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사진 찍어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그 '불과한 숫자'를 온통 무시하며 살기는 어려운 나이. 아마도 여든 오빠와 요리 언니는 그런 나이를 향해 간다. 아니 이미 수많은 숫자들을 지나왔다. 그러던 중 딸내미 둘을 만났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 녀석들도 만났다. 그런데 오늘, 그런 손자 녀석 하나가 뜬금없이, 예고도 없이 여든 오빠 집을 방문한다. 방문해서 대뜸 소파에 앉아서 하는 말이,
"할아버지, 할머니 우리 사진 찍어요."
응? 사진? 사진에서 일단 '늙은 아이'는 열외가 된다. 아직 흰머리가 머리를 완전히 뒤덮지는 않은 사람이고 아직은 친구처럼 만만한 이모라서 그런지 사진을 찍자고는 하지 않는다.
그러면 왜?
여든 오빠와 요리 언니에게만 갑자기 사진을?
"웃어 봐."
쌍둥이 어미는 약간 어색한 표정의 아들내미 앞에서 괴상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녀석이 그제야 웃는다. 평소 '엄근진'한 편인 엄마가 자신을 웃기니 손자 녀석도 무장해제된 웃음을 짓다가 곧이어 자연스레 웃음이 실실 배어 나오는 사진이 찍힌다.
그러고는 부엌 뒤쪽으로 슬쩍 숨어들어 쌍둥 어미가 요리 언니에게 '사진 찍기'의 이유를 밝힌다.
아니, 어제 혀니가 자기 전에 물어보더라고.
<할아버지는 정확히 몇 살인지, 그럼 자기가 아주 나이가 많이 들었을 때 혹시 할아버지가 없을 수도 있냐고, 그러면 어떡하냐고.> 그래서 내가 그랬지. <그럼 우리, 내일 집에 들어가는 길에 할아버지 댁에 갈까? 가서 같이 사진 찍을까?>
손자 녀석은 그래서 할아버지 집으로 왔다. 남길 수 있을 때 되도록 많은 장면을 남기려고. 눈을 마주칠 수 있을 때 많이 마주치고 많이 웃으려고.
세상에는 다양한 장면들이 있다.
어떤 장면을 선택할지, 편집할지, 기억할지는
오롯이 우리의 몫에 달렸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오늘>을 함께 기억할 사진을 찍는다.
여든 오빠, 요리 언니.
우리도 되도록 예쁜 장면들만 편집하며 살아가요!
그렇게 장면 장면 속에서 함께 늙어가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