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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Dec 21. 2024

짝사랑 외전

그대... 먼~~ 곳만 보네요

팽개질:  짜증이 나거나 못마땅하여 어떤 일이나 물건을 내던지거나 내버리는 짓.

(출처: 표준국어대사전)



요리 언니는 옛 동네 아주머니들과 40년 가까이 만나 왔다. 그 모임은 점차 세월을 입으면서 새댁이었던 이들을 손주들을 둔 할머니들로 만들었다. 그들은 서로에게 목격자다. 젊음과 늙음을 함께 목격하였고 다른 집 어린이들이 무럭무럭 자라 시집가고 장가가는 모습까지 실시간 방송으로 시청하신 분들이기도 하다.

그런 그분들이 이제는 이런 이야기를 나눈다.


"혹시 자고 가라고 할까 봐 잘 준비를 하고 갔더니..."


어렸을 때는 자고 가라고 자고 가라고, 절대 가지 못하게 했던 할머니였다. 하는 수 없이 손주들을 재우고 다음 날 가방을 챙겨야 했던 날도 많았다. 그런 할머니1. 할머니1은 최근 늦은 시간에 잡힌 가족 모임에서 혹~~~시나 몰라 옷가지들을 챙겨 왔다.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예전처럼 자고 가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무도 자고 가라는 소리는 안 하더라고."


역시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다. 할머니1은 몇 년 전의 할머니1이 아니다. 이제 조금쯤 손주들에게서 팽개질(?) 비슷한 것을 당하는 할머니가 되었다.


할머니2도 서운함을 보탠다. "할머니 집에서 자고 가, 라고 말하면. 아니요, 안 되죠. 집에 가서 자야죠! 이렇게 말하면 왠지 서운하더라고요."

매우 단호한 손자의 표정과 목소리에서 예전의 애정과 집착(?)은 눈을 씻고 찾아보려 해도 볼 수가 없다. 이제 '우리(=할머니)'는 필요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도 종종 가슴속으로 찬바람이 분다. 늘 봄바람 같던 손주 녀석들이 이제는 자기만의 사계절을 찾아 떠난다.  


"그래. 그럴 땐 섭섭하긴 해."

공감 몇 마디가 오고 가던 중, 갑자기 할머니3이 입을 뗀다. 아, 여기서 할머니3은 우리의 '요리 언니', 즉 이 글을 쓰고 있는 '늙은 아이'의 모친이다. (아무래도 요리 언니는 자신이 나설 차례라고 느낀 모양이다.)


"그건 약과예요."

"약과?"

"우리는... 애들네 집에 가면..."


왜 오신 거예요?


으응? 여든 오빠와 요리 언니, 늙은 아이(이모)는 일이 있어야만 손주네 집에 방문한다. 둘째 딸(손주들 어미)과는 약간 내외를 한다고나 할까. 물론 아주 아주 사랑하는 딸이지만 살짝 어렵다. 왜 부모도 모든 자식을 똑같이 대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약간 어려운 자식이 있고 좀 편하고 쉬운 자식이 있고. 늙은 아이(=나)는 쉽고 만만한 딸이고 늙은 아이의 동생(쌍둥이 손주의 어미)은 좀 어려울 때가 있는, 덜 살가운 딸.


딸에 그 손주들이라 그럴까? 뚜렷한 기념일이 아닌 날, 특별한 일이 1도 없는 날 우연히 방문하면 종종 이런 말을 듣곤 했다.

"왜 오신 거예요?"


가지 말라고, 요리 언니 등에 찰싹 달라붙어 어부바를 결코 놓지 않았던 그 시간은 무럭무럭 흘러가 버렸다. 자기들 '잠 구경(=잠드는 모습)'을 하고 가야 한다고 집에 못 가게 떼쓰던 시간들은 추억 속 구전으로 남아 '손주 민담'이나 '손주 전설'처럼 신기루 같은 일이 되고 말았다.


이제는 아이들이 '거리 두기'를 시작한다. 눈을 마주치는 일보다는 책 속에 시선을 박아 두는 일이 더 잦다. 할머니 이야기보다 유튜버 이야기가 더 재밌다. 이젠 팽개질을 당해도 할 말이 없는 시간에 이르렀다.


물론 손주들도 이유는 있다. 오늘 헤어져도 내일 만날 수 있는 사이라는 것을 자라며 배웠기 때문에, 그리고 자신의 삶이 워낙 바쁘고 복잡해졌기 때문에, 예전 같은 손주의 모습으로 살 수는 없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종종 나타나는 이 정도의 '거리 두기'는... 아이들이 크고 있는 증거일 수도 있다. 타인과 자신의 거리를 가늠할 수 있어야 자신을 바로 세울 수 있을 테니까.


그...그러나... 그런데도 멀어진 거리만큼 그리움의 거리는 깊어진다. 짝사랑엔 영 답도 없다.



요리 언니네 동네 친구(할머니)들은 '왜 오신 거예요'라는 문장을 듣고 배꼽을 잡았다고 한다. 준비를 하고 갔더니 자고 가라 하지 않고, 자고 가라고 했더니 무슨 소리냐고 되레 단호함으로 차단당했던 자신의 처지들에 비해 직접적으로 "왜 왔니?" 소리를 듣는 것은 더 멋쩍은 일이었을 터다.


그래도 가끔은 '왜' 없이도 만나는 할머니와 손주 사이이길,

이따금 어제처럼 갑자기 전화를 걸어 '웃긴 이야기 해 드릴게요'라고 여전히 할머니를 웃겨 주기도 하는 사이이길, 기념일이 아닌 만나 평범했던 어느 하루를 기념일로 만들어 버리는 우리 사이이길,

그리고...



'왜' 사랑하냐는 이유 하나 없이

늘 사랑하는 우리이기를,

간절히 바라고 바라 본다.


그렇게 '왜'라는 토씨 하나 달지 않고도 짝사랑하며,

우리 셋(여든 오빠, 요리 언니, 늙은 아이), 함께 잘 늙어가 보아요~

(손주 짝사랑, 이모 짝사랑...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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