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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Nov 07. 2024

매일매일이 생일

너의 생월을 축하하며

나는 11월 한 달, 매일매일이 생일이다. 한 달마다 나의 머리맡 표어(?)를 바꿔 놓곤 하는데 9월엔 '나는 완전하다'였고 10월엔 '그냥 감사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사랑하는 11월에는 이런 문장을 적어 놓았다.



이 무슨 '자기애 터지는 소리'인가 싶을 거다. 그러나 내게도 이유가 있다. 왜냐면...

왜냐면 진짜로 내 생일이 있는 달이기 때문이다. 왜냐면 나를 축하해 주고 싶기 때문이다. 왜냐면... 나는 나를 좀 더 응원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난 8월 초가 생일이라 8월 한 전체를 내 생일로 축하하기가 어렵네? 금방 지나가 버리니까."


친구에게 '나는 11월 하루하루가 다 내 생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 내 생일 기다리는 재미가 있달까.'라고 전했더니 친구도 자신 또한 그러하고 싶지만 생일이 얼른 지나가 버리니 그런 기분을 느끼긴 어렵다고 답을 한다. 그러고 보니 나, 좀 행운아인 듯?


어렸을 땐 행운이 아니라 생각했다. 한국 나이로 따지자면 한 달밖에 안 살았는데 벌써 한 살이란다. 태어나 2개월이 넘었을 공식적으로 두 살인 셈이었고. (물론 아기 때는 개월 수로 따지지만.) 괜히 억울한 측면도 있었다. (뭐, 12월 31일생보다야 억울하지만.)


"친구야, 넌 지금 기말고사랑 네 생일이 매번 겹친다고 네 생일이 싫다고 그러지만 생각해 봐. 학생 신분이 아닌 날들이 더 많을 거야. 앞으로 계속 넌 눈이 오는 겨울이 생일이잖아. 아마도 앞으로는 좋을걸?"


중학교 때 친구의 말이다. 지금은 연락이 끊긴 친구인데 방 정리를 하다가 우연히 친구의 편지를 읽었다. 와, 이렇게 생각해 주었구나. 나는 미처 눈치채지 못한 '내 생일의 축복 요소'였다. 바로, 


<눈이 내린다는 것.>


물론 늘 눈이 내리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생일 당일 눈이 내린 적도 꽤 많았다. 드물게 첫눈이 내 생일에 와 주는 날도 있었고. 그럴 때면 하염없이 내리는 눈처럼 마음이 맑아지고 깨끗해진다. 온 세상이 나의 탄생을 축하해 주는 것만 같다. 어떤 축하나 축복보다도 고요한 행복이었다. 생일에 눈이 내린다는 것.



사실 무심코 11월 달력을 들여다보면 얘가 좀 융통성이 없어 봰다. 휴일이 하나도 없이 앞뒤로 꽉 막힌 듯한 형국이다. 죄다 검은 글자뿐이다. 불규칙한 빨간날의 행운은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런 와중에 나는 월말 즈음 생일이 있다. 이거 완전...


럭키비키! 럭키11월! 럭키생일! 이잖아~~


이게 뭐 특별할 리가 있겠냐마는 또 특별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특별해지는 법!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는 달이 나에겐 11월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자축 이벤트를 몇 년 전부터 소소히 진행해 오고 있다. 11월만큼은 '제발' 내 마음대로 살아 보겠다는 것이다! 

별것은 없다.



1. 아침마다 'Happy Birthday'를 듣는다.

Wendy Marcini 님이 매일 아침 생일 축하곡을 연주해 준다. Jazz Trio Version인데 재즈를 모르는 나조차도 재즈에 빠져 버리게 하고 생일 기분에 흠뻑 젖게 만든다. (11월의 어떤 날은 시도 때도 없이 이 노래를 듣는다. 마음이 차분해지고 조용히 행복해진다. 내게 조용한 행복만큼 커다란 평화는 없다.)

https://youtu.be/_I17Irz3_R8?si=kKe-vFwGfu4ytuiv

아, 그리고 이 노래도 빠질 수 없다.

https://youtu.be/qH_XsBOCslg?si=3C5VSHCfBKfK1y4T

권진원 씨의 해피 벌스데이 투 유, 99년에 나온 노래


2. 매일매일 하루에 하나씩 나를 위한 일을 한다.

