니의 목소리가 있고 모든 것이 그 목소리 안에 응집되어 있다. 죽음이란 다른 모든 것을 초월해서 볼 때 목소리의 부재를 의미한다. (115)
*어머니를 보고 어루만질 수 있다는 이 기쁨이여! 어머니의 모습은 비록 많이 변했지만 그래도 나의 어머니였다. (110)
*어린 시절엔 실제로 수많은 축제가 미래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이곳의 축제는 인생의 뒤안길에서 꾸며지는 허상의 축제일 뿐, 이제 다시는 진짜 축제의 날을 맞이할 수는 없을 것이다. (72)
1. 관전 포인트: 누군가의 밤에 동참해야 된다면?
2. 명장면(한 줄):"'넌 복 많이 받을 거야' 한다. 이 말은 내 가슴을 뒤흔들어 놓았다. 죄책감도 버거운데 오히려 상을 받을 것이라니..." (128)
3. 추천 독자: 오늘도 엄마에게 짜증을 내고 출근 혹은 등교를 한 딸 혹은 아들
1일 1소설 핫썸머* 프로젝트!
하루 한 권의 소설을 느긋이 읽고 하루 한 번 조급히 리뷰를 올립니다. 소설 한 잔으로 이 쨍쨍한 여름을 뜨겁게 마셔 버립시다, 렛츠기릿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