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개질: 짜증이 나거나 못마땅하여 어떤 일이나 물건을 내던지거나 내버리는 짓.
(출처: 표준국어대사전)
요리 언니는 옛 동네 아주머니들과 40년 가까이 만나 왔다. 그 모임은 점차 세월을 입으면서 새댁이었던 이들을 손주들을 둔 할머니들로 만들었다. 그들은 서로에게 목격자다. 젊음과 늙음을 함께 목격하였고 다른 집 어린이들이 무럭무럭 자라 시집가고 장가가는 모습까지 실시간 방송으로 시청하신 분들이기도 하다.
그런 그분들이 이제는 이런 이야기를 나눈다.
"혹시 자고 가라고 할까 봐 잘 준비를 하고 갔더니..."
어렸을 때는 자고 가라고 자고 가라고, 절대 가지 못하게 했던 할머니였다. 하는 수 없이 손주들을 재우고 다음 날 가방을 챙겨야 했던 날도 많았다. 그런 할머니1. 할머니1은 최근 늦은 시간에 잡힌 가족 모임에서 혹~~~시나 몰라 옷가지들을 챙겨 왔다.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예전처럼 자고 가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무도 자고 가라는 소리는 안 하더라고."
역시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다. 할머니1은 몇 년 전의 할머니1이 아니다. 이제 조금쯤 손주들에게서 팽개질(?) 비슷한 것을 당하는 할머니가 되었다.
할머니2도 서운함을 보탠다. "할머니 집에서 자고 가, 라고 말하면. 아니요, 안 되죠. 집에 가서 자야죠! 이렇게 말하면 왠지 서운하더라고요."
매우 단호한 손자의 표정과 목소리에서 예전의 애정과 집착(?)은 눈을 씻고 찾아보려 해도 볼 수가 없다. 이제 '우리(=할머니)'는 필요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도 종종 가슴속으로 찬바람이 분다. 늘 봄바람 같던 손주 녀석들이 이제는 자기만의 사계절을 찾아 떠난다.
"그래. 그럴 땐 섭섭하긴 해."
공감 몇 마디가 오고 가던 중, 갑자기 할머니3이 입을 뗀다. 아, 여기서 할머니3은 우리의 '요리 언니', 즉 이 글을 쓰고 있는 '늙은 아이'의 모친이다. (아무래도 요리 언니는 자신이 나설 차례라고 느낀 모양이다.)
"그건 약과예요."
"약과?"
"우리는... 애들네 집에 가면..."
왜 오신 거예요?
으응? 여든 오빠와 요리 언니, 늙은 아이(이모)는 일이 있어야만 손주네 집에 방문한다. 둘째 딸(손주들 어미)과는 약간 내외를 한다고나 할까. 물론 아주 아주 사랑하는 딸이지만 살짝 어렵다. 왜 부모도 모든 자식을 똑같이 대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약간 어려운 자식이 있고 좀 편하고 쉬운 자식이 있고. 늙은 아이(=나)는 쉽고 만만한 딸이고 늙은 아이의 동생(쌍둥이 손주의 어미)은 좀 어려울 때가 있는, 덜 살가운 딸.
그 딸에 그 손주들이라 그럴까? 뚜렷한 기념일이 아닌 날, 특별한 일이 1도 없는 날 우연히 방문하면 종종 이런 말을 듣곤 했다.
"왜 오신 거예요?"
가지 말라고, 요리 언니 등에 찰싹 달라붙어 어부바를 결코 놓지 않았던 그 시간은 무럭무럭 흘러가 버렸다. 자기들 '잠 구경(=잠드는 모습)'을 하고 가야 한다고 집에 못 가게 떼쓰던 시간들은 추억 속 구전으로 남아 '손주 민담'이나 '손주 전설'처럼 신기루 같은 일이 되고 말았다.
이제는 아이들이 '거리 두기'를 시작한다. 눈을 마주치는 일보다는 책 속에 시선을 박아 두는 일이 더 잦다. 할머니 이야기보다 유튜버 이야기가 더 재밌다. 이젠 팽개질을 당해도 할 말이 없는 시간에 이르렀다.
물론 손주들도 이유는 있다. 오늘 헤어져도 내일 만날 수 있는 사이라는 것을 자라며 배웠기 때문에, 그리고 자신의 삶이 워낙 바쁘고 복잡해졌기 때문에, 예전 같은 손주의 모습으로 살 수는 없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종종 나타나는 이 정도의 '거리 두기'는... 아이들이 잘 크고 있는 증거일 수도 있다. 타인과 자신의 거리를 가늠할 수 있어야 자신을 바로 세울 수 있을 테니까.
그...그러나... 그런데도 멀어진 거리만큼 그리움의 거리는 깊어진다. 짝사랑엔 영 답도 없다.
요리 언니네 동네 친구(할머니)들은 '왜 오신 거예요'라는 문장을 듣고 배꼽을 잡았다고 한다. 잠 잘 준비를 하고 갔더니 자고 가라 하지 않고, 자고 가라고 했더니 무슨 소리냐고 되레 단호함으로 차단당했던 자신의 처지들에 비해 직접적으로 "왜 왔니?" 소리를 듣는 것은 더 멋쩍은 일이었을 터다.
그래도 가끔은 '왜' 없이도 만나는 할머니와 손주 사이이길,
이따금 어제처럼 갑자기 전화를 걸어 '웃긴 이야기 해 드릴게요'라고 여전히 할머니를 웃겨 주기도 하는 사이이길, 기념일이 아닌 날 만나 평범했던 어느 하루를 기념일로 만들어 버리는 우리 사이이길,
그리고...
'왜' 사랑하냐는 이유 하나 없이
늘 사랑하는 우리이기를,
간절히 바라고 바라 본다.
그렇게 '왜'라는 토씨 하나 달지 않고도 짝사랑하며,
우리 셋(여든 오빠, 요리 언니, 늙은 아이), 함께 잘 늙어가 보아요~
(손주 짝사랑, 이모 짝사랑...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