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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뜨면 모든 게 괜찮아지려나요?

장마철 살림과 제자리 지키기

by 서지현


요즘날 사회의 분위기는 장마철의 내려앉은 공기만큼이나 내내 무거웠다. 사회는 부모 같지 않은('같잖은'이라고 쓰고 싶다) 부모에게 이제 막 세상의 빛을 본 아이의 주소를 물었다. 물난리 통에 대민 지원에 나선 스무 살 청년이 하나뿐인 목숨을 내놓았다. 교권의 끝없는 추락 속에서 젊은 교사는 스스로 교단을 떠났으며, 멀쩡한 대낮 광인의 칼부림 속에서 무고한 이들이 해를 입었다.



따지고 보면 어느 것 하나 나와 관련되지 않은 일이란 없었다. 나는 배 아파 낳은 아이 둘을 숱한 선생님들의 손에 의지해 키우고 있으며, 그렇게 자라난 아이들은 머지않아 어엿한 청년이 되어 살아갈 터였다. 참사가 있었던 곳은 공교롭게도 집 인근이었다. 예정대로라면 나는 얼추 같은 시간에 그곳에서 중고 거래를 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 무엇이 내 일이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있을까.



철없는 오지랖은 아닐 것이다. 사회의 커다란 슬픔이 나의 아픔으로 여겨지는 것이 말이다. 일면식이 없다뿐, 어디서라도 어깨를 스쳤을 법한 어떤 이의 억울함과 비통함이 종일 끈덕지게 따라붙어 가슴을 짓눌렀다. 요 근래 마음의 무게란 긴긴 장마철 습기를 한껏 빨아들여 축 늘어진 솜이불 같다.



장마는 연일 계속되고 있다. 나는 마르지 않을 빨래를 널고, 매일 한껏 달아오른 대낮 열기에 맞서 국을 끓인다. 끈적한 마룻바닥을 수시로 닦아내는가 하면 그새 피어오른 욕실 곰팡이 때를 박박 문질러 지운다.



그렇게 몸을 쉼없이 놀리다가는 불쑥 떠오른 생각에 화들짝 놀라 베란다로 달려나간다. 채반에 널어 둔 마늘과 양파가 혹여 탁 나지 않았을까 조마해 가며 이리저리 뒤채 본다. 과연 옷들은 이 대단한 습도를 견뎌내고 있을까? 옷장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선풍기라도 돌려둘 걸 그랬지. 나는 불시에 들이닥친 검침원이 되어 나란히 걸린 부부의 양모 코트에 이상한 낌새가 없는지 두 눈을 부릅뜬다.



이제는 필수 가전이 되었다는 건조기나 식세기(식기세척기)는 커녕 그 흔한 에어컨조차 없는 집. 평소엔 '없이도 잘 산다'라며 배짱 좋게 굴다가 어김없이 이맘때만 되면 기가 팍 죽는다. 장마철엔 기본만 따라가도 성공이다. 삶의 제자리를 유지하기란 이렇듯 아무 일 아닌 것 같다가도 어쩔 땐 가장 어려운 일이 되고 만다.



장마 끝자락 조각 햇살이 불쑥 창을 뚫는다. 안부를 묻듯 살뜰하고 다정한 온기를 품은 빛이다. 오래 못 보아 온 정인의 얼굴을 대한 듯 반갑고 고마운 순간이다. 이 한줄기 달가운 햇살에 짧지만 달게 잔 쪽잠 뒤의 개운함이 밀려온다. 비로소 작은 용기가 난다. 위로를 건네고 또 위로를 건네받으며 모두가 견뎌내야 할 것이다. 새삼스러운 말이겠지만 거저 주어진 이 하루를 온전히 의식하며 살아내야 할 것이다.



곧 아이들이 돌아올 시간이다. 나는 아일랜드식탁 상판 위에 어지럽게 펼쳐 둔 신문을 접어 세상사 어두운 소식들을 구석으로 한껏 밀쳐두었다. 어제와 다름없는 미소로 아이들을 맞이하는 것, 그렇게 덤덤히 제자리를 지키며 서 있는 것만이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쨍하고 해가 뜨면 이 모든 일이 괜찮아질까? 빨래가 바싹 마르고, 옷가지와 침구가 보송해지며, 집안 정리가 잘 되고 나면 집밖의 멋대로 어지럽혀진 많은 일들도 과연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각각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까? 나는 그저 내게 내리쬔 작지만 강렬했던 조각 햇살에서 그 희망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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