가령 내가 좋아하는 호떡을 사 먹는다든지 호떡이 안 보이면 붕어빵을 사 먹는다. (나는 '호떡소녀'다. 호떡을 좋아한다.) 또는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목청 터져라 따라 부른다. 어떤 날은 내년 다이어리를 구경한다. 그러다 어떤 날은 아예 '내년 다이어리 꾸미는 날'로 지정하여 온종일 '다꾸다꾸(다이어리 꾸미기)'에 푹 빠진다. 어느 날은 책 구매로 플렉스를 해 버린다. 귀여운 인형을 입양하고 목욕을 시켜 주기도 한다. 어떤 날은 친구의 부탁을 심지어 '거절'도  한다. 누가 일을 시키면 '아니요. 안 해요'라고도 한다. 일찍 안 자고 밤늦게까지 재밌는 프로그램을 보기도 한다. 소소한 일탈로 나의 11월을 채워 보기도 한다. 왜냐고? 그저 이번 달이 나의 '생월 달'이기 때문이다. 나는 나만의 생월잔치로 하루하루 바쁘다.

반신욕 중인 아가들
두 마리 천 원 플렉스!
11월 초부터 엄마에게 내년 다이어리 선물 강제로 받기


3. 사랑하고 사랑한다

11월 하루하루를 내 생일로 보내는 터라 사랑이 넘친다. 그래서 올해는 특별히 "가족 여러분, 제가 동네 뷔페 쏠게요. 텅 빈 위장 준비하고 오후 4시까지 모여 주세요."라고 나 제외 6명의 최측근 가족에게 어제 공지를 하기도 했다. 뒤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11월은 앞만 보고 신나게 달린다. 나를 사랑하는 달이기에 내 주변도 사랑해 본다. 인생 뭐, 있나 싶게 사람들을 사랑해 본다.



그런데 참 이상하고 이상하다. 나를 사랑했더니 다른 사람이 보이고 나의 매일매일을 사랑했더니 나의 하루하루가 제법 근사해진다. 가는 사랑이 고우니 오는 사랑도 고운 법인지 놀라운 일도 일어난다.



"친구야. 책 세 권 골라. 나 교보문고 포인트 있어."

답문자1: 헉! 한 권도 아니고 세 권씩이나? 아니야, 너 사고 싶은 책 사,
답문자2: 라고 말했다. 어쩌지, 친구야, 나 지금 되게 신나~~(더 글로리 드라마 송혜교 버전)
답문자3: 뭐 고르지, 뭐 고르지?


이틀 내내 책 고르느라 어찌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물론 받으면 다시 돌려줘야 하므로 이런 선물은 좀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무조건 11월은 받기로 했다!


사랑도 행복도 책도 돈(?)도 그 어떤 물질도 영혼도 너그러이 받기로... 왜냐? 두말하기 입 아프다.


나의 달이니까,

그래도 되는 11월이니까.

(생일 플렉스라고나 할까!)



나의 이 넘치는 자기애를, 나의 이 주체 못 할 11월 사랑을, 이 글을 읽는 많은 이에게도 나누어 드리고 싶다.



11월, 이유 없이 행복할 겁니다.

11월, 쓸쓸하지만은 않을 거예요. 어쩌면 지나가다 마주치는 모든 순간에 울컥, 감동하며 행복함에 몸서리칠지도 몰라요.


왜냐고요?


11월이 제 생일이거든요.

11월에 혹여라도 행운이 찾아온다면,,,

제가 놓고 간, 혹은 제가 미리 빌어 놓고 간 기도의 한 자락이라 여겨 주세요.


11월, 모든 이가 퍽퍽한 찬바람에도 기어이 말랑말랑 몰랑몰랑 봄바람처럼 행복하시기를..!


마음 한쪽 구석에 선들선들 뽀송뽀송

뽀얀 기쁨이 영혼 가득 차오르시기를요!

11월은 제 생월, 제 생일이니까요!!



모든 이에게, 해피 벌스데이 투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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