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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다 바빠, 봄

달래가 선전포고를 했다

by 서지현

봄의 문턱에 서면 들기름과 참기름을 넉넉히 쟁인다. 봄날의 푸릇한 것들이 날이 풀린 기세를 몰아 일제히 땅을 뚫고 올라와 본격적으로 밥상에 오르는 때라서 그렇다.



이맘때의 주방일은 흡사 여느 전투와도 같다. 굽은 등, 말린 어깨를 하고 앉아 나물을 다듬기란 여간 노역이 아니다. 대개는 양손이 급한 마음을 따라가지 못한다. 어떤 날은 한나절 외출을 포기하고 만다. 봄 채소와 그렇게 한바탕 소동을 벌인 뒤에는 풀죽은 쑥이 되고 만다. 쑥을 직접 다뤄본 이라면 알 것이다. 캔지 하루이틀 지난 쑥이란 얼마나 부피가 줄어 볼품없어 지는지를 말이다.



봄나물은 '지지고 볶기'보다는 '씻고 데치고 무치는' 쪽에 가깝다. 지리한 나물 손질과 찬물 세례로 부쩍 거칠어진 손. 가만 내려다 보며 작은 소리로 읇조린다. '과연 봄날의 훈장이지!'



좋은 것을 가족과 나에게 자신을 대접한다는 마음가짐이면 할 만하다. 봄나물로 차린 밥상을 뚝딱 비우고 나면 가슴이 웅장해진다. 피로가 가시면서 거짓말처럼 새 힘이 솟는다. 이어 나올 봄푸성귀를 의연히 마주할 수 있을 것 같다.






달래가 선전포고를 했다. 겨울 끝무렵 간간이 모습을 드러낸 냉이로 두어 번 냉잇국을 끓이긴 했지만 완연한 봄기운을 풍기며 다가온 건 달래였다.



마늘향을 닮은 듯 알싸한 파향이 묻은 매혹적인 달래를 가만 두고 볼 수 없었다. 달래장을 만들었다. 칼등으로 머리 부분을 눌러 으깨고 이파리를 쫑쫑 썰어 매실청, 참기름, 참깨를 섞어 간장에 재웠다. 봄철을 지내는 내내 밥 비벼 먹을 일이 천지일 터, 달래장 서너 병 쟁여두니 마음이 꽤 든든하다.




보약을 짓는 마음으로 쑥국을 끓였다. 여린 쑥이라도 쓴 맛 제거를 위해 스테인리스 채칼에 쑥을 문질러 치댔다.(절구공이로 콩콩 찧는 방법도 있다.) 검은 물이 흥건해지도록 작업을 반복한 후 두어 번 찬물로 헹궈냈다. 국물은 멸치육수와 쌀뜨물을 반반 쓰면 알맞다. 김치의 아삭한 부분을 꼭 짜 썰어 넣고 된장을 넉넉히 풀어 끓인다.



쑥국을 올린 밥상에는 일부러 다른 찬을 두지 않는다. 향긋하고 개운한 쑥국 한 대접에 쌀밥 한 그릇이면 더는 부족함이 없는 것 같아서. 굳이 반찬이 필요하다면 김 정도가 좋으리라. 미각이 순수한 아이가 혹여 얼굴을 찌푸린다면 곱창김을 설설 부서뜨려 넣어주시라.





친정, 시댁 양가에서 동시에 쪽파가 올라왔다. 전라도 어머니는 "부침개 해 먹어라" 하시고, 경상도 어머니는 "살짝 데쳐서 초장 찍어 먹으면 맛있데이" 하신다. 같은 쪽파를 두고도 이렇게나 다른 당부라니, 입맛 차이일까, 지방색일까 픽 웃음이 샜다.



쪽파부침개는 밀가루 없이 계란 푼 물을 쓴다. 하얀 대를 여러 번 쪼갠 쪽파를 기름 두른 팬에 가지런히 올린다. 파를 슬쩍 익힌 후 파 사이사이로 계란물을 설설 흘려주어 마저 익힌다. 파에서 물기가 새 나오지 않아 기름이 튀지 않고 단시간에 조리할 수 있다.




입에 쓴 약을 꾹 참고 한 재 먹어두면 살아갈 날이 수월해지듯 과연 봄나물도 그러할 테지. 우리 네 식구 아무 탈 없이 일 년을 난다 싶으면 '잘했다, 잘했다, 그날 그렇게 봄밥상 차리길 참 잘했다' 소리가 절로 날 것이다.



봄 푸성귀가 등을 살살 떠밀며 겨우내 무거워진 발을 성큼 내딛게 한다. 일년 열두 달 순항할 수 있기를. 순조로운 출발이다. 바쁘다, 바빠.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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