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좀 고쳐야겠더라?
작가님이 또 내 방으로 쪽지 하나를 들이미신다. (마치 주문서 같다.) 받아 보니 꼭 고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고치신다고 한다. 뭐, 다 작가님의 깊은 뜻이 있으신 거니 두말없이 고치고 보...려는데?
-아부지?
-왜?
-근데 그때 해양경찰청이 있었어요? 60년대 초에?
나는 <아버지의 단 하나뿐인 편집자> 모드가 되어 송곳처럼 작가님을 쑤신다. 소설은 허구지만 그 안에 담긴 모든 내용은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어야 한다는 주의다. 대충은 없어야 한다, 되도록 말이다.
-몰러. 그냥 그렇게 써라.
뭐라고요? 작가님, 그런 무책임한 말씀을...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작가님이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3년 가까이 글을 뜯어고치다 보니 좀 질리고 물리신 거다. (작가는 자기 글에 질릴 때가 수시로 온다. 그리고 나 같은 편집자가 자꾸 고치라고 부추기면...) 가제본까지 나온 마당에 '처음부터 다시'라는 마음으로 작업하면 정말 이 소설책이 세상에 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허점투성이 같은 게, 바로 자신의 글이니까.
그래도 그건 아니고요. 제가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선언하고 인터넷을 싹 다 뒤지기 시작한다.
해양경찰청 누리집에 들어가서 연혁을 확인한다 → 수상 관련 법률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살펴본다 → 해양경찰청이라는 명칭이 변경되었던 시점을 알아낸다 → 이전 명칭으로 검색한다 → 국가기록물 사이트로 연결된다 → 해당 용어를 집어넣고 구체적 연혁과 업무를 확인한다 → 작가님께 보고한다
그리하여 탄생한 변경 전후의 글.
<변경 전>
사진
<변경 후>
인디자인 사진 혹은. 글로...
엄마에게 '변경 전' 문구를 들려드렸더니, 대뜸 하시는 말씀이... (편집자는 아무 언질도 없었는데 곧바로 이리 말씀하심.)
"근데 그때 해양경찰청이 있었어? 헬리콥터로 환자를 나를 시기도 아닌 것 같고."
이것 봐요, 아부지. 독자가 바로 알아차리고 지적한다니까? 작가님은 그제야 수긍한다. 그래, 정확한 용어로 다시 한번 써 봐라. 그리해서 우리는 1961년을 기점으로 어업 관리 업무나 해양의 범죄자 관련 치안은 '해무청' 소속 '해양경비대'가 이끌었다는 점을 인지하고 그 용어를 소설에 넣기로 합의를 본다.
이런 사달(?)이 나는 이유는 시대적 배경 때문이다. 아버지의 소설은 시대적 배경을 현재로 설정하지 않은 소설이라 신경 쓸 일이 더 많았다. 에세이만 편집해 보았지, 소설 편집은 편집자인 나도 처음이라 조심스러웠다. 그 어느 때보다 집중하여 편집에 힘을 기울였다. 내가 소설의 독자였을 때를 가정하고, 독자가 의구심을 품을 만한 부분은 작가님과 함께 파헤치고 또 파헤쳤다. 아무리 처음 정해진 줄거리가 있다 해도 독자의 끄덕임을 받지 못하는 과정과 결말은 큰 의미가 없다.
원고지로 머물렀던 글을 그럴듯한 소설로 만드는 일은, 작가님뿐 아니라 편집자에게도 어렵고도 지난한 길이었다. 무엇보다도 개연성이 있어야 하고 세부적인 정보 또한 독자에게 믿음을 주어야 한다. 내 소설을 대체 누가 읽겠어? 라고 우리 같은 무명 편집자나 무명작가는 이리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가 읽든 읽지 않든, 작가님과 내가 안다.
최선을 다했는지, '대충' 넘어가고 말았는지.
그러다 보니 총작업에 2~3년이 걸릴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 보니 편집자로서 (작가님을 향해) 막바지 민원도 자꾸 늘어만 갔다.
편집자 민원1: 그때 젊은 사람들은 사투리를 덜 썼어요? 아버지 소설 속 젊은 주인공들이 여기 이 장면에서 죄다 서울말을 쓰는데요?
편집자 민원2: 여기서 여자 주인공 화가 이유정이, 왜 갑자기 주인공이랑 연결되는 것 같은 분위기죠? (의도하지 않으신 것 같지만). 매우 생뚱맞은데요? 이야기의 흐름을 꺾지 않나요? 갑자기 잘 나가다가 주제에서 벗어난 듯.
편지자 민원3: 고수레, 를 고시네, 고시네, 라고 방언으로 불렀던 거 확실해요? 확실하다고요? (그래도 한 번 더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사전으로 방언 여부를 확인한다.)
편집자 민원4: 아버지 '몰초'라는 말은 표준국어대사전에 없는데, 사투리예요? 아버지 의도와 비슷한 말이 '절초'라고 있는데 이걸로 쓰면 어때요?
편집자 민원5: "확실해요? 네? 진짜요? 확실해요?" (내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이기도 하다.)
서슬 퍼렇게(?) 달려드는 편집자 때문에 아버지는 그래그래, 알아서 해라, 그게 맞겠다, 이렇게 동의해 주실 때가 많았다. 물론 끝까지 굽히지 않아야 하는 '작가만의 고유 영역'은 당연히 편집자로서 한 발 물러서서 존중해 드린다. 32000자는 소설가의 것이고, 그것들을 어엿한 소설로 만들어 낸 사람은 분명 작가님이시니까.
(그리고 아버지가 나의 작가님이라 이렇게 몰아세울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나서 오늘의 작업은 여기까지!
를 외치고 나서 돌아보니 작가님이 뭔가 내게 할 말이 있는 듯한 표정이다.
-그런데 넌 좀.. 편집자로서...
-왜요, 뭐요?
-좀 그래.
-그런 게 뭔데요?
너무 혹독해. 작가들이 너랑 작업하면 좀...
좀 뭐요? 피곤했겠다고요? 피곤한 편집자라고요?
부정하지 않고 돌아서 자기만의 방으로 들어가시는 작가님...
그래, 나도 부정하지 않겠다. 늘 흐리멍덩하고 덤벙대고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남의 글을 편집할 때만큼은 좀 표독스러워진다. 예전에 동생 동기가 한국어 감수를 요청해서 나와 동생이 한꺼번에 감수를 한 적이 있었는데 '아주 무~~서운 자매들'이라는 평을 남겼다고 한다. (우리 자매가 좀.. 글을 너무 헤집어 놓긴 했지.)
사람을 들들 볶고 피곤하게 하는 편집자. 내가 들어도 질린다. 그래도 난 멈추지 않는다.
우리 아버지 소설이 세상에 나올 때까지,
그치지 않고 볶을 테다.
계속해서 작가님의 글을 지지고 부치고 볶아서,
아주 그럴듯한, '소설 같은 소설'로 내놓고 싶다.
그게 <아버지의 단 하나뿐인 편집자>가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선택